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관광객들은 축제 분위기지만 수산리 주민들은 답답
<제주도민일보> 제2공항 반대 투쟁 4개 마을 현장 보도

▲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새해 첫 날, 수산리 마을주민들이 수산1리 사무소에 모여 제2공항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도민일보=고민희 기자] 새해가 왔다고 반기는 새소리일까.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여느 때처럼 맑고 고왔다. 그러나 이를 뒤로하고 걷는 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어쩌면 이 청아한 새소리로 시작하는 새해가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새해 첫 날, 성산읍 수산리 마을을 찾았다. 고요한 이 마을은 지난 밤 펼쳐지던 축제의 분위기는 자취를 감추어 버린 듯 적막감까지 돌았다.

이 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오늘 만난 주민들 모두 농작물을 재배하며 사는 농민들이었다. 더군다나 모두 수산에서 나고 자란 수산 토박이들이었기에 마을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도대체 이 좁은 제주 땅에 공항이 4개나 왜 필요합니까?” 수산1리에 거주하는 김 씨는 마을 주민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제주도 정책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모든 것이 돈의 논리로, 자본적인 논리로만 이야기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돈의 가치로 따져서 땅 값이 싼 이 지역에 공항을 짓는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을 돈의 가치로 매겨서야 되겠습니까? 이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공동체의 삶이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마을 사람들과의 두터운 정을 이어가며 살아온 주민들이다. 지금까지 평화로운 마을에서 서로 간 의지하며 잘 지내온 사람들이다. 다른 지역주민들과 똑같이 세금도 잘 내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주민들의 의견은 도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 70%가 소작농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 보상 없이 길거리로 내쫓기게 생겼어요. 이 사람들은 일을 해야 삽니다. 그런데 지금 도에서 이 사람들이 살 수 없도록 내몰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지역 땅값이 아무리 올라 10평을 팔아도 시내권 땅 1평을 살 수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혹여나 몸 누일 곳은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일을 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런 주민들을 원 도정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사실도 몰랐고, 발표가 난 이후에도 잠깐의 설명회만 있었을 뿐입니다. 차라리 정책토론회라도 열어달라고 요청하지만 이를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수산리 마을 주민들이 요청하는 것은 보상도, 공항 건설 이후의 어떠한 대책 마련도 아니었다. 주민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내고 지켜온 이 마을이 와해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수산리는 고성과 함께 성산읍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입니다. 수산초등학교를 둘러싼 진성을 보십시오. 완벽히 보존이 돼 있습니다. 수산초등학교도 그렇습니다. 학생 20명 밖에 남지 않은 학교가 통폐합 위기에 처하자 마을 사람들이 살려냈습니다. 기금 조성하며 집을 짓고, 전국적으로 공고해 외지인들도 이사오게 만들었습니다. 20명이었던 학생을 60명까지 늘려놨습니다. 도에서도 학교살리기 모범사례로 인정한 학교입니다. 전국 아름다운 학교에서도 2번이나 수상한 학교입니다. 이 학교 또한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곧이어 마을 주민들 여럿이 리사무소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인 마을 주민들 모두가 그들이 애써 살려낸 수산초등학교의 졸업생이었다. 제2공항은 그들의 삶 뿐만 아니라 배움을 쌓고, 꿈을 키워냈던 터전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 [제주도민일보 DB]
 
수산1리 마을 주민 오 씨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집 없이 살다가 작년에 집이라도 짓고 살고 싶어서 집터를 매입했는데 5일 후에 공항 발표가 났습니다. 5일 후에. 이게 말이 되는 상황입니까?”
 
귤 농사를 짓고, 비닐하우스 관리도 하고 있는 오 씨는 힘이 빠져 비닐 보수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수산리 사람들은 현재 생업도 내려놓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이 한창 농작물 수확을 볼 시기인데 맥이 빠져서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토로했다.
 
함께 들어온 고 씨도 말을 이었다. “여기 저기 호텔도 지어지고 건물이 올라가길래 왜 그러나 했는데, 공항 발표가 나고 나서야 이해했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정보를 다 알고 투기 하고 있던 것 아닙니까? 하지만 수산리민 사람들은 다 떠나야 해요. 여기가 개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여기서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합니까.”라고 답답함을 표했다.
 
또한 고씨는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공항을 짓는데, 관광객들은 제주도의 자연을 보고 휴식을 취하러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은 제주도 본연의 모습이지 개발된 도시의 모습이 아니라는 겁니다. 육지 사람들의 입장을 들어보세요.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하지만 도정이나 언론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아요.”라고 지적했다.
 
마을 주민들은 많은 사람들이 쉼을 찾아 오는 이 땅을 도정이 쓸모없는 땅으로 만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더군다나 아직 확정 고시되지도 않은 일을 확정된 것처럼 발표해 도민들이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상황들을 모르고 찬성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게 합니다. 너무 답답해서 일출제 때 1인 시위라도 하려고 했지만 이를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현수막 걸면 떼어버릴까 1인 시위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못하게 하고...”
 
주민들의 답답함은 호소하려는 마음 마저도 막는 듯 했다. 무거운 한숨만이 적막함을 갈랐다.
 
앞서 있던 김씨를 제외한 주민들은 지난 밤 있던 일출제에 다녀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굴에서는 축제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출제라고 여기 저기 축제분위기였지만, 지금 축제 분위기를 낼 때입니까? 이거 속 터져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수심만이 가득했다. 기대감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마을을 지켜내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올해도 싸워야죠. 길어질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다섯 마을과도 연대하고, 주변 지역에도 끊임없이 알려서 제2공항 때문에 우리 마을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낼 것입니다.”
 
새해 첫 날인 오늘, 구름에 가려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새해를 맞은 수산리 주민들의 깊은 정과 웃음도 현재는 제2공항이라는 구름 안에 가린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담긴 온기와 열정마저 가려질까. 마을을 지켜내겠다는 수산리 마을 주민들의 다짐이 그 어느 때보다 굳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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