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일하는 날’ 주부들엔 훤한 고생길
가족상봉‧여행‧휴식 필요하면 설레는 휴일
저마다 처한 환경 따라 달라진 세태 반영

[제주도민일보DB].

[제주도민일보=조문호 기자] 모든 것이 풍성해지는 가을의 명절 한가위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년에 두 차례 하는 ‘민족 대이동’이 다시 시작됐다.

누구나 가슴 속에 풍요로움을 느끼는 시기,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친지를 만나고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는 기쁨 가득한 ‘밝을 明(명)’ 명절이다.

하지만, 요즘엔 명절이 이와는 반대로 ‘어두울 명(暝)’ 명절인 경우가 더 많다.

기사취재를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분명해졌다. 추석을 기다리는 사람은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반해 “추석이 싫다”는 답은 너무나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추석 오는 게 싫다’는 대부분 여성들의 반응이었다.

바로 명절이라는 것이 차례음식용 장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하루는 장을 보고 하루는 음식을 마련한다.

추석날 당일이면 차례상 준비를 해야 하고, 차례를 끝낸 뒤에는 가족 및 친척들의 상을 차려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설거지를 하고, 성묘를 가서도 음식을 챙겨야 하는 이들에겐 명절 연휴는 스트레스 주간일 뿐이다.

30대 주부 A씨는 이 때문에 “나의 추석 연휴는 (명절 연휴가 끝난) 토요일부터”라고 말했다.

40대 주부 B씨는 “이런 관습은 없어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여기에다 ‘시집가라’는 잔소리 때문에 명절에 집에 가기 싫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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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30대 직장남 C씨 또한 다르지 않다. 명절에 고향에만 가면 친척들이 “너는 왜 아직 장가를 안 가느냐”고 쉴 새 없이 물어보는 통에 도망가기에 바빴다.

C씨는 결국 명절을 피해 고향집을 찾고 있다. C씨는 “직접 얼굴 보고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부담은 없어졌다”면서도 “어머니 혼자 계셔서 미안한 마음은 싹 가시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다른 명절은 몰라도 이번 추석만큼은 기다렸다가 막판에 기분이 틀어진 30대 직장남 D씨의 경우도 있다.

D씨는 이번 추석 때는 큰 수고를 덜 뻔했다. 부모님이 안양에 사는 형집으로 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평소 명절 때마다 차례음식을 자신이 준비해야 했기에 연휴가 말 그대로 ‘계속해서 쉬는[連休]’ 시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갑자기 부모님이 ‘형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다.

D씨는 “오랜만에 오롯이 쉴 수 있는 연휴가 되나 싶었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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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명절이, 그리고 연휴가 반가운 이들은 있다.

제주대 교수 E씨는 12일과 13일 연차를 내고 일찌감치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올라갔다.

평소 제주에서 혼자 사는 E씨이기에 처자식을 보고픈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늦둥이로 둘째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애틋한 마음이 더했다.

30대 정착주민 F씨도 이번 추석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제주도민일보DB].

제주도로 이주한 지 2년간 꼬박꼬박 서울 본가를 찾았지만 올해 추석은 가지 않기로 한 F씨. 대신 긴 연휴를 지인들과 육지 나들이를 떠나기로 한 F씨는 “제주도로 온 이후로 육지로 여행을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된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생활 중인 30대 직장녀 G씨는 연휴라는 자체에 만족하고 있다. 평소에 밀렸던 잠을 마음껏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기만 하다.

조금씩 변하는 세월만큼 달라진 명절 세태에 따라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부담을 지우면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유를 안기는 현실 속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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