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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夜學),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함께 사는 세상, 늘 배움 공동체…‘동려’ 이야기

[좌승훈 칼럼] 제주시 광양 4길 30-1에 있는 사단법인 동려(同旅). ‘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라는 뜻을 가진 동려는 지난 1975년 2월 설립됐다. 서귀포오석학교, 제주등하학교, 제주장애인학교와 더불어 제주도교육감 지정 비정규 학교다. 1967년 서귀포재건학교로 문을 연 산남지역의 오석학교와 함께 산북지역을 대표하는 야학(夜學)이다.

만학의 꿈 앞에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현재 동려평생학교에는 1932년생의 김순여・박점례(중등반) 할머니부터 10대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총 245명(동려평생학교 233명・동려청소년학교 12명)의 재학생이 있다.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과 한국전쟁, 그리고 지독한 가난과 “계집애가 공부는 무슨…”하는 식의 극단적인 남아선호(男兒選好)・남존여비(男尊女卑) 의식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晩學徒)와 학업 중단 청소년들에게 동려는 ‘희망의 둥지’가 돼 왔다.

현재 동려평생학교와 동려청소년학교는 성인 문해(文解)교육과 초등・중등・고등 검정고시 반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평생교육기관으로서 ‘함께 사는 세상, 늘 배움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야학은 시대 상황에 따라 민족계몽・문맹퇴치의 현장이자, 가난한 청소년들의 검정고시 준비반으로서, 그리고 도시빈민과 노동자를 위한 생활야학・노동야학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시대 변화에 따라 역할과 성격을 달리해 왔을 뿐,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7561달러(2016년 기준)인 지금도 있고, 또한 필요하다.

2016 전도 성인 문해 시화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김옥순 할머니의 ‘ㄱㄴㄷ’과 강양임 할머니의 ‘모든 게 좋아’, 박미경 할머니의 ‘밝아진 세상’. 서툴지만 정성껏 꾹꾹 눌러쓴 글씨가 눈부시다.

# 글을 깨우치고 나니, 모든 게 다~ 예뻐 보입니다

“나는 ㄱ자도 모르고/ 학교에 왔다./ 기역에 아자를 붙이면/ 가인 것도 알고/ 내 이름에 기역이 들어/ 있는 것도 알았다./ 이제는 편지를 쓴다.”

동려평생학교 초등과정의 김옥순 할머니(배움반)의 ‘ㄱㄴㄷ’라는 시다. 평생 못 배운 설움을 안고 살아왔던 그는 늦었지만 이제는 글을 깨우치고 편지를 쓴다. 내가 얼마나 하고 싶었던 공부인데…. 한 글자, 한 글자, 서툴지만 꾹꾹 눌러쓴 글씨가 눈부시다.

강양임 할머니(희망반)은 ‘모든 게 좋아’라는 시에서 “모든 게/ 좋습니다./ 학교에 오니/ 길을/ 걸어가면서도/ 다~/ 예뻐 보입니다.”라고 한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니, 길을 걷다가도 간판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박미경 할머니(슬기반)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다음은 그가 쓴 ‘밝아진 세상’이란 시다.

“60년 만에 눈을 떴습니다./ 눈을 3분의 1만 떴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떴어요./ 눈을 뜨고 제일 하고 싶었던 게/ 문자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답장이 왔어요./ 너무 감격했어요./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 가보려고요./ 박미경 파이팅!”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 문자 보내기였다. 답장도 왔다. 너무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다. 그는 자신감을 갖고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겠다고 다짐한다.

최고령자인 박점례 할머니(85・중등반)는 “글을 못 배워 77년 긴 세월을 기죽어 살았다“고 했다. 못 배운 게 평생 짐이 됐다. 그러나 ”다 늦게 글을 배우고 나니, 은행도 가고, 문자・상표・간판도 읽고, 하얀 종이 위에 하루 일과를 모두 글로 적는다“고 했다.

김순화 할머니(70)는 1996년 초등반에 입학했었으나, 생업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컸던 그는 2014년 재입학 후, 초등 학력 인정을 받은 데 이어 현재 중등반에 다니고 있다.

초등과정의 박공심 할머니(행복반)는 ‘배움의 길’을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했다.

“글을 모를 때는/ 사람이 있는 데는/ 정말 가기가 싫었어요./ 이제는 은행에 가서 스스로 쓸 수 있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진짜 이제는 세상 살 것 같아요./ 글을 모를 때는/ 앞 못 보는 장님이나 마찬가지지요./ 엄마, 하늘에서 보고 계시지요?/ 딸이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주세요./ 엄마 사랑해요!”

1975년 문을 연 동려는 현재 동려평생학교와 동려청소년학교, 동려문화원, 동려봉사단(대학생・고등학생)을 운영하고 있다.

# 배움에 대한 갈증…야학에 왔다가 야학을 이끌다

동려평생학교・동려청소년학교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71명의 자원봉사 교사들이다. 현직 교사 뿐 만 아니라, 대학생, 퇴직 교사・공무원, 회사원,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은 “일과 봉사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동려를 찾는 학생들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한다.

동려가 지난 42년 동안 1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 할 수 있었던 것은 밤늦은 시간까지 자원봉사로 수업을 해준 교사들과 학생들의 열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가운데 윤경월 선생님(68)은 동려평생학교에서 초・중・고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전통무용학과를 전공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2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그는 자녀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환갑이 다 된 2009년에 동려와 인연을 맺었다. 김원자・김병관 선생님도 동려 출신이다.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야학을 찾았다가, 이제는 야학을 이끌고 있다.

초등학교 현직 교사인 문모 선생님은 1990년 대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 동려와 인연을 맺은 후, 28년째 자원봉사 교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법인 사무처에서 간사로 일하는 김준영씨도 대학 동려회 출신이다. 1994년 자연봉사 교사로 왔다가 사무처 간사가 됐다. 국가평생진흥원의 문해교육 교원연수도 이수했다. 봉사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진다.

동려평생학교는 현재 교육부 지정 성인 문해교육 제주지역 거점 육성기관이기도 하다.

문해는 문자해득(文字解得)을 말한다.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다. 평생교육법 제39조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성인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문자해득능력 등 기초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자해득 능력이 떨어지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필요한 정보나 기술도 배울 수도 없다.

태양이 아니라면 호롱불이라도 되자. 동려평생학교와 동려청소년학교는 매년 문화예술행사로서 ‘호롱제’를 개최하고 있다.

# 가난의 대물림 악순환…최상의 해법은 교육격차 해소

삶의 격차는 결국 교육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헌법 제31조 1항에는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 저변에는 저소득 청소년과 문맹 성인의 교육 수요가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제주도내 5개 비정규 학교만 하더라도, 재학생 수가 522명(성인 문해교육 340명・검정고시 반 182명)이나 된다. 비인가 시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다. 제도권에서 다 수용할 수도 없다.

특히 우리 사회의 ‘가난의 대물림’이란 악순환을 끊기 위한 최상의 해법중 하나는 교육 격차,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못 배워서 가난하고, 가난하니 또 못 배우고…. 학교 밖, 제도권 밖의 교육 소외계층을 위한 대책과 배려가 강조되는 이유다.

# 제도권 학교가 싫다고 나왔지만, 밖은 더 답답했다

대학생 야학 동아리로 출발한 동려회는 2001년 7일 사단법인 체제로 전환됐다. 동려야간학교는 2004년 7월 동려평생학교로 명칭을 바꿨다. 2005년에는 청소년봉사단인 ‘초아’가 창설됐다. 제주시권 11개 고교 연합 모임인 ‘초아는 ’세상을 초처럼 밝게 비추는 아이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려청소년학교와 동려문화원은 2007년 개설됐다. 동려청소년학교는 학업 중단 청소년 뿐 만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 탈북자(새터민), 국제결혼 이주자 자녀들도 있다.

제도권 학교가 싫다고 나왔지만 학교 밖은 더 답답했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멀어졌고 달리 갈 곳도 없는 청소년들에게 동려는 학교와 사회를 잇는 배움터이자 꿈과 희망의 징검다리다.

작년 8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박은향 양은 새터민 자녀다. 그는 “동려는 제2의 집이었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현장학습, 캠프, 수학여행, 문예행사…, 모두가 저에게 감동과 감사함 그 자체였다”면서 “앞으로도 저의 대한민국 정착기는 그 누구보다도 멋지게 성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려평생학교 중등반 수업 모습. 검정고시 합격과 더 높은 꿈을 향해 오늘도 배움의 불을 밝히고 있다. 2017년 제2회 초·중·고졸 검정고시는 오는 8월 9일 치러진다. 동려평생학교・동려청소년학교는 지난 4월 제1회 초·중·고졸 검정고시에서 43명이 응시해 16명이 합격했다.

# 특별한 입학식・빛나는 졸업장…“앞으로도 더 배워야죠”

동려평생학교와 동려청소년학교는 2016학년도 졸업식에서 3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고등부를 졸업한 학생 중 3명은 대학 진학을 했다. 매년 고등부에서 3~5명은 꾸준하게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 졸업장을 받는 분들도 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다. 이들에게는 박사 학위가 부럽지 않은 빛나는 졸업장이다.

초등이든, 중등이든, 고등이든. 이들 졸업생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늦게나마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짧게는 1년, 길게는 6년 동안 주경야독의 힘든 과정을 견뎌왔기에 정규학교 학생들보다 더 칭찬 받고 귀감이 돼 마땅하다.

# 교육소외계층을 위한 제도권 밖 민간교육시설 꼭 필요

교육의 효율성이니, 효과성, 성과지향성을 운운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제도권 교육의 보완재로서, 교육소외계층을 위한 민간 교육시설은 꼭 필요하다.

초등과정의 김춘생 할머니에게는 ‘즐거운 학교’가 ‘동려’다. 그는 배움이 즐겁고 행복하며, 평생 배움의 끝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6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나/ 가방에 책을 챙기고/ 종종 걸음으로 학교에 오는 길/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오는 길이 즐겁습니다./ 나이 들어 배우는 것이/ 이해는 쉽지 않지만/ 죽는 날까지 배움의 끝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좌승훈 주필.

배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지금은 평생학습 시대이며, 배움에 때가 있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배움의 열정 앞에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김춘생 할머니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좌승훈 주필  domi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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