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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와 흑심 사이안혜경 <갤러리 아트스페이스·씨 관장>

▲ 안혜경씨
음력 5월5일 단오였던 지난 16일 마침, 강릉단오제에 대해 축제적 측면에서 연구해봐야 할 일이 생겼다.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타고 낯선 고장의 축제장 입구에 홀로 내렸다. 마치 주인이 놓고 내린 보따리가 버스 종점에 홀로 덩그마니 남겨진듯.

설이나 추석이 가족과 친족 중심의 명절이라면 단오제는 그 지역 공동체들이 중심이 되는 명절이란다. 이 단오제의 제례와 굿 그리고 난장과 퍼레이드 등 모든 행사의 진행과정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 정도로 강릉시민 전체가 이 명절에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곳 재단 사무실을 방문해 정신없이 바쁜 기획 실무자와 간단히 이야기 나누고 자료들을 얻었다. 연구라지만 축제장 같이 삼삼오오 어울리는 곳에 홀로 살피고 다니려니 시쳇말로 ‘뻘쭘’했다.

낯선 호의

그 와중에 강릉 단오굿에 27년여를 찾아 거의 행사 관계자가 다 된 한 남자분이 제례때 사용된 ‘신주’를 받아다 권하며 친절히 과정 설명을 해줬다. 오, 행운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축제장을 방문한 터라 본능적 탐사작용이 급히 가동된다.

재빨리 촉수를 세우고 혹여 ‘흑심 남(黑心 男)’은 아닌지 긴장하며 눈치 못 채도록 경계의 눈빛을 반짝반짝! 자신이 가진 정보를 나누어 주려는 친절함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지만 경계경보는 민방공훈련에서만 있는 게 아님을! 그건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피해사례에 근거하는 것이다.

낯선 관계 속, 특히 그 상대가 여성과 어린아이에 대한 남성(남성 여러분! 모든 남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므로 열 받지 마시길!)의 호의일 때 흔하게 갖게 되는 경계심의 출발점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상대가 자신의 호의를 흑심으로 오해할 때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렇지만 며칠 전, 한 남자가 여중생의 강아지를 일부러 겁주어 도망가게 해놓곤 찾아준단 호의를 베푸는 척 소녀를 자신의 오토바이에 태우고 인적 드문 곳으로 데려가 성폭행 하려다 검거된 사례가 있지 않은가. 이런 경우들이 왕왕 있기 때문에 여성이나 어린아이들은 늘 낯선 자의 호의에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배운다,

슬프게도! ‘해와 달이 된 오누이’란 전래동화 속에서도 호랑이의 흑심은 철저히 위장된다. 물론 엄마 치마 사이로 보인 호랑이 꼬리로 상황을 눈치 채고 지혜롭게 대처하지만. 휴~~~ 물론 흑심마저도 호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흑심임을 알면서도 소위 그 ‘작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일 것이다.

역사속 흑심

세종시 수정, 4대강, 천안함 침몰 사건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주장에 많은 국민들이 깊은 의혹을 느끼고 있다. 호의를 흑심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순간은 아주 사소한 거짓이라도 포착될 때이다.

각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도 막 끝났다. 이제 새로 선출된 도지사와 지역의원, 교육위원과 교육감이 호언장담한 약속들이 과연 우리들에게 호의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사욕을 만족시키는 흑심이 될 것인지 예민한 촉수를 세워 잘 살펴 대처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흑심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가 부당한 한일합방을 막아줄 호의가 아니라 실은 1차 대전 승전국들이 패전국들의 식민지를 가로채려는 흑심이었음을 1907년, 고종은 까맣게 모르고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지 않았던가. 더 기막힌 것은 그것이 미국의 흑심이었음을 70여년이 지난 후에도 제도교육에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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