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희 <전 대통령비서실 노동고용정책 비서관>

▲ 강순희
얼마 전 영국에서 200번이나 일자리를 찾았으나 실패한 20대 여성이 자살한 사건이 우리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이는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취업문제로 인한 우울한 소식을 언론을 통하여 종종 접하게 된다. 이렇듯 일자리 문제는 인생의 중심이자 삶의 원천이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를 포함하여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직장이 있는 사람들도 그 일자리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자리, 세 글자에 담긴 사회적 소용

일자리는 생계유지를 위한 소득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일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나아가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기초이기도 하다. 정년퇴임 후 별다른 일없이 지내시는 분이 일에 시달리지 않아서 더 좋아보여야 할 텐데, 갑자기 늙고 무기력하게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아마도 이것은 일자리가 개인에게 미치는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또한 일자리는 사회·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일자리를 통한 소득의 획득은 소비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는 결국 생산과 투자의 증가, 일자리의 증가로 나타나게 된다. 국민경제 성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일자리가 많아지면 사회의 부담도 줄어든다.

당장 실업급여와 연금 지급이 줄어드는 등 사회복지비용이 줄어들고, 근로소득에 따른 조세수입은 증대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일자리의 양과 질은 한 사회의 역동성과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된다.

성장만이 일자리 창출의 동력은 아니

이러한 일자리 문제가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사실 일자리 문제는 최근이 아니라 그간 구조적으로 꾸준히 누적되어 왔던 문제인데, 그것이 97년 말 외환위기를 계기로 폭발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우선 일자리 창출의 근원인 성장률이 꾸준히 낮아져 왔다. 또한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예전만큼 늘지 않는다. 무한 경쟁 속에서 기업들은 자동화와 기계화 등을 필두로 한 기술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이에 따라 예전과 똑 같은 양의 생산을 하더라도 노동력이 그 만큼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고용흡수력이 높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부문은 이미 과잉고용상태로서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이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성장만 이루어지면 자동적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분배와 복지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그간의 성장모형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살아남은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인력을 덜 쓰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필요한 인력도 가급적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인력을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비정규직의 증가는 이러한 현상의 반영이다.
 
따라서 현재 일자리의 문제는 기존의 ‘성장을 통한 고용’ 전략을 넘어 ‘고용을 통한 성장’, ‘고용과 함께하는 성장’ 경로를 새로이 개척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그간의 장시간 노동, 낮은 생산성과 높은 산업재해 등에 기초한 물적·규모의 경쟁에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디자인·신뢰의 경쟁으로 전환하는 고숙련인력 기반의 고부가가치화 전략(high-road strategy)을 추구하여야 한다.

또한 저출산·고령화의 진전, 다양한 사회서비스 수요의 증가, 여성들의 사회진출 증대 등에 따른 일자리 수요는 새롭고도 더 많은 일자리를 요구하는데 이에 부응하여 공공이 공공·사회서비스 분야의 고용창출을 선도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 등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면 그것이 소득, 소비의 원천으로 작용하여 결국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유인하고, 고용서비스를 확충하는 등 일자리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의 투자유인과 일자리 창출의 조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이른바 노동유연성과 고용안정성의 적절한 조화도 불가피한 필요조건이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