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조씨 아내와 결혼 후 50년간 제주 4.3 희생자 식게 모셔
'가메기 모른 식게' 통해 제주 4.3의 아픔 미래세대에 전승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한 집안에서 제주 4.3에 희생자의 식게가 집전되는 안봉조씨댁. 사진은 안봉조 씨의 본가 가메기 모른 식게.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건너편 방에는 안봉조씨의 처가 가메기 모른 식게가 집전되고 있다.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한 집에 가메기 모른 '식게(제사의 제주방언)상' 두 개다.얼마나 기구한 운명이기에 한날한시에 식게상을 두 개나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일까.

안봉조(75)씨는 이 기구한 운명을 받아들인채 50년, 반백년을 살아왔다.

북촌리에서 학살극이 자행된 1949년 1월 17일, 동복리 마을 주민 86명이 군인들에 의해 집단 학살된다.

북촌리 마을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모습을 동복리에서 보고 무언가 큰일이 났구나 하는 생각만 했지. 우리 마을에는 아무일 없겠지 생각했던게 화근이었다.

북촌리에서 학살극을 벌이고 부대로 복귀하던 군인들이 동복리에 들러 주민들을 집결시켰다.

장복밧에 마을 사람 전체를 불러모은 군인들은 남자들만 바로옆 굴왓에 집결시킨 뒤 총살했다. 누군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군인들은 대검과 죽창으로 확인 사살하는 극도의 잔인함을 보였다.

당시 8살이었던 안봉조씨는 학살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아버지가 군인들에 의해 죽는 광경을 그의 두눈으로 지켜봤다. 한살이었던 동생은 태어난해 아버지를 잃어야 했다.

군인들이 마을의 모든 가옥을 불태워 버리면서 바로옆 김녕리 공회당에서 1년여간 소개생활을 했다. 이곳에서 함께있던 마을 주민 30여명이 '도망자의 가족' 이라는 총살 당했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3대가 함께 조상에게 술잔을 건네고 있다.

1년여뒤 동복리로 돌아온 안봉조씨는 움막같은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남의 집 일을 하면서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았다. 일이 없으면 굶어야 하는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남동생은 시집간 누이에게 맞겼다. 머리가 명석했던 동생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나중에 교사가되어 교장까지 지내고 은퇴를 했다.

25살이 되던 지금에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아내 또한 아버지를 한날한시에 여의었다.

한 집에 한날한시에 가메기 모른 식게상이 두개 차려진 이유다. 둘은 함께 지낸 50년간 아이들에게 4.3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2남 1녀를 낳아 손주들까지 봤지만 자식들에게 행여 피해가 갈까봐서 아무말도 못했단다.

안봉조씨는 "처남이 20대에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때부터 처가 식게를 했다"며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게 없어서 먹고 사는 일이 시급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는데 힘든줄 모르고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식게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나이가 됐다"고 고달팠던 삶을 회상했다.

이어 "사는게 힘들어 죽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살아남은 가족을 생각이 나 마음을 고쳐잡았다"며 "동복리와 아버지 고향이었던 선흘리를 오고가는 생활을 해 오다가 30년전에 지금의 터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안봉조씨는 암이라는 병마와 두번이나 싸워야 했다. 위암에 이어 식도암까지, 11번이나 대수술을 해야 했다.

그는 "살아 있다는게 이상할 정도로 많이 아팠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면서도 가메기 모른 식게를 거른 적이 없다"며 "이제는 막걸리 한잔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됐다. 이 모두가 부모님과 장인, 장모의 식게를 열심히 모신 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가메기 모른 식게상 앞에 선 안봉조씨 손주들의 모습.

안봉조 씨는 "우리 자식 세대에서는 다시는 제주 4.3과 같은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가메기 모른 식게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식게가 이어지는 한 제주 4.3은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둘째 아들은 "아마도 우리세대까지는 가메기 모른 식게가 이어질 것이다. 40년 넘게 식게를 지내오면서 할아버지와 외할버지가 4.3당시 어떻게 돌아가셨다지 부모님은 얘기를 꺼내신 적이 없었다"며 "그래서 아이들에게 가메기 모른 식게의 유래를 설명할 기회 조차 없었다. 이는 4.3의 세대단절처럼 느껴진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안씨의 손주들은 제주4.3을 학교에서 교육받게 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가메기 모른 식게를 치르고 있는 안 씨의 장손에게 4.3을 아느냐 물었다.

안진영(15)군은 "제주도민이면 4.3에 대해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다"고 물었다.

하지만 '4.3 당시 돌아가신 증조부와 외증조부의 이야기를 들어봤냐'는 물음에 '없다'고 했다.

참혹하게 죽어간 아버지와 어머니를, 남편과 아내를, 형제들을 모시고, 가슴에 묻은 자식을 그리며 제사를 지내도 귀신도 모르게 지내야만 했던 '가메기 모른 식게'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제주 4.3이라는 비극의 역사가 '세대단절'의 영향으로 우리들 뇌리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가능한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안봉조씨 막내 손주의 놀이터가 된 가메기 모른 식게. 사진은 본가의 식게상 모습이고, 사진 윗편 안봉조씨의 예전 가족사진이 있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안봉조씨 막내 손주의 놀이터가 된 가메기 모른 식게. 사진은 처가의 식게상 모습이고, 사진 윗편에는 안방조씨 최근에 촬영한 가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안봉조씨와 둘째 아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가메기 모른 식게 집의 밤풍경.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부엌에서 여성들이 한데 어울려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하고 있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가메기 모른 식게가 열리는 날이면 마을주민과 친척들이 함께해 당시의 슬픔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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