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예산낭비 “잘못은 있어도 책임은 없다”

[좌승훈 칼럼] 혈세((血稅)는 피(血)와 같은 세금(稅)을 뜻하는 한자어다. 한마디로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희생과 고통을 무릅쓰고 낸 것이기에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예산 낭비 사례는 흔하다.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이는 무책임 행정 탓이다. 행정 절차만 적당히 따지다가 결국 면죄부를 준다. 잘못은 있어도 책임은 없다. 제 돈도 이렇게 쓸 것인가?

제주시 고마로에 있는 인제공영주차장. 당초 주차 빌딩(5층・300대)을 짓기 위해 23억4000만원을 들여 부지를 사들인 곳임에도, 고작 1단 49대 규모의 주차장이 조성됐고, 이후 다시 2층・3단의 복층 주차장(125대 규모)의 들어섰다. ‘오락가락’ 주차 행정에 혈세는 덤이다.

# ‘오락가락’ 주차 행정에 도로 위 불법 전시관도

[사례1] 제주시 고마로 인제공영주차장. ‘오락가락’ 주차 행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곳은 2003년 제주시가 주차 빌딩(5층・300대)을 짓겠다며 사유지 1,546㎡을 사들였다. 3.3㎡당 500만원, 주차장 부지 확보를 위해 당시로선 막대한 23억4000만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그러나 2006년 6월 ‘투입비용과 운영수익을 감안할 때 경제성이 없다’는 감사 결과가 나오자 이내 계획이 변경됐다. 대신 49대를 수용할 수 있는 공영 노외주차장이 지어졌다. ‘부지 매입비만 수십억을 들였는데 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았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게다가 원래 이 곳은 인접 도로보다 1개 층 이상 낮은 곳이어서 당장 큰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지하 1층・지상 1층의 복층 주차장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당국은 되레 돈을 더 들여 흙다짐 작업을 한 끝에 지상 1층의 주차장을 조성했다. 1억5000만원이 투입됐다.

졸속행정은 이 게 끝이 아니다. 결국 이곳은 2015년 6월 재공사에 들어갔다. 또다시 20억원을 들여 2층 3단의 복층화 공사 끝에 125대 규모의 주차장이 조성됐다. 지난 10년여 간 주차장 조성계획이 3번이나 바뀐 것이다. 갈지 자 행정에 혈세는 눈 먼 돈이었다.

[사례2] 제주시 관덕로2길 옛 현대극장 앞. 이곳에는 정체불명의 전시장이 있다. 지난 2013년 제주시가 추진했던 원도심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에 의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헛돈’에 ‘불법’이다. 제주시가 도시계획도로(소2-33호선・폭 8m) 개설을 위해 편입 토지에 대한 보상을 하고 난 후 조경수 식재와 판석 포장에 이어 3면의 전시 벽을 갖춘 85㎡ 규모의 전시장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도로 위 불법 건축물이다.

관리도 제대로 안 된다. 지금껏 단 1번 작품이 교체됐을 뿐이다. 그 것도 언론의 지적에 의해서다. 하다못해 젊은 전업 작가들에게 정례적으로 전시 기회를 줬더라면,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전시장 운용 계획도 의지도 없이 주먹구구식 행정이 빚어낸 결과다.

산지천 복원과 함께 28억 원을 들여 만든 음악 분수대가 관리 부실로 철거(사진 오른쪽)된 후, 인근에 또다시 44억원을 들여 레이저와 특수 조명을 갖춘 수중ㆍ벽천ㆍ음악분수대와 전망대가 조성됐다.

# 삼다공원・산지천・고마로 인공폭포・분수대 ‘헛돈’

[사례3] 분수대(噴水臺)와 인공폭포 사업도 예산낭비 단골 메뉴다. 제주도청 인근 삼다공원 내 인공폭포와 분수대, 제주시 산지천의 음악 분수대, 제주시 고마로의 인공폭포와 분수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산지천 음악 분수대는 산지천 복원과 함께 제주시가 2002년 28억 원을 들여 만든 것이다. 수(水) 공간설계 회사인 '웨트 디자인(WET Design)'이 기술지원한 것으로, 최고 30m 높이의 물기둥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분사 노즐 121개와 340개의 컬러조명, 고출력 음향기를 갖췄다. 그러나 연 1억원의 유지 관리비와 음원 구입비도 곡당 1000만원이나 돼 재정 부담이 컸다. 게다가 고장이 잦고 독일산 부품 조달도 제대로 안 돼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결국 2015년 철거됐다. 

이에 앞서 제주시는 2001년 6000만원을 들여 삼다공원 내 4m 높이의 계단식 인공폭포와 분수대를 조성했다. 그러나 전기·수도 사용료 부담과 어린이 안전사고를 이유로 작동이 중단된 채 10년 넘게 방치돼 왔다. 다만 최근 민원이 잇따르자, 지난달 8일 제주에서 열린 전국 생활체육대축전에 일정에 맞춰 평일에 한해 12시~3시 사이에 한시적으로 운용하고 있을 뿐, 본래 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제주시 고마로 지경의 인공폭포와 분수, 연못, 경관조명 등도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제주시 고마로 수협 사거리 인근의 인공폭포와 분수대도 마찬가지. 제주시는 2010년 8월 2억6000만원을 들여 인공폭포와 분수, 연못, 경관조명을 시설했다. 그러나 매달 70만원 정도의 전기・수도 사용료와 부품 교체・수리에 따른 관리비 부담 때문에 설치된 지 3개월 만에 작동이 중단된 채 방치되고 있다.

제주시는 최근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44억원을 들여 산지천 인근에 또다시 레이저와 특수 조명을 갖춘 수중ㆍ벽천ㆍ음악분수대를 조성했다. 산지천을 따라 인공 구조물인 분수 쇼 전망대도 만들었다. “또, 분수대 콘텐츠냐?”고 시비를 걸지는 않겠다. 다만 전례가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제주시 연동 삼다공원 내 인공폭포도 작동이 중단된 채 최근까지 10년 넘게 방치돼 왔으며, 원도심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 중 하나로 조성된 전시관은 도로 위 불법 건축물이다.

# 예산 집행 실명제 도입 “낭비성 지출 줄이자”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사례는 하도 많아 웬만하면 뉴스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주위에 흔하다. 20억 원이 투입됐다가 결국 용도폐기가 된 연동의 ‘신화의 거리’ 조성사업이 그렇고, 28억원을 들이고도 무용지물이 된 ‘에코 힐링 마로(馬路)’ 사업이 그렇다.

무분별한 보도블록 교체사업은 관(官)의 대표적 예산낭비 사례로 지목된 지 오래다. 말만 ‘혈세’라고 했지 수돗물처럼 낭비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먼저 사업 추진에 따른 타당성 검토가 충분치 못한 경우다. 잘못된 예측은 예산 낭비는 물론 사업의 부실화로 이어진다.

관계 부처 간 협조 미흡, 중복 투자 등도 있다. 또한 남은 예산을 아껴 내년으로 이월하기보다는 ‘일단 쓰고 보자’식의 예산 집행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행태가 관행적으로 되풀이된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최근 산지천에 분수대를 만들면서 190㎝ 높이의 인공 구조물(부조타일 벽화)가 설치됐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산지천을 생태하천이자 친수공간・문화공간으로 복원했음에도 되레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경관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인근 빨래터도 시멘트로 마감처리 함으로써 복원의 의미가 반감되고 있다. 더욱이 2002년 95억원을 들인 산지천 교량(석교 2개・목교 2개) 사업 중 목재 교량인 광제교와 산지교는 부식을 방지할 수 있는 가압식 방부처리 목재를 사용하지 않아 완공 2년여 만에 부식이 진행됐고, 2005년 하자 보수공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월 정밀 안전진단 결과, 최하등급인 E등급(불량) 판정이 나오면서 전면 통제되고 있다. 이 또한 졸속행정이 낳은 예산낭비 사례 중 하나다.

# ‘혈세’란 말 정 듣기 싫다면 허투루 쓰지 말라

이 때문에 일각에선 예산 집행 담당자의 실명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예산 집행 실명제의 확대를 주장한다.

예산편성 과정에서부터 ‘넣고 보자’식의 구습을 타파해 낭비성 지출을 줄이자는 것이다. 누가 무슨 이유로 예산 배정을 했고, 누가 집행했는지를 보다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연말에 불용액만 낭비하지 않고 아껴도 예산절감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좌승훈 주필.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행정의 기본 의무다. 세금은 주민들이 여유가 있어 낸 돈도 아니며, 예산 낭비로 인한 빈 곳간은 결국 주민들이 다시 채워놔야 하기 때문이다.

증세보다 낭비성 예산을 줄이는 게 먼저다. 공무원들은 ‘혈세’라는 표현이 싫겠지만, 이 땅에 주민들의 피와 땀이 묻지 않은 세금은 없다. ‘혈세’라는 말이 정 듣기 싫다면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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