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교육]<6>부모도 공부가 필요해 ②아이와 대화나누기

질문에 숨어있는 속 뜻 읽기
설교·일방적인 훈계는 “싫어요”
“넌 네게 중요해, 네 기분을 이해하고 싶어”

“오늘은 아이들과 아무 일 없이 지내야지. 야단을 치지도 않고 말다툼을 벌이지도 않고. 싸우지도 말아야지”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좋게 먹어도, 원치 않았던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부모 노릇을 하다 보면 끝도 없이 소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잊을만하면 충돌이 발생한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들만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아이를 사랑하고, 선의를 가진 부모들도 아이를 비난하고, 창피주고, 꾸짖고, 낙인찍고, 설교하교 훈계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부모들 대부분이 말이 가진 파괴적인 힘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옛날에 자기 부모들에게 들었던 말들을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말하고 있다. 자신은 입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던 말들을, 자기도 좋아하지 않는 어조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사소통의 비극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좋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부모들에게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사진/뉴시스

△질문에 숨어 있는 아이의 속마음
아이들과의 대화는 마치 예술과 같다. 아이들의 말을 이해하려면 마치 암호를 해독할때처럼 기술이 필요하다.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유치원에 온 다섯 살 혜인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누가 그림을 이렇게 밉게 그렸어. 엄마?”

얼굴이 화끈거린 혜인이의 엄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딸아이를 쳐다보면서 나무랐다.
“예쁜 그림들을 밉다고 말하면 안돼!”

옆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이 아이가 한 말의 뜻을 이해하고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그림을 꼭 예쁘게 그리지 않아도 괜찮아. 자기가 그리고 싶은대로 그리면 돼”

혜인이는 그때서야 자기가 알고 싶었던 물음의 속뜻, 즉 ‘그림을 잘못 그리면 무슨 벌을 받을까’하는 것에 대한 만족스런 대답을 얻고 웃음 지었다.

열두살 난 외동딸 민주는 자기 좋아하는 사촌 언니가 여름방학동안 자기 집에서 지내다 떠나게 되자 슬퍼서 어쩔줄 모르며 눈물을 흘렸다.

민주: (눈물을 글썽거리며) 언니가 가면, 난 또 외톨이가 될거야
엄마: 다른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민주: 외로울 것 같아요
엄마: 곧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마
민주: 아, 엄마는 몰라.(훌쩍훌쩍 운다)
엄마: 열둘 살이나 먹은 아이가 아직도 어린애처럼 훌쩍거리다니!

민주는 절망적인 눈초리로 어머니를 흘겨보고는 제 방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엄마가 민주의 마음을 조금만 이해했더라면, 이 대화는 얼마든지 즐겁게 끝맺을 수 있었다. 엄마가 “언니가 가버리면 섭섭할거야, 늘 같이 지내다가 헤어지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라며 아이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한층 더 친밀해질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가 처한 어려움을 부모가 인정하고, 그 실망감을 같이 말로 표현해줄때 아이는 현실과 맞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설교와 비판은 아이의 분노를 일으킨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때, 어떻게 대화를 풀어가야 할지 몰라 짜증을 낼때가 자주 있다.

어떤 어머니는 말한다. “아이를 설득하려고 하다 보면, 화가나서 내 얼굴이 새파래져요. 아이는 내 말이 귀에 들리지 않나봐요. 꼭 소리를 질러야 말에 귀를 귀울이거든요!”

여덟살난 철민이가 친구 동훈이에게 말한다. “난 우리 엄마에게 아무 말도 안해. 얘기를 했다가는 설교를 들어야 하거든. 그럼 놀 시간이 없잖아”

아이들은 부모와의 대화를 피하려고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설교나 일방적인 훈계를 듣기 싫어할뿐더러 비난을 받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대화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와 아이를 이어주는 대화: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감정에 대응한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새로운 방법의 바탕이 되는 것은 ‘존중’과 ‘기술’이다. 어른이 자존심을 가지고 있듯 아이들의 자존심도 존중해야 한다. 충고나 지시를 할 때, 부모는 미리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아홉살 승협이가 잔뜩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왔다. 학교에서 소풍을 가기로 했는데 비가 왔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번 이런 일을 경험한 아빠는 새로운 방법으로 아이를 달래보기로 했다.

“비가 와서 못 간 걸 울면 뭐하니, 다른 날 가면 되잖아?” “내가 비 오라고 했니? 나한테 화를 내게···”전에 번번이 실패했던 상투적인 말은 피하기로 했다. 대신 ‘소풍을 가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해있는’ 마음을 헤아려 아빠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너 무척 실망한 표정이구나”
승협: 네. 기분이 나빠요.
아빠: 소풍날을 그렇게 기다렸는데.
승협: 정말 그랬어요.
아빠: 소풍준비를 다 했는데, 그만 비가 와버렸네
승협: 맞아요
잠시 침묵이 흐른뒤 승협이는 “뭐 꼭 오늘만 날인가요”라며 심통이 풀렸다.

보통 승협이가 화가 나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온 집안은 소란스러웠다. 좀 더 심한 경우는 식구들 모두에게 화풀이를 해대는 바람에 승협이가 잠들때까지 집이 시끄러울 정도였다.

어떤 격한 감정에 사로잡혔을때 아이들은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달래거나 야단치거나 충고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 특정한 순간에 자기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부모가 이해해주길 바란다. 마치 승부를 가르는 장난처럼 자신이 느끼는 바를 조금만 내어 보이고 나머지는 부모가 추측하도록 남겨두려는 것이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야단맞았다고 말할 때, 자세한 내용을 물을 필요가 없다. “무슨 짓을 했기에 야단을 맞았니? 야단 맞을짓을 했으니까 선생님께서 혼을 냈겠지”라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 아이가 겪었을 아픔과 부끄러움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감정을 비춰주는 거울:
아이가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게 한다

아이들은 거울이 비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생김새를 알게된다. 거울의 역할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것이다. 거울이 “너 보기 흉해. 눈은 벌겋고, 얼굴은 부었고 불결해”라고 말한다면 거울이 얼굴을 비춰줘도 보고싶지 않을 것이다. 감정을 비춰주는 거울, 부모의 역할은 비꼬지 않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너 몹시 화가 난 것 같구나?” “네겐 저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구나” 아이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가를 이야기함으로써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부모 역시 어른으로서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서글퍼한다. 감정이 상할때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만큼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되는 존재는 없다. 어른들이 그렇듯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상냥한 대화는 비판과 설교 그리고 충고를 인간을 이해하는 마음을 치료하는 진통제로 바꿔준다. 아이가 괴로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혼동을 느낄 때 부모들은 대부분 당장 뛰어들어 판결을 내리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넌 참 어리석은 녀석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는 처음에 느낀 고통에 새로 모욕을 보태주는 격이다. 시간을 두고 “넌 내게 중요해. 네 기분을 이해하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부모에게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발췌> 「부모와 아이사이」(하임 G 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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