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봉주·이은주·박상미씨 참사 2주기 제주 도보일주
25일부터 열흘간…2일, 아이들 목적지 제주항 순례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현봉주, 이은주, 박상미 씨가 29일 오후 산방산에서 시작한 세월호 도보순례를 수월봉에서 마친 뒤 차귀도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홍희선 기자] 누군가는 자꾸 잊으라 했다. 

잊을 수는 없었다. 아니 잊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누군가는 자꾸 왜 오래된 일을 가지고 일을 벌이냐고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교통사고’였을 뿐이고 보상 받으면 됐지,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해야 하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정부는 이렇다할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무려 우리 꽃다운 아이 300여명이 물속에서 사그라져 갔는데 말이다.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주부로서, 평범한 시민으로서 도저히 참고 있을 수 없었다. 지난 2년간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고 정부는 이렇다할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화가 났고, 슬펐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슬퍼할 수 만도 없었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보태고 싶었다. 꽃다운 아이들을 기리고 싶었다.

그래서 의기투합했다.

시작한지 5일이 지났다. 성산항에서 시작한 순례가 이미 서귀포 끝인 대정읍까지 이어졌다. 앞으로 5일이 더 남았고 처음 시작했던 성산항까지 갈 계획이다. 5월 2일에는 2014년 4월 16일 아이들이 도착할 예정이었던 제주항도 들를 계획이다.

지난 25일부터 5월4일까지 세월호 도보순례를 하고 있는 현봉주(49), 이은주(45), 박상미(38)씨 이야기다.
 
이들은 이렇게 도보 순례를 시작했다.

이들의 결정은 쉽지 않았다. 박상미 씨는 “2014년 제주에 온 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매일 울었다. 혹시나 아이들이 살아돌아 올지 하는 기대감에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잡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서귀포시 1호광장에서 2014년 세월호의 진실을 알려 달라는 내용을 담은 1인 시위도 했다. 그러나 점점 바뀌어 가는 분위기가 속상하고 야속하다고 했다.

▲ 25일 서귀포시 성산항에서 처음 시작한 도보순례의 박상미 씨/사진=박상미 씨 제공 .

박 씨는 “당시 1인 시위를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은 이런거 왜 하냐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아직도 이런 걸 하냐. 그만 해도 되지 않냐. 제주도 경기 안 좋아진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런 말도 들었다”고 속상해 했다.

박 씨는 이어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해결되지 않았다. 유가족은 2년동안 길거리에서 살고 있다. 정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인양 과정을 못보게 한다고 한다. 그러면 증거가 유실될 가능성이 있다. 선체가 파괴될 가능성도 있다. 유가족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속사포 처럼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박 씨는 “결국 자연스럽게 정부가 뭔가 숨기기 위해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들었다. 유가족이 바닷가만 지키고 있는 현실이 답답했다. 달라진게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순례를 하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세상은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었고,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현봉주 씨는 “가게에서 캔커피를 사다 가져다 주고 마라톤을 뛰던 사람들, 중앙분리대가 있어서 차량운전자들이 건너 오지 못하자 먼 곳에서 유턴해 간식을 주고 가시는 분, 음료수를 건네준 신혼부부, 지나가던 시민이 건네준 보리빵까지…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받았다”고 웃음지었다. 검게 탄 얼굴에 그의 흰 치아가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 유독 남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길을 걷는데 한 공무원이 세월호는 이미 끝났는데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야기 하느냐고 막말을 하더라. 그런 사람들이 10명중 1명이었다. 그말을 듣는데 가슴이 아팠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걸었다. 다리가 아프면 파스를 뿌려가며 걸었다. 현 씨는 “남원을 지나칠 때였다. 잘 걷지 않는 일을 해서 오랜만에 운동(?)을 했더니 다리가 아팠다. 다리가 나를 끌어가는게 아니라, 몸이 다리를 따라갔다”고 웃음지었다.

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일기예보 확인이었다. 농민들이 아니었기에 평소에는 날씨에 별로 신경을 안쓰고 다녔다. 이은주 씨는 “안보던 일기예보를 보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일기예보 부터 본다”고 웃음지었다. 이에 동감하듯 현씨와 박씨가 박수를 치며 함께 웃었다.

이 씨는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피해 당사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린 별로 고생하는게 아닌데…오히려 가족들이 더 마음고생이 심한데 라는 생각을 한다”고 이내 숙연해졌다.

박 씨는 “우리가 순례를 하면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도 아니고, 대형 현수막을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가방에 작은 현수막 붙이고 다니는게 전부다. 그래서 잘 안보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가져 주더라. 그 분들이 미리 말을 건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세월호가 이미 끝났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박 씨는 “세월호를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의 논조가 있다. 바로 ‘교통사고’라는 것이다. 그 분들은 보험금 받고 끝내면 되는 것 아니냐.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교통사고라도 원인은 규명해야 하지 않냐.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하지 않냐. 가족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것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교통사고’ 관점에서 이야기 한다”고 속상해 했다.

▲ 현봉주 씨. 25일 서귀포 성산항에서 촬영한 사진/ 사진=현봉주 씨 제공.  

하루평균 20km씩 걷는 이들의 발에는 이미 물집이 잡혔다. 무리하게 걷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게 의도처럼 되지 않은 탓이다. 지나가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건넨 ‘마음’이 그대로 가방에 차곡차곡 쌓였다. 각종 음료와 간식으로 대신된 시민들의 ‘마음’이 유일한 남성인 현봉주 씨의 가방에 담겼다.

이들이 이렇게 결정 하기까지 주변의 우려와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은주 씨는 “그런거까지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 2주기가 지나고 19대 마지막, 20대 시작이란 국회상황도 마음에 걸렸다. 혼자면 못하지만 이렇게 3명이니까 가능했다. 든든했다. 우연히 시간이 맞았다. 마치 ‘운.명.처.럼’말이다”라고 웃음 지었다.

박상미 씨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걱정도 했다. 힘들어서 서로 다툴까도 걱정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하고 또 고맙게도 아무런 불평과 불만 없이 이렇게 씩씩하게 걷고 있다”고 말했다.

현봉주 씨는 “자식둔 부모로서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비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 원인도 안나오고 있는데, 얼렁뚱당 국가에서 묻으려고 하니까 답답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누군가는 안하니까…그렇게 순수하게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지나가던 시민들이 건네준 각종 간식과 음료수. 이들의 가방에 '잊지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라고 적힌 조그마한 현수막이 눈에 띈다.  

이들은 세월호의 아픔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여러 형태로 아픔을 나누고, 세월호의 진실에 한걸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씨는 “이슈를 만드는 것 보다는 부모님들의 아픔을 같이하고 싶었다. 2년 동안 부모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부 시민들이 ‘보험처리’하라고 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2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그리고 정부는 뭘 했나. 이런 문제의식에 다 같이 동의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못했지만, 아픔을 나누고 싶었다. 지난 2년에 비하면 10일은 짧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자발적으로 순례를 하면서 느낀게 정말 많았다. 책임감도 생겼다. 이를 보면서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힘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며 “몇구간 안 남았지만 몇 명이라도 순수한 마음이 보태져도 좋다”고 웃음지었다.

현 씨는 “SNS에 내용이 공유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 제가 아는 사람 동네를 지나가면 우리를 기다렸다가 간식과 음료수를 사다준다”고 뿌듯해했다.

박 씨는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한 또 기억하는 것이 4월 16일 하루만 활동한다고 해서 끝날일이 아니다. 세월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다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날씨는 찬란하게 맑았고, 햇살은 바다에서 반사돼 반짝였다. 이들을 반기듯 한무리의 돌고래 떼가 따스한 햇살아래 힘차게 헤엄쳐 지나갔다.

▲ 남원을 지나가다 발에 무리가 와서 물파스를 바르는 현봉주 씨 / 사진=현봉주 씨 제공
▲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28일  수월봉에 도착한 뒤 고산기상대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중인 이은주, 박상미, 현봉주 씨.(사진 왼쪽부터)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29일 도보순례중인 현봉주, 이은주, 박상미 씨. 
▲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29일 오후 차귀도 앞 바다를 지나가는 한 무리의 돌고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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