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유형 갈수록 다변화, 영역도 확대 추세
사회적 비용 증가, 갈등관리 역량 강화 절실

[좌승훈 칼럼] ‘제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국제자유도시, 특별자치도, 관광 1번지, 평화의 섬, 유네스코 3관왕(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부정적 이미지도 있다. ‘갈등의 섬’이다. 지금 도내에는 수많은 현안이 하루가 멀다고 분출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갈등 유형이 다변화되고, 영역도 훨씬 넓어졌다.

더 큰 문제는 갈등 해결·조정 능력은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점이다. 작은 대립도 어느 순간 갈등으로 증폭돼 버리는 구조가 됐다.

갈등구도가 구조화·장기화되면서 지역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 싸움의 방법 보다, 말리는 방법이 더 중요한 이유다.

# 작은 대립도 갈등으로 증폭…갈등구도 구조화・장기화

최근 노정된 갈등만 하더라도, 제2공항 공군기지 유치 논란, 제주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구상권(求償權) 철회 및 기지 건설과정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에 대한 진상조사, 공공기관 비정규직 부당 해고의 건, 시민복지타운 행복주택 건설 반대, 초등학교 앞 무인텔(유흥가) 확산 반대 탄원, 제주 신항만 찬・반 대립, 환경자원순환센터 건립에 따른 구좌읍 동복리 양돈장 이설 민원,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 중단 등이 있다.

또한 개발바람을 타고 각종 공사가 추진되면서, 각 지역마다 인・허가와 환경오염 여부를 놓고 개발사업자와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지역주민간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이고 있다.

제주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 구좌읍 동복리 제주사파리월드 조성사업, 표선면 세화리 ㈜낙원산업・조천읍 북촌리 다려석산㈜ 토석 채취 반대, 안덕면 서광리 아스콘 공장 설립 반대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한림읍 금악리 신화련 금수산장 관광단지 조성사업은 당초 제주도 도시계획심의위원회가 ‘입지가 부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가, 최근 ‘조건부 추진’으로 입장을 선회함으로써 환경단체와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1995년 6・27 지방선거이후, 주민들이 자치단체장을 주민들이 직접 뽑으면서, 과거 중앙집권시대에서 볼 수 없던 공공갈등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효율성에 근거해 정부 차원에서 권위적으로 공권력에 의해 많은 갈등들을 해결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분권화・지방화가 되면서, 충분한 소통과 절차의 정당성에 의한 갈등해결 자세가 매우 중요해졌다.

어느 분야의 정책이든 정책 대상 집단의 동의와 수용이 없이는 정부 또는 지자체 혼자 기획・집행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 행정의 늑장 대응, 불통, 엇박자…갈등관리 걸림돌 작용

절차와 소통에 대한 관심 없이,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은 단기적으로는 비용 절감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갈등비용이 소요된다.

제주해군기지가 대표적인 예다. 10년 넘은 갈등이다. 행정의 늑장 대응, 보신, 불통, 뒷북, 엇박자, 발뺌 행태도 한몫 거들었다. 되레 갈등을 키웠다.

때로는 행정은 갈등과 대립을 해소해 녹여내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한다. 제주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을 예로 들자. 제주도감사위원회는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하면서 논란의 중심이 된 행정 절차 상의 문제에 대해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행정-시민사회단체, 찬성 주민(오라동‧오등동 발전협의회)과 반대 주민(정실마을회), 찬성 단체(제주도경영자총연합회, 제주시 주민자치위 등)-반대 단체(지역 상권 보호 대책위 등)간 갈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행정은 그동안 민간투자 개발사업에 대해 오해를 살 만하거나 책임질 만한 결정을 회피하려 했다. 소극 행정과 보신주의의 결과다. 행정이 갈등 해결은 커녕,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시민사회단체의 눈치만 본다는 비아냥도 있다.

시민복지타운 행복주택 논란은 소통과 절차의 정당성을 소홀히 한 결과다. 당초 중앙공원에서 시민복지타운(제주시청사 이전 부지 포함) 조성, 시청사 이전 백지화로 사업 취지가 바뀌면서, 환매 소송과 함께 갈등이 확산됐다. 행정만 믿고 땅을 내줬고, 또 주위 시세보다 20~30% 높게 땅을 산 이들이기에 배신감이 더 컸다. 아무리 명분이 있고 결정이 옳다 하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지면 억지이고 집착이 된다.

# 언론 받아쓰기 보도행태, 되레 갈등 키우는 것 아닌가?

언론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 쪽 저 쪽, 기자회견에 대한 단순 받아쓰기 보도행태는 갈등을 더 부채질 할 수 있다.

지금은 모두가 뉴스를 전하는 세상이다. 디지털시대의 열린 네트워크 미디어 환경은 누구나 자신의 저널리즘을 만들어 낼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 전달이 아니라, 그 내용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려 주는 언론이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공론의 장이자, 중심 찾기가 필요한 이유다. 중계식 받아쓰기 보도행태가 되레 갈등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볼 일이다.

 

# 사회협약위 역할 한계…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전환 필요

사회 갈등을 예방하고, 또한 갈등이 발생하면, 이를 중재·조정하고 해결할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도내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사회협약위원회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2008년 3월 구성된 것으로, 갈등 해결 조정 및 예방 등에 대한 자문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뾰족한 성과는 없다. 이는 사회협약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문제다. 공식적인 사회갈등 관련 기구로서, 전국 지자체중 처음 도입된 것이지만, 자문기능에 한정돼 있어 위원들의 의사 결정과 활동 범위에 한계가 있다.

위원 활동에 대한 지원 인력(전담 공무원 1명)과 예산도 빈약하다. 갈등 관리・중재 등 제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제주도감사위원회처럼 자문기구가 아닌,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지위를 가진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갈등관리를 위한 제주도정의 정무 기능도 더욱 강화돼야 한다. 성패는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라, 정무 기능을 총괄 조정할 수 있는 인사에 달려 있다. 지역사회 여론 수렴, 분출되는 갈등 조정, 지역 정치권과 가교 역할 등을 통해 도정과 지역사회의 ‘소통의 길라잡이’ 역할에 진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무원 교육에 갈등 전문훈련 과정을 개설하는 것도 갈등관리 강화 방안 중 하나이며, 갈등을 관리하는 매뉴얼도 필요하다.

# 제대로 된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갈등의 섬’ 오명 벗자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갈등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고,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또한, 갈등이 깊어질수록 경제적・사회적 비용과 손실도 더 커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갈등은 발전의 ‘성장통’이라는 점이다.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면, 분열의 도화선이 아니라, 통합과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갈등관리 역량을 키우는 것은 지역사회 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좌승훈 주필.

이는 도민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화합형’ 지도자가 절실한 이유이자, 상생·관용·통합을 위한 지역사회 구성원 간 사회적 합의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소통과 절차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곳만 보면서 대립할 게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보면서 갈등을 봉합하고 재도약의 기회를 찾는 사회 통합 노력이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만 제주가 ‘갈등의 섬’이라는 오명을 벗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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