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 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전 그 옴팡밭에서 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한 대목이다. 순이삼촌은 제주4·3 발생 당시 마을 사람 대부분이 학살로 죽어가는 살육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순이삼촌은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그 굴레를 벗지 못한 채 살다 결국 자살하고 만다. 4·3은 그때의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에게도 씻을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뼈아픈 기억은 세상엔 잊혀진 역사였다. 1978년 현기영은 소설 ‘순이삼촌’을 통해 역사 속에 묻힌 제주의 기억을 끄집어내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끊임없이 제주4·3을 소설속에서 이야기 해왔다. ‘순이삼촌’이 출간된지 30년도 더 흘렀다. 4·3이 발생한지는 60년이 넘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지만 4·3의 아픔은 아직 진행형이다.

스산해진 바람에 옛 기억이 피어오르는 계절 가을, 현기영과 함께 제주 역사여행을 떠난다. 첫 출발지는 순이삼촌의 배경 북촌리다.

# 아픔을 간직한 마을, 북촌리
 

제주 근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마을. 일제시대의 잔상인 일본군 진지동굴이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1949년 마을 대량 학살이 이뤄졌던 곳이다.

북촌리 양민 학살사건은 4.3항쟁 당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너븐숭이 4·3기념관’에 가면 그때 북촌리에서 일어난 사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작은 규모지만 당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서를 비롯해 여러가지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기념관에는 4·3을 다룬 화백들의 그림·만화를 비롯해 총살 현장에서 나온 탄피와 현장 사진 등도 전시돼 생생한 당시 상황을 설명해준다.

기념관 오른쪽 언덕배기에는 당시 애기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북촌리 주민이 증언한 무덤이다. 희생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기념관의 희생자 신위에도 ‘OOO’로 표기된, 이름 잃은 아이들이다.

희생자들이 집단으로 총살당한 곳은 주로 마을 주변의 밭이었다. 학살이 끝나고 사람들은 거기 쌓인 시체를 치우고 이듬해부터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송장거름’을 먹고 자라난 농작물은 무럭무럭 자랐지만 아무도 그것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순이삼촌도 자신의 오누이를 묻은 근처 밭에다 고구마를 갈았다. 호미 끝에 ‘흰뼈’와 ‘녹슨 납탄환’이 부딪치는 곳이었다. 순이삼촌은 대낮에도 콩볶는 듯한 총성의 환청을 들어야 했고, 끝내 그 옴팡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기영은 그것을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猶豫)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다’고 표현했다.

“동생들을 찾기 위해 막 다녔는데 나중에 보니까 저 소낭 밭에서 찾았어요. 제일 밑에 동생(당시 5세)은 총 안 맞고, 추워서 죽었어요. 둘째 누이동생(10세)은 가시덤불 위에 넘어져 있었고, 또 제 밑에 동생(8세)은 이마에 총을 맞았어요. 각기 손에 고무신을 다 쥐고 그렇게 죽어 있었어요. 그래서, 너븐숭이에 지금 무덤이 있어요” -김석보(북촌리 주민) 전시물 내용 중에서

아기무덤과 함께 주민 증언은 당시 학살이 얼마나 잔인무도했는지 보여주는 지극히 사실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기념관 옆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서 있기도 하다. 이밖에 북촌리에는 서우봉 해변을 비롯해 올레길, 자그마한 북촌포구, 옛 마을주민들의 식수원이던 용천수 등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너븐숭이 기념관이 있는 곳은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1599번지.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를 타고 북촌 방향으로 가다보면 함덕초등학교를 지난다. 그곳에서 10여분 북촌삼거리를 지나면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 변방에서 우짖는 ‘아부오름’

이번에는 오름으로 장소를 이동해보자.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한 아부오름. 이곳은 1901년 제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천주교인과 주민들 간의 충돌사건을 다룬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 오름은 제주 오름 중 인지도가 꽤 높지만 영화가 현기영 소설(변방에 우짖는 새)이 원작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아부오름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이재수의 난’이다. 1901년 제주도에서 실제로 일어난 천주교인과 주민들 간의 충돌사건을 다뤘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엔 천주교인이 핍박 받는 존재가 아닌 프랑스인 신부의 힘을 업고 민초들을 억압했다는 사실. 여기에 세금징수관의 횡포까지 더해져 민초들의 삶은 고달파지기만 했다.

결국 민초들은 천주교인과 싸우며 대항했지만 민초들을 이끌었던 이재수는 끝내 체포돼 사형을 당한다. 이재수의 난은 대한제국(1897~1910년) 당시 외세를 업고 들어왔던 천주교의 폐단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현기영 작품 ‘변방에 우짖는 새’는 이 민란과 함께 제주도들의 수난사를 그려내면서 유배문화로 인식돼 온 제주의 통념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변방’이라는 제목처럼 주류와 거리를 둔 지역특성을 얘기하는 것처럼 아부오름도 제주 동녘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다.

잔디밭 언덕이나 다름없는 아부오름은 겉으로 보면 보잘 것 없어도 그 특이한 분화구로 인해 특별한 오름이라 할 수 있다. 교래리에 있는 산굼부리와 안덕면 광평리에 있는 왕이메와 더불어 원형 분화구의 대표적인 기생화산으로 꼽힌다.

아부오름은 대천동 사거리에서 송당리 쪽으로 3km를 간 후 수산리 방면으로 1.7km 지점에 이르러 좌측으로 400m 더 가면 만날 수 있다.

# 바람타고 흐르는 숨비소리

현기영과 함께 하는 제주여행은 마음속 깊이 아려올 수 있다. 작품 ‘바람타는 섬’ 역시 세화리 바닷가를 배경으로 해녀들의 항일운동이 쓰여졌다.

하도리는 제주해녀가 가장 많은 곳이고, 항일투쟁의 주모자 역할을 한 해녀들이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내용인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2년 1월 구좌읍과 성산읍·우도면 일대에서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항일 사건이다.

구좌읍 상도리 연두막 작은동산에 가면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공원이 있으며 제주해녀박물관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제주 해녀박물관은 지상 4층의 건물에 3개의 전시실과 영상실, 어린이해녀체험실, 야외 전시실 등의 시설을 갖췄다.

내부 전시실에는 제주어촌의 모습과 세시풍속을 알수 있도록 만들었고 해녀의 집과 해녀 옷,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모형들도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2003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녀들에게 수여한 훈장들도 눈길을 끈다.

야외전시장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잔디밭과 여러 가지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또 바다 물질체험과 해녀 옷 입어보기, 물허벅 등에 지기, 바닷속 해산물 채취 등 다양한 체험코너를 마련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성인 1100원, 어린이 500원 입장료를 받는다. 버스를 이용해서 찾아간다면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성산 방향 버스를 탄 후 구좌읍 하도리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앞에서 하차(5~60분 소요)하면 된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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