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중국말 한국인지 중국인지 아리송
주변 지역도 급속 확산...한국말 배려 전략 필요

▲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바오젠거리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 화장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느 가게에서 처럼 ‘띠리링’ 소리가 울렸다.

이내 들려야 할 “어서오세요”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침묵이 흘렀다. 직원들은 누구 하나 반기지 않았다. 멀뚱멀뚱 들어온 사람들을 바라만 보았다.

화장품을 둘러보고 있는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말이 아니다. 중국말이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온다.

그러나 말을 걸지 않는다.

“제가 사용할 화장품인데요, 추천 좀 해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이상했다. 영어로 물었다. 그제서야 “Oh, I’m Chinese. I can’t speak Korean” 이라는 대답이 돌어왔다.

“헉”이었다.

기대했던 게 무리였다. 

중국인들이 자주 찾는 바오젠거리의 한 화장품 가게였다.

#바오젠 거리의 한 조개구이집

넓지 않은 한 조개구이 집.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중국어 간판이 눈에 띈다. 그 곳은 조개구이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킹크랩’도 파는 곳이었다.

주문을 하기 위해 “여기요”라고 손을 들었다. 한 청년 ‘알바생’이 다가 왔다.

“주문하시겠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상했다. “조개구이 ‘중’크기로 주세요”라고 주문을 했다.

그러면서 “소주 1병, 맥주 1병 주세요”를 덧붙였다.

청년 알바생은 고개를 숙이며 “네”하고 돌아갔다. 이윽고 밑반찬과 주문한 술이 나왔다. “알바한 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물었다. “세 달 이요”라는 어눌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 중국인 아르바이트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근로계약서는 썼어요”라고 물었다. 아르바이트학생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테이블 주변에 앉아 있던 사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나섰다. “제가 해드릴 게요”라며 아르바이트생이 하던 일을 대신했다.

▲ [제주도민일보 DB] 바오젠거리

# 연동의 한 호텔 근처 감자탕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제법 한국말을 잘 하는 조선족 여성이 “어서오세요”라고 반긴다. ‘아, 다행이다. 말이 통하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 정도다. “여기, 감자탕 작은 거 하나 주세요”라고 주문을 한다.

“사장님, 여긴 작은 건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발음은 여전히 어눌하다. “그럼 ‘중짜리’ 하나 주세요. 소주도 한병 같이요”라고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여성은 주방을 향해 중국말로 이야기를 한다. 아무래도 주문받은 내역을 다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주문을 받은 여성은 밑반찬과 술을 가지고 테이블에 놓기 시작했다. “일 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물었다. “1년 정도 됐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발음은 어색하다. “한국말 곧잘 하시네요”라고 물으니, “한국말 못하면 한국사람이 안 와요”라고 대답했다.

# 중국화 되는 ‘신제주’, “육지손님 대접하기도 불편”

연동 바오젠거리에서 점점 한국말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말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제주말은 거의 ‘전멸’했다 해도 무방하다. 거리엔 온통 한자어로 된 간판이 늘어섰고, 술집, 음식점, 옷가게, 카페 등엔 중국어가 가능한 한국인, 중국인 또는 조선족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어를 쓰고 있는 제주도민들과 관광객들이 이곳에선 오히려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는 게 아니고, 내국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인 투자가 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정작 제주도민, 한국인들이 밀려나는 듯한 기이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한때 일명 바오젠거리를 즐겨 찾았던 연동의 양모씨는 “신제주, 특히 연동이 점점 중국인들로 점령되고 있어 정작 한국인, 제주시민들이 갈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양씨는 심지어 “여기가 한국이 맞는 지 헷갈릴 정도다. 더욱이 가게에 가도 한국말이 잘 안 통하니 술을 한잔 하러 가기에도 불편하고, 물건을 사러 가기도 주저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다른 주민 강 모씨는 “예전엔 뭍에서 내려오는 손님들을 모시고 술 한잔 기울이기도 하고 흑돼지, 회 등을 대접하기도 했다"며 "이젠 중국인들로 가득찬 식당, 술집 그리고 한국말이 안통하는 곳이 많아져 가기를 주저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강씨는 “아무리 중국인 관광객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역으로 도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면 이 부분 만큼은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인 자본이 영토는 물론 제주지역 상권도 아예 잠식하는 현상을 빚고 있어 이를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되지만, 해외시장만을 공략할 게 아닌 밀려드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겨낭한 제주도민들과 행정당국의 마케팅 전략과 지원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