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기자와 K기자 '인터넷 용어'로 대화 나누다

L기자와 K기자, 10월9일 한글날을 맞아 인터넷용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로 한다. 2년 밖에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갈수록 한국사회에서 소통이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짧게 요약해 싣는다. 이해가 어려운 용어는 별도로 설명한다.


띵동~ '강 기자‘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띵동~ ’이 기자‘님이 입장하셨습니다.


강 기자(이하 강) : 뭐 해요?

이 기자(이하 이) : 밥 먹어.

강 : 갑자기 배고픈데. 반찬이 뭐에요?

이 : 비싼거. 금(金)치.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아주 좋네~

강 : 헐~ 완죤 무개념~

☞ 헐~ (황당하거나 어이가 없을때 쓰는 표현) 완죤 (매우, 아주) 무개념(의식 혹은 개념이 없다는 말)


이 : 선배한테 말하는 모양하곤, 쯧.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문제긴 해 그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맘 편하게 김치를 씹어대고 있으니.

강 : ‘가카’께서는 양배추 김치 먹은거 모르세요? 청와대도 배추김치 비싸다고 양배추 김치 올라간다던데.

☞ 가카 (대통령을 존칭하는 ‘각하’를 비꼰 단어)


이 : 근데 양배추도 비싸잖어. 여론에서 비판한 거 몰라?

강 : 뭐 모르는바는 아닌데요. 그래도 지금 김치 먹으면 ‘흠좀무’.

☞ 흠좀무(흠, 좀 무섭겠군요.의 줄임말)


이 : 다 먹었다! 됐냐?

강 : 이제 대화에 집중해요

이 : 근데 너는 기자면서 왜 그리 인터넷 용어를 쓰냐.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강 : 재밌잖아요. 메신저할때만 이렇지, 밖에선 잘 안써요. 그리고 오늘 만남의 주제가 ‘인터넷 용어’니깐.

이 : 그렇긴 하다. 근데 나도 뭐 인터넷 초기부터 대학생활을 했지만 갈수록 나이어린 세대와 소통이 어렵긴 해.

강 : 아휴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에요. 죽겠어요. 같이 대화하려하면 도저히 얘기가 안돼요. 선배 그 말 아세요? ‘아싸’.

이 : 아싸가 뭐냐. 아싸는 뭐 아주 좋다할 때 쓰는 거 아니냐?

강 : ‘아웃사이더’의 준말이래요. ㅋㅋ 웃기죠. 후배가 “난 과에서 아싸야” 그러는데 처음엔 싸우겠다는 얘기로 들었어요 ㅎㅎ

이 : 클쿠나 ☞ 글쿠나 (그렇구나의 줄임말)

강 : ㅎㅎ 선배도 쓰네요 뭐.

이 : 이 정돈 애교지. 기본적인 말은 알지. 흔히 쓰는 말 있잖어. ‘ㅋㅋㅋ’나 ‘ㅎㅎㅎ’나, ‘ㄷㄷㄷ’나 ‘안습’, ‘지못미’ 등등.

☞ ㅋㅋㅋ,ㅎㅎㅎ,ㅋㄷㅋㄷ(하하하, 키득키득 등의 웃음을 표현), ㄷㄷㄷ(두려움, 황당함, 대단한 것 따위를 볼때), 안습(안구에 습기가 차다의 줄임말. 눈물이 난다는 표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의 줄임말)


강 : 걍~ 기사만 쓰는 샌님인줄 알았는데, 은근히 ‘쩐데’요?

☞ 걍 (그냥의 줄임말), 쩐다(아주 대단한 것을 표현)


이 : 그 정도는 알아듣거든--;; 아무리 인터넷 용어에 대해 이야기한다지만 처음부터 너무 남발하는거 아니냐?

강 : ㅋㄷㅋㄷ

이 : 근데 왜 인터넷 용어를 쓸까?

강 : 빠르고 편리하잖아요. 처음엔 불편한데 익숙하면 굉장히 좋은게 또 인터넷 용어에요. 어차피 인터넷이라는게 스피드 싸움인데, 특히 한국사람들은 스피드에 집착하잖아요ㅎㅎ 근데 왜 육상은 발전하지 않을까. 하여튼 인터넷 용어가 소통을 단절시킨다 하지만 한편으로 스피드로 경쟁해야 하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니까.

이 : 근데 보면 내용이 없는 대화도 많아

강 : 갑자기 퀴즈. 방금 선배가 한 말을 인터넷 용어로 쓰면 어떻게 되는줄 알아요? ‘지대 냉무’ ㅎㅎ

이 : 뭔 말이냐..--

강 : 지대는 ‘제대로, 많이’라는 뜻이고, 냉무는 ‘내용이 없다’란 말이에요. 봐요 얼마나 효율적이에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말, ‘효율’ ㅎㅎ

이 : OTL ☞ OTL(좌절을 뜻하는 용어. 모양이 잘 보면 좌절하는 포즈 같습니다)

강 : 인터넷 용어는 결국 사회와 소통수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죠. 어린 세대를 탓할 필요 없어요. 예전에 어른들은 말 안줄였어요? 토토즐(과거 쇼 프로그램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줄임말)이나 화만나(과거 쇼 프로그램 ‘화요일에 만나요’ 줄임말)도 있잖아요.

이 : 토토즐이나 화만나는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었지. 쉽게 대입할 대상이 있잖아.

강 : 지금 인터넷용어도 그렇죠. 대입 못할게 뭐있어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요. 물론 한두번 더 생각을 해야하지만. 어쨌든 전 과거에도 줄임말 중심의 인터넷 초기용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사용되는 인터넷 용어가 과거에서 변화발전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이 : 그래, ‘님좀짱’ 이다ㅎㅎ

☞ 님좀짱 (당신이 조금 최고다라는 뜻)


강 : 에이 할거면 '킹왕짱'으로 해주지

☞ 킹왕짱 (당신이 가장 최고다라는 뜻)


강 : 이런 생각을 해요.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용어를 쓴다고 비판이나 압박하는건 좋은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기성세대의 접근방식이 젊은 세대와 더욱 소통을 가로막는 거에요. 인터넷 용어의 시발점은 인터넷이란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이지, 젊은 세대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아니라구요.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 도구를 갖고 최상의 소통 전략을 개발하는 거에요. 그 결과가 인터넷 용어인거죠.

이 : 동의하는데, 사실 무분별하다는 생각이 들긴 해. 현상이 본질을 덮어버리는 것은 문제야. 그야말로 ‘본말전도(本末顚倒)’라는 거지. 현재 인터넷용어의 현상이 근본적인 소통의 개념까지 바꾼다거나 뒤집어버리는 것은 혼란을 부른다는 얘기지. 봐, 너와 나도 소통을 하기 위해 이 공간에서 만났는데, 네가 쓰는 인터넷용어로 소통이 쉽지 않잖아.

강 : 그렇죠 ‘솔까말’ 대놓고 쓰면 아예 입을 닫아버리게 할 수도 있는데. 선배니 봐주네요. 김치 좀 챙겨주시면 봐줄 수 있고. 헤헤

☞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의 줄임말)


이 : 그리고 인터넷 용어가 소통방식에 있어서 권력이 돼버리면 더 큰 문제야. 특정 세대만 가능한 소통방식이 세대간 단절을 꾀하고, 결과적으로 소통이 단절된 세대를 소위 '왕따‘ 시켜 권력으로 자리잡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지.

실제 그런 조짐이 보인다는게 걱정이야. 거리를 봐. 이젠 휴대폰 없는 세대가 없고, 스마트폰이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어. 그야말로 우리가 몰랐던 소통의 환경이 끝없이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야.

과거엔 문자로 가능한 소통이 이젠 사진과 영상까지 동원돼. 여차하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을 남겨 상대에게 들이미는 거지. 굳이 문자의 습득이나 해독력이 갈수록 필요 없어지는거야. 왜? 문자로 표현이 안되면 직접 찍어서 전송하면 끝이거든. 그런점에서 보면 인터넷용어도 구식 소통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야.

강 : 동의해요. 하지만 좀 다른 시각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던 문자도 세대를 통해 새롭게 계승된다고 생각해요. 문자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 다만 세대에 맞게 새롭게 보존, 계승되죠. 그런 점에서 인터넷 용어는 문자를 시각화해서 변화, 계승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세대가 문자를 종이에 옮겨 적을 수 있는 수준의 2차원적 개념에서 사용했다면, 지금 세대는 시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3차원적 공간으로 문자개념을 확대한거죠.

조금 전에 선배가 이야기했던 ‘OTL'도 따지고보면 사람이 좌절한 시각적인 형상을 문자화한거 아니겠어요? 노래 제목으로도 유명한 ’샤방샤방‘도 보세요, 몸이 전체적으로 빛난다는 거잖아요. 머리 속에서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면 이해도 힘들어요. 또 다시 퀴즈. 요즘 시대는 ‘널 좋아해, 사랑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세요?

이 : 글쎄..

강 : ‘하트 뿅뿅’~~ 이래요..ㅎㅎ 재밌죠. 그야말로 하트가 날아가는 이미지를 문자화한거에요.

이 : 재밌네. 슬슬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이제 아는 인터넷 용어 다 써가면서 대화해볼까?

강 : 당근!! 그러고보니 제가 참 멋진 말 많이 했네요.ㅎㅎ 역시 ‘엄친아’ 포스!!!

☞ 당근(당연하다는 뜻),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이란 뜻, 완벽한 남자라는 표현), 포스(보통 아우라를 뜻함. 상대에게서 풍기는 위압감 정도)


이 : 역시 ‘자뻑’의 고수ㅎㅎ ‘디스’하고 싶네 ㅎㅎ

☞ 자뻑(잘난척 하는 사람을 일컬음. 너 완전 잘난척 해! 이런 뜻), 디스(모욕하다, 창피를 주다라는 뜻. 힙합에선 diss라는 장르가 있음)


강 : 역 디스 들어가요 ㅋㅋ

이 : ‘듣보잡’이 감히.. 어디서 ‘갑툭튀’ 해갖고, 집에서 ‘열공’하고 내게 붙어..ㅎㅎ

☞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란 뜻),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라는 뜻), 열공(열심히 공부하다는 뜻).


강 : ‘레알’ 진심이에요? 전 ‘넘사벽’인데..ㅎㅎ

☞ 레알(real, 진짜라는 뜻),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 둘을 비교할 때 한쪽이 잘나서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을 따라 잡을수 없다는걸 표현)


이 : 에효~ 그래 그만하자. 어린 너랑 상대해서 뭐하겠니. 바쁘다. 후딱 기사써야 해.

강 : 그러죠^^ 오늘 전체적으로 ‘므흣’하네요.. ☞ 므흣(흐뭇하다의 뜻)

이 :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여튼 오랜시간 수고했어.

강 : 저 또한^^ 근데 이 기사 이렇게 나가놓고, ‘무플’이면 어쩌죠?

☞ 무플 (댓글이 없는 것)

이 : 그럼 대략난감이지ㅎㅎ

☞ 대락난감(대략적으로 상황을 훑어보건대, 상당히 난감하다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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