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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낸 굴삭기 기사, “음악은 내 삶, 희망”평범한 가장의 음반 제작 도전기… “꿈은 이뤄진다”
오현민 씨, “사랑하는 아내.일상 생활 음악에 담아”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음반 낸 굴삭기 기사 오현민 씨. 오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았던 오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인 '음반제작'에 성공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3학년, 5살 아이의 아빠. 한 여성의 남편. 지역경제의 중심축이라 불리며 한창 경제활동에 ‘올인’해야 할 40대. 굴삭기 기사.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며 자신의 꿈을 이뤄낸 평범한 남성이 화제가 되고 있다. 굴삭기 기사로 활동하며 틈틈이 노래를 만들어 음반을 낸 제주 토박이 오현민(44) 씨가 바로 그다.

오현민 씨는 안덕면 창천리가 고향이다. 그는 창천초등학교, 안덕중학교를 거쳐 서귀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가난한 사람은 꿈도 꾸지 말란 법인가”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음반 낸 굴삭기 기사 오현민 씨. 오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았던 오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인 '음반제작'에 성공했다.

“어렷을 때는 진짜 가난했어요. 말도 못할 정도로요”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학여행을 가지 못해도,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도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어요.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는데 선생님이 수학여행 기간 동안 학교에 나오라는 거에요.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하면 되지 왜 학교에 나오라고 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또 친구들이 모두 있는 교실에서 육성회비 내지 못하는 학생 손들어 보라는 선생님 말에 정말 많이 상처 받았죠”

그런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낙이었다. 모든 ‘희노애락’이 음악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에 의지한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선택한 고등학교는 3년 내내 무상으로 기숙생활이 가능한 서귀포농업고등학교였다. 그의 고등학교 입학엔 적성과 의지는 고려되지 못했다. 일단 학교를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전공을 살려 1992년 산업정보대 축산과에 입학했다. 별 수 없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1992년 대학을 다니던 그는 “도저히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 뒀다. 1년 다니고,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의 삶은 노래와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만들었다. 제대한 뒤 산업정보대를 그만 뒀다. 그는 1997년 관광전문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내가 음악을 전공하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1997년 한국에 IMF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눈물을 머금고 학교를 포기했다.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보고 배운 굴삭기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다.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투입된 곳이 공사현장이었다.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그 때는 진짜 시간적,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했어요. 일벌레 처럼. 굴삭기 일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은 사라졌어요. 그만큼 돈을 벌었죠. 그러고 보니 벌써 굴삭기 일을 한지 20년이 됐네요”(웃음)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음반 낸 굴삭기 기사 오현민 씨. 오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았던 오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인 '음반제작'에 성공했다.

# “내 음악의 주인공, 사랑하는 아내”

경제적으로 안정이 찾아오자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에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만난지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때 아내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친구 결혼식 때문에 제주도에 내려왔다가 저를 만나서 발목이 잡힌거죠. 정말 사랑했고, 정말 아름다웠어요. 물론 지금도요. 그리고 결혼을 해서 아이 3명을 낳고 이렇게 살고 있죠”

그런 그가 음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공사현장, 소위 말하는 고된 ‘막노동’판에서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은 ‘가족’과 ‘음악’이었다. 시간이 나면 그는 노래를 듣고, 또 노래말을 적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지금은 서귀포시청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을 해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졸업한 창천초등학교 운동장에 가끔 들러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요. 거기서 노래도 쓰고요. 물론 집 근처 운동장을 찾는 시간이 더 많죠.  한 시간 동안 눈 감고 운동장 트랙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 분위기를 즐기는 거죠. 눈이오면 오는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또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요”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음반 낸 굴삭기 기사 오현민 씨. 오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았던 오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인 '음반제작'에 성공했다.

그런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아내’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내가 없었으면 내가 이 소중한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는 말을 인터뷰 내내 여러차례 했다.

“제 노래의 대부분은 아내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요. 아내가 참 좋아요. 사랑스러워요. 근데 아내는 표현을 잘 안해요. 가끔 서운하기도 하죠. 그래도 아내가 웃으면 내가 즐겁고, 아내가 슬프면 내가 슬퍼요. 그런 이야기가 가사에 많이 담겨 있어요”

그는 앞으로 아내만을 위한 앨범을 제작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첫눈’, ‘사랑하길 잘했어요’, ‘꿈속에서’라는 제목의 노래를 통해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전할 계획이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음반 낸 굴삭기 기사 오현민 씨. 오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았던 오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인 '음반제작'에 성공했다.

# 딸의 한마디에 자극… 아내 몰래 음반 작업

그런 그가 음반을 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딸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딸이 어느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빠 얼굴보기 힘들다고. 큰딸이 ‘아빠는 맨날 술 먹고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충격을 받았죠. 그 때 딸에게 ‘아빠는 음악을 좋아했다’고 이야기했어요. 아이가 갸우뚱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보여 준다고 약속해 놓고 3년만에 음반을 내게 됐어요”

아내의 반대도 심했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들어갈 비용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 몰래 용돈을 모았다. 그 사이에 노래도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 그 기간이 3년이었다. 

큰딸 한마디가 자극이 돼 실천해야 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딸에게 당당한 아빠, 딸에게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3년만에 딸에게 음반을 보여줬더니 ‘대박’이라고 웃더라고요. 딸이 미술을 하는데 자기도 노력하면 되겠다는 것을 느끼더군요”

# “에이 굴삭기 기사가 뭔 음반이야…어? 진짜네?”

음반을 낸다고 하니 주변에선 시큰둥 했다. 그가 가진 직업 때문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막노동하는 네가 무슨 음반을 내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반응을 뒤로한채 묵묵히 조금씩 음반작업을 ‘차곡차곡’ 해 나갔다. 

그런 그가 음반을 내고, CD를 내보이자 “야 너 진짜였어?”라는 반응이 되돌아 왔다. 왠지 뿌듯했다. 말마따나 주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꿈은 꾼다고만 이뤄지지 않더라고요. 경제적, 시간적으로 많이 어렵지만 조금씩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루게 되더라고요. 진짜 기분이 좋고, 제 스스로에게도 너무 놀랐죠”

친구들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초,중,고, 대학교 친구들 모두 놀랐다. 가정을 이루며 먹고 살기도 힘든데 노래도 쓰고, 음반까지 제작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음반 낸 굴삭기 기사 오현민 씨. 오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았던 오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인 '음반제작'에 성공했다.

1집 앨범에 대한 소개좀 부탁한다. 

 - 1집 앨범에는 8곡이 수록돼 있다. 1집은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내가 앨범 낸 사실을 아내가 뒤 늦게 알았다. 많이 화낼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반응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음악을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

 - 절대 그런적은 없었다. 포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딸과의 약속도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음악은 내 꿈이었다. 가슴에 꿈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꿈을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도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물론 노력 없이 꿈을 이룰 수는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 

 

노래가사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가사로 옮겼다. ‘사려니숲’ 이라는 노래는 가족과 함께 ‘사려니숲’을 걷다 나온 노래다. 1집 앨범 가운데 ‘창천’이라는 노래가 있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모두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에 가사를 적어 노래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애착가는 곡은 ‘창천’이다. 먼 훗날 또 다시 들으면 가슴이 ‘뭉클’할 것 같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음반 낸 굴삭기 기사 오현민 씨. 오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았던 오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인 '음반제작'에 성공했다.

고향, 친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 지금은 서귀포시청 신축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가끔 일을 마치고 창천리를 한바퀴 돌아 제주시로 돌아오곤 한다. 학교, 마을, 오름을 둘러보고 온다. 정겹지 않나.

‘창천’이라는 노래가사도 마을을 걷다 보니까 나온 것이다. 그 감정을 담아서 불러야 겠다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다. 

 

상업적 음반을 낼 계획은 없나. 

 -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음악을 했다. 1집을 500장 제작했는데, 모두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몇달 후에 2집 싱글앨범이 나온다. 500장을 제작해 선물할 것이다. 내 음악을 들어주는 것 자체가 고맙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건 싱글앨범 말고도 오직 아내를 위한 앨범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노래도 이미 다 있다. 아내를 위한 앨범은 시간 문제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음반 낸 굴삭기 기사 오현민 씨. 오 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해도 포기하지 않았던 오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인 '음반제작'에 성공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 사람이 아무 꿈도 없이 사는 것 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삶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즐겁지 않나. 내 경우가 그렇다. 노래, 음악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엔돌핀이 돈다.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난 이러한 방식으로 삶을 즐기고 있다. 삶을 견디는게 아니라, 계획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있는 것 같다.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나. 

 - 제주도에 음악하는 분들이 많은데, 지역색이 담긴 노래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제주풍경을 노래로 승화 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제주를 많이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병근 기자  whiteworld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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