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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젠거리, 그 낯설고 조잡함에 대하여

[좌승훈 칼럼] 제주시 연동 7길. 이 곳 남북 방향의 차 없는 거리 448m 구간은 바오젠(寶健) 거리다.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와 함께 제주를 대표하는 특화거리 중 하나다.

바오젠은 중국 건강용품 회사다. 2011년 9월 8차례에 걸쳐 1만4000여명의 인센티브 관광단을 보내온데 대한 화답 차원에서 조성됐다. 유커(游客) 명소로서, 지속적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러나 도민들에게는 불편하고 기이하고 낯설음이 공존하는 곳 또한 바오젠 거리다.

중국 특정 기업명을 딴 거리명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그리고 기업유치와 국제교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임에도 당초 중국 기업 측이 약속했던 대규모 인센티브 관광단은 2011년 한 해에 그쳐 명예도로 지정 의미가 퇴색됐다고 시비를 걸자는 것은 아니다.

# 기초질서 계도 한글 안내판 “쪽팔린다. 차라리 없애라”

우선 콘텐츠의 문제다. 거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초질서 안내 간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무질서 경고판으로서, 2개가 설치돼 있다.

무단횡단 하지 말 것이며, 담배꽁초와 껌은 재떨이와 휴지통에, 그리고 노상 방뇨나 침을 뱉지 말라는 경고문이다. 한글, 영문, 중국어 순으로 돼 있다. ‘Don't do that' 제목에 친절(?)하게 픽토그램(Pictogram)도 그려 놨다. 범칙금이 부과되니 주의를 바란다는 내용도 있다.

그런데 길에 소변을 보는 모습, 침을 뱉고, 담배 피며 걸어가는 모습의 픽토그램을 보노라면, 불쾌하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바오젠 거리 북쪽 입구와 거리 중간에 2기의 기초질서 계도 안내판이 있다.

이 경고문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한 것이다. 자치경찰은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인이 많이 찾는 바오젠 거리와 성산일출봉 등에서 2467건의 기초질서 위반을 적발했다. 오죽하면 간판까지 세웠을까?

문제는 주 대상이 중국인 관광객임에도 한글, 영어, 중국어 순으로 돼 있다. 마치 제주도민 또는 내국인이 기초질서 위반의 주범인양 오해의 소지가 있다.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공중도덕과 질서를 배워야 할 만큼 시민의식이 낮다고 대내외에 알리는 것도 아니고…. 쪽팔리는 일이다.

차라리 안내문을 중국어로만 하든지, 아예 안내문을 없애고 단속 순찰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형물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에는 설문대할망, 제주해녀, 돌하르방 등의 조형물이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보기 좋으라고 만든 조형물이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흉물로 전락했다. 어울리지도 않고 보기도 싫다는 것이다.

예산이 없다고 조잡한 조형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면 더욱 더 용납 받을 수 없는 일이다.

손목이 잘린 채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설문대할망상.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이자 거인 여성 창조주 신화의 주인공을 행정은 이렇게 만들었다.

# 거인 여성 창조주 신화의 주인공 “조잡하고 초라하다”

먼저 설문대할망상을 보라. 설문대할망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거인 여성 창조주 신화의 주인공이다. 제주를 만든 창조의 여신으로 개척과 창조정신, 건강과 다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의 상징이다.

그러나 바오젠 거리에 있는 설문대할망상은 신화 속의 설문대할망의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초라하고 볼품없다.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싱가포르의 멀라이언(Merlion)에 못지않은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인데도 조잡하기 그지없다. 전시성 낡은 행정이 그렇게 만들었다.

더욱이 관리 소홀로 설문대할망의 손목이 잘린 채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행정은 설문대할망 콘텐츠를 더 이상 망가뜨리지 말라. 철거하는 것도 방법이다. 차라리 조경수를 심거나 작은 휴게 공간을 만드는 게 낫다.

바오젠 거리에 있는 2기의 해녀상.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해녀의 강인함과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다.

# 안내문조차 없는 해녀상…사진 촬영용 소품 전락

다음은 해녀상 조형물. 바오젠 거리에는 2개의 해녀상이 있다. 먼저 장소의 미학이다. 공공 조형물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필자는 해녀상이 왜 이곳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해녀의 강인함과 당당함, 숨 하나로 바다 누비는 담대한 여성성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설치에 급급한 나머지, 해녀상에 대한 안내문조차 없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사진 촬영용 소품일 뿐이다.

바오젠 거리 표지석에 왜 돌하르방이 서 있지? 돌하르방 조형물의 일부도 금이 가고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돌하르방 조형물도 짚고 넘어가자. 돌하르방은 바오젠 거리 탄생과 함께 대표 상징물이 됐다.

바오젠 거리 표지석 위에 서 있는 돌하르방은 왠지 낯선 모습이다. 생뚱맞다고나 할까? 바오젠 거리와 돌하르방이 어떠한 연관 관계를 갖고 있는 지, 억지춘향은 아닐까?

돌하르방 조형물의 일부도 금이 가고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공공 조형물들이 관리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흉물이 되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좌승훈 주필.

분명한 것은 향후 공공장소에 조형물을 건립하고자 한다면, 조례나 규칙 등 관계 규정에 따라 공정한 심사를 통해 선정해야 하며, 사전 주민 의견 수렴과 함께, 체계적인 사후관리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예산낭비를 막고 조형물이 부실하게 방치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건립 및 관리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보여주기 식의 낡은 전시 행정과 무감각한 행정의 안일한 관행은 바오젠 거리 하나로 족하다.

좌승훈 주필  domi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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