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성화고, 제주의 내일을 읽다] ⓵ 서귀산과고 ‘말산업전공’
말산업 전문인력 양성기관 선정, 변화에 발빠른 대응...좋은 반응

제주 교육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고교체제 개편으로 학생들이 직접 꿈과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제주도민일보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조명, 발전방향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특성화고, 제주의 미래를 읽다>를 기획, 5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전경.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드높은 한라산을 매일 마주하면서 이 보다 더 높은 꿈을 꾸는 학생들이 있다. 드넓은 목장을 힘차게 달리며 더 너른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학생들이 있다는 얘기다.

미래를 향한 부푼 꿈을 위해 전진하는 학생들. 그 학생들이 바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 있다.
 
1936년 ‘제주공립농업실수학교’로 설립된 이 학교는 제주지역의 농업을 책임지는 전문인을 양성하는 학교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 왔다.
 
이후 1969년 서귀농업고등학교로 개명, 역사를 이어오다 변화하는 제주지역의 패러다임에 발맞춰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로 탈바꿈했다.
 
이같은 동력에 힘입어 서귀산과고는 지난 2012년 특허청 지정 ‘발명·특허 특성화고등학교’로 선정됐다. 

2013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말산업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선정,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발걸음을 살펴보기 위해 찾아간 평일의 서귀산과고. ‘고등학교의 일과’ 하면 떠오르는 답답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전혀 감돌지 않는다.

그야말로 생생하다. 학생들의 표정, 활동, 수업을 듣는 모습들이 모두 진지하고 열정이 묻어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학업 스트레스에 절여진 모습 보다는 기대감이 꽉 차 있다.

이 모두가 변화하는 지역산업에 발맞춰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학교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라 하겠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에 도내 산업·교육 관련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 학교의 변화, 그 중심에는 ‘말산업 전공’이 있다
 
▲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말을 타고 장애물 넘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

이렇듯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그 중심에는 자영생명산업과내 ‘말산업전공’이 있다.
 
제주도가 말산업특구로 지정된 후 말산업이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인력 양성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대두됐다. 이에 서귀포산과고는 자영생명산업과내에 말산업전공을 신설했다.
 
그리고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학교의 응답에 많은 학생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전공 신설 후 3년이 흐른 지금 ‘말산업전공’은 도내 특성화고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전공을 신설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

모교인 서귀산과고의 목장이 나무, 풀 등에 뒤덮인 어수선한 초지로 변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한 교사의 열정이 이 안에 있다.
 
7-80년대 소와 젖소를 키우던 이 농장은 우유 파동이 일면서 그 활용도가 떨어졌다. 이에 방치돼 있던 목장을 되살린 건 말산업교육부장인 ‘강승욱’ 교사의 특별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이 목장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강 교사는 제주가 말산업에 특화된 지역임을 파악하고는 한국마사회 제주육성공장을 방문, 3년에 걸쳐 말 관련 교육을 배운다.

이후 산과고 내에서 ‘가축사육기술’ 교과목 6단위 중 4단위를 마필관리 과목으로 편성, 교육을 위한 시동을 건다. 이를 위해 교육청을 꾸준히 설득, 마사회와 교육청의 지원을 받고 실내·실외 승마장을 지었다.

이런 노력 끝에 2013년 2월 마산업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선정, 지원을 받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입생을 모집해 오고 있다.
 
▲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말을 타고 장애물 넘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

이렇게 신설된 말산업전공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원까지 받으며 나날이 성장해가고 있다. 말 생산·육성·조련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실습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말산업전공 학생들에 주어지는 장학 혜택도 엄청나다. 학생들은 전액 수업료 면제에다 기숙사 또한 무료로 제공된다. 학생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걱정없이 자신의 전공인 말을 관리하는데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특히 독일·프랑스·일본·호주 등 해외 선진국의 마산업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까지 학생들에게 제공된다.

이미 지난해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글로벌 현장학습에 선정, 8명의 학생들이 호주를 다녀왔다. 당시 호주에 다녀왔던 학생들중 2명은 호주 Nine Dragons에 들어가 ‘해외 취업’의 꿈을 이뤘다. 6명의 학생들도 부산경마공원, 환상질주트레이닝센터 등에 취업, 자신의 경력을 살려 취업의 장벽을 뚫었다.
 
# 학교의 변화, 그 중심에는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말산업교육부장을 맡고 있는 강승욱 교사와 1학년 강우혁 학생.

신설된 지 3년. ‘말산업전공’은 도내 특성화고 중 최고 인기학과로 우뚝 섰다. 매년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찾아 이를 전공하기 위해 문을 두드린다.
 
특히 올해 신입생 중에는 중학교 시절 상위 10%의 성적을 냈던 학생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하게 서귀산과고 말산업 전공으로 입학해 눈길을 끌었다.
 
소위 말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마땅히 가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인문계고’가 아닌 서귀산과고를 택한 때문이다. 그 이유로 강우혁 군은 온전히 자신의 관심 분야와 미래에 대한 비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보고 자라 농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중학교 때 토요 프로그램으로 매주 승마를 배우러 왔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어요.”
 
이 과정에서 우혁 군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남들과 같은 길이 아닌 서귀산과고 말산업전공을 택하게 된다.

물론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혁 학생은 “특성화고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가는 곳이 아니다. 학교에서 자신이 원하는 분야, 특성을 얼마나 살리는 가를 보고 학생이 선택해서 가는 곳”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부모님을 설득, 이 학교의 신입생으로 당당히 입학한 우혁 군의 꿈은 ‘말과 잘 교감하는 것’이다. 말을 잘 이해하고, 말과 잘 소통하고 싶단다.

이를 위해 승마동아리에도 들어갔고, 학교에서 머물면서 말을 관리하며 지낸다고 한다. 우혁 군은 앞으로의 ‘기대’도 “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응답의 처음과 끝이 ‘말’이다. 3학년 선배들을 보면 숙달된 실력으로 말을 잘 다루는 것 같아 너무 멋있고 부럽다고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말과 관련된 대회에 나가 성적도 내고 싶다고 말하며 눈을 빛내는 그다.
 
▲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말을 조련하고 있는 학생들.

우혁 군이 그토록 부러워 하는 3학년 선배, ‘손병진’ 군이 곧 마장에 나타난다. 고삐 하나를 갖고 이리 저리 말을 다루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능숙한 솜씨에 그 비결을 물어보니 “우리가 표현해주면 말들이 알아서 따라준다”고 설명한다.
 
병진 군은 어릴 때부터 집에서 동물을 많이 키웠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말은 키워본 적이 없어 경험해보고 싶어 ‘말산업전공’에 들어왔다고 입학 동기를 설명했다.
 
병진 군은 말을 열심히 칭찬해 주고 먹이도 많이 주며 ‘사람이라는 존재는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 전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과의 신뢰를 쌓고 장애물을 뛰어넘게 만들 때 정말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학교 생활 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강승욱 선생님의 애정과 격려다.

병진 군은 “선생님은 마음이 풍부하고, 우리를 잘 챙겨주신다. 말을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니까 실수하면 지적도 잘 해주신다. 그러나 마지막엔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하다. 처음에 실수했는데도, 마지막에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실 때가 가장 힘이 난다”고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말 장애물 조련사가 꿈인 3학년 손병진 학생.

병진 군은 장래에 ‘말 장애물 조련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를 위해 말도 열심히 타지만 특히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한다. 외국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타고, 관리하는 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관심사, 이를 위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그려나가는 앞으로의 미래가 어찌 밝지 않을 수가 있을까.
 
# 학교의 변화, 그 중심에는 ‘특색있는 비전’이 있다
 
물론 서귀산과고에 ‘말산업전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산업전공은 자영생명산업과에 포함된 세부 전공으로 산과고에는 ▷자영생명산업과 ▷자동차과 ▷전자컴퓨터과 ▷인테리어디자인과가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농업’에 중점을 뒀던 학교이니 만큼 이를 중심으로 한 특색있는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발명·특허 특성화고’로서의 서귀산과고의 면모를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서귀산과고는 제주에서는 유일하게 ‘발명·특허 특성화고’로 지정돼 있다. 

이에 산과고 학생들은 ▷발명특허 기초 ▷특허정보 조사분석 ▷발명과 문제해결을 필수로 이수함으로써 창의적 사고력과 능동적 문제해결능력을 익힐 수 있다. 

또한 서귀산과고는 학생들을 획기적인 발명아이디어를 지닌 고급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에 대한 지원도 상당하다. 특허청으로부터 1억 8000만원의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받는 만큼 수준 높은 교육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기업과 연계해 열리는 직무발명 전시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관심분야를 다루는 발명동아리에 들어가 원하는 발명품을 만들어 내고 실용신안특허를 낼 수도 있다. 

특히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학생들은 지원을 받고 해외 연수도 떠날 수 있어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졸업 후 병역특례업체에서 근무하면 군 복무를 한 것으로 인정된다. 현재 2명이 병역특례를 받고 있고 올해 신청자도 6명이나 된다.
 
발명·특허특성화고를 담당하고 있는 양상기 교사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갖고있는 재능이 각각 다르다. 그 재능을 찾아서 키워줄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코딩 등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사는 또  이 학교에서 운영하는 ‘발명·특허 특성화 동아리’가 일종의 대안교실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귀산과고는 교육과정 운영을 탄력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과라도 이 동아리를 접해 본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를 발견, 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면 전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강원효 교장.

그러나 서귀산과고는 항상 ‘변화를 선두하는 학교’였던 만큼 앞으로 시대에 발맞춰 다시 한 번 변화를 꾀할 계획이다.

강원효 교장은 이와 관련 “학과 개편을 추진 중"이라며 "농생명 산업을 중심으로 학과를 융합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장은 “생명산업·환경을 중심으로 특화시킬 계획이다. 우리 학교는 농업 기반 시설이 꽤 돼 있다. 청정 제주 특성에 맞는 특성화고를 만들겠다"며 "예를 들어 자동차과도 생명산업지원 중장비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중장비과로 개편할 수도 있다”는  앞으로의 새로운 비전을 구상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발명·특허’ 그리고 ‘말산업’이라는 전문 분야는 앞으로 미래세대를 이끌어 갈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다. 모든 산업의 바탕이 되는 ‘농업’이라는 분야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를 서귀산과고에서 학생 때부터 전문적으로 익히고 준비한다면 꿈꿨던 미래, ‘취업’의 문이 도리어 아이들을 향해 다가오지 않을까. 그 확신을 서귀산과고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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