[좌승훈 칼럼]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클수록 그 반대 결과로 인한 배신감도 커진다. 최근 잇단 공직비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제주도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그 때 뿐이었다. 민선 6기 출범과 함께 부패 방지와 청렴을 핵심 과제로 내걸었던 원희룡 도정이기에 실망감은 더 크다.

최근 제주도내 소방장비 납품 비리 사건을 조사해온 검찰이 소방공무원 13명을 인지, 8명을 불구속 공판, 5명을 구약식 처분했다. 이와 함께 88명의 소방 공무원들에 대해선 행정당국에 징계를 요구했다.

# 소방장비 납품 총체적・구조적 비리…도덕적 해이 심각

제주지검은 최근 소방 장비를 산 것처럼 속여 예산을 빼돌린 장비 담당 소방공무원 14명을 기소했다. 아울러 허위 구매서류 결재·감독 등에 관여한 소방공무원 88명에 대해 제주도감사위에 비위 사실을 통보하고 자체 징계토록 했다.

비리 연루 공무원이 말단부터 간부급까지 102명이나 된다. 총체적・구조적 비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납품업자와 짜고 허위 구매 계약서를 만들거나, 원가보다 부풀려 돈을 지급한 뒤 일부를 돌려받은 소방장비들은 구조 활동에 필수인 로프와 공기호흡기 등이다. 도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돼 있는 것이다.

게다가 편취한 예산을 부서 회식비라든가 소방관서 각종 행사비로 사용됐다고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후안무치한 이들의 작태에 절망을 느낀다.

지난 5월에도 제주시생활체육회 비리와 관련해 전직 제주시장과 부시장 등 전・현직 공무원 11명이 입건됐다. 이에 앞서 하천 교량사업 비리와 관련해 돈을 주고받은 전・현직 공무원 5명도 구속됐다.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1월19일 제주도(청렴감찰관)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2016년도 부패방지시책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1등급을 달성했다”고 밝힌바 있다.

# 올 들어 소방・건설・체육비리 잇달아…청렴시책 '공염불'

원희룡 도정은 2014년 11월 ‘청렴 제주 공동체 실현을 위한 민관 합동 TF팀’ 출범 기자회견을 통해 “공직사회가 앞장서서 부패 제로(ZERO)시대를 여는 청렴 자치도를 만들겠다‘고 선언 한 바 있다. 이는 국정감사 당시 제주도가 지방 공무원 1000명 당 비위 징계율이 12.58명으로 전남(13.36명)에 이어 두 번째로 부패지수가 매우 높다는 지적에 대한 조치였다.

2015년 1월과 4월에는 제1차・제2차 청렴도 향상 추진 계획이 각각 추진됐다. 공직자의 윤리 지침서로 다산(茶山)의 목민심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목민심서’가 발간되고, 부정청탁 등록·신고센터가 시범 운영됐다. 지사에게 직통으로 보고되는 공직비리 신고 통합 창구도 개설됐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에 '원희룡 지사 핫라인'을 개설해 운영한 바 있다. 그 결과 ▷도지사에게 바란다 271건 ▷공직자 비리신고 20건, ▷갑(甲)의 부당행위 17건 ▷공익신고 16건 ▷부정 청탁 등록·신고 1건 등 총 325건의 공직비리 관련 신고가 접수 처리됐다.

그러나 이 뿐이었다. 청렴을 최우선 과제로 각종 쇄신안을 내놨지만 매번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또 터져 나오는 공직 비리가 제주도정에 대한 도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 공직 비리를 개인적 일탈로 선을 긋는 행태도 문제

공직은 취업 준비생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워낙 높다 보니 '공시족(각종 공무원 채용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일반 기업과는 달리 정년까지 보장되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는데다, 처우도 대기업 못지않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민연금보다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다.

그런데도 공직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되고, 비리로 얼룩지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좌승훈 주필.

공직 비리를 개인적 일탈로 선을 긋는 행태도 문제다. 공직사회가 무너지면 도민들이 피곤해진다. 지역사회에 망조가 든다.

공직사회에 대한 비리 엄단은 지속적이고 강할수록 좋다. 일회성 엄포가 아니라 확실하게 제대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도지사가 특단의 조치를 내세우고 거듭 강조하고 있음에도 비리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도지사가 무능한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