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태풍 차바 내습에 만신창이…나리 악몽 재현
꺾인 가로수․패인 도로․넘친 하천…소 잃고 외양간도 못고친 격

[제주도민일보=허성찬 기자] 태풍 차바의 내습에 제주섬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한천이 넘치며 차량 수십여대가 쓸려갔으며, 대규모 정전과 단수사태에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만했다.

또 각종 공사장에서 차단막이 휘어지는 등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으며, 대형크레인이 도로를 덮치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더욱이 오는 14일까지 신고접수중인 1차 산업 피해는 농업과 축산업, 양봉업, 양식업에 이르기까지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피해 가운데 일부 피해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2007년 태풍 나리가 제주섬을 강타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한라산 성판악에 최고 556㎜를 비롯해 제주시 420㎜, 서귀포시 323㎜ 등 기록적인 폭우와 함께 순간최대풍속 40m/s를 강풍을 동반했다.

이에 산지천과 한천, 병문천 등에 주차했던 차량들이 대규모로 휩쓸려 뒤엉키고 동서한두기로 쓸려간 차량만 모두 2000여대에 이르기도 했다.

지난 5일 태풍 차바로 범란한 한천 인근 용담2동의 모습. 쓸려온 차량들이 뒤엉켜 있다.

실제 위력면에서 보면 이번 태풍은 나리를 능가한다.

한라산 윗새오름에 624.5㎜의 물폭탄을 쏟아부었으며, 오전 3~4시를 기해 시간당 171.5㎜의 폭우가 쏟아지며 흡사 하늘에 구멍이 난 착각마저 일으켰다. 고산 지역 56.5m/s, 제주 47m/s 등 순간최대풍속도 강했다.

태풍 나리 이후 제주도는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제주시에 12개 저류지를 설치하는 등 대비책을 강구했지만 하천범람이 되풀이 된 것이다.

특히 한천의 경우 제1과 제2저류지가 설치되며 89만 9000t의 용량을 감당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일각에서는 17만여t의 용량을 감당할 수 있는 한천 제2저류지가 애초부터 설계가 잘못돼 제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마저 일고 있다.

준공 2개월만에 강풍에 지붕이 파손됐던 제주복합체육관. 안전 설계에 맞춰 지붕을 수리했음에도 이번 태풍 강풍을 못이기고 또 지붕이 파손됐다.

또한 2014년 6월 32m/s의 강풍에 준공 2개월만에 지붕이 파손됐던 제주복합체육관은 이번에도 강풍에 어김없이 지붕 일부가 파손됐다.

당초 복합체육관 지붕은 순간최대풍속 50m/s에 견딜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첫 파손 이후 보수공사도 그에 초점을 맞춰 이뤄졌다.

그럼에도 지붕이 날아간게 과연 자연재해 때문일까. 지붕이 날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오전 3~4시 당시 인근(아라동)에 측정된 순간최대풍속은 27m/s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와함께 하천 복개지 및 무분별한 도로 개발로 인한 하수구 역류 등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태풍 나리의 내습으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쳤던 제주도. 그러나 이번 차바로 외양간을 잘못 고쳤음이 속속들이 확인되는 마당에 좀 더 체계적인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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