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공항 예정부지 현장에서…온평리 주민 새해 바람은?
<제주도민일보> 제2공항 반대 투쟁 4개 마을 현장 보도

▲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주민들이 31일 오후 한 곳에 모여 삼삼오오 모여 공항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한 주민이 얼어버린 손을 모닥불에 녹이고 있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온평(溫平)리. 따뜻하고 평온하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마을 이름은 지역 환경에 따라 붙여진다는 말처럼 온평마을 사람들 또한 따뜻하고 평온 하다고 했다. 온평이란 마을 이름이 붙기 전, 온평은 ‘열운이’였다. 행정구역 정리 차원에서 ‘온평’으로 바꾼 것이다. 온평이란 이름처럼 사람들은 따뜻하고 평온했다.

그러나 급작스런 소식이 날아들었다. 난데없이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공항’예정부지로 선정됐다는 것이었다. 주민들과 한마디 ‘소통’도 없이 발표된 사항이었다. 따뜻하고 평온한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투사’로 변했다. 전국 학력고사 1등, 국회의원을 거치고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제주의 아들 ‘원희룡’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발등을 찍혔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따뜻하고 평온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2016년에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새해를 맞이하는 온평리 주민들을 만났다.

온평리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고기도 구워먹고 소주 한잔 마시며 농사일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이웃에 대한 안부도 물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몇개인지 강아지가 새끼를 낳은 것도 공유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이야기는 들어볼 수 없었다. 고기를 구워먹으면서도 소주를 한잔 마시면서도 공항문제에 대해 한숨과 한탄만 나눴다. 제주 제2공항 예정지로 발표되면서 온평리가 초토화 된 것이다. 

▲ [제주도민일보 DB]

주민 이 모씨는 “온평리와 같은 공동체의 모습을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다. 지금 이렇게 주민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다”고 술잔을 털어 넣으며 “솔직히 있는 것(땅) 다 뺏긴다는데 기분이 좋을리 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는 이어 “성산읍, 특히 온평리가 공항 예정부지로 선정 됐다는 발표가 난 직후 지역경제가 얼어 붙었다. 기분이 좋아야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한자락 부르러 갈텐데 그럴 기분도 아니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라며 지역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주민들은 원희룡 제주도정에 대한 불신도 깊었다. ‘민주주의’ 원칙을 거론하며 원희룡 도정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원희룡 도정이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김 모 씨는 “온평리로 발표되고 난 뒤 원 지사가 지역에 와서 딱 한번 이야기 한 것이 전부다. 그 이후 아무 말도 없다”며 “난 무식해서 민주주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인권, 자유, 평등이 우선되는 것 아니냐. 근데 이런 내용이 모두 무시돼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김 씨는 공항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김 씨는 “공항이 필요하니까 만든다는거 인정한다. 그러나 여론이란 것도 잘 들어보고 대화도 해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국민이 있으니 대통령도 있고 도지사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원희룡 제주도정이 제시한 대안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대체부지를 제공해주겠다는 내용에 대한 반박이었다.

송 모씨는 “지금 걱정은 도정이 제시한 150만평에 대한 대체부지가 과연 가능하냐는 것이다. 대체부지 해준다고 하는데 어디다 해줄 것이냐?”고 물은 뒤 “마을 주민 입장에서는 땅이 공항부지에 모두 수용돼서 한평도 남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아울러 송 씨는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땅을 내년에도 임대차 계약을 해줄 것인지도 문제다. 재계약 안해주면 그럼 그 사람들은 뭐먹고 살아야 할 것이냐”며 “결국 지역 주민들의 소득 감소로 인한 지역경제 불황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또 다른 주민 이 모 씨는 제주 본연이 갖는 장점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발보다는 ‘보전’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씨는 “외국인이 제주를 찾는 이유는 자연과 (사람에 대한)정이 살아있기 때문”이라며 “이게 없어지면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과연 많아질 것인가. 근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자연과 제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원희룡 도정이 나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 씨는 “제주 제2공항이 들어서면 자연, 전통문화, 환경이 사라질 것이다. 환경적으로 ‘최악’”이라며 “그나마 그러한 것들이 살아 있는 곳이 온평리다. 탐라의 전통문화, 자존심이 살아 있다. 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관광활성화는 ‘어불성설’이다. 이런게 없는데 외국인이 들어오겠냐”라고 반문했다.

▲ [제주도민일보 DB]

삶의 터전을 모조리 빼앗긴 주민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제2공항만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어 ‘술’을 들이킨다는 것이었다.

주민 현 모씨는 “땅 7000여평이 모두 공항부지에 편입됐다. 땅, 집, 하우스, 무 세척공장, 과수원 모두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며 “집도 절도 없게 될 상황이 왔다. 가족 모두 버리고 무인도에 가서 죽어 버리고 싶다”고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다.

이어 현 씨는 “나 뿐만 이렇지 않다. 술이 없으면 잠을 못잔다. 잠을 자더라도 아침에 눈을 뜨면 공항문제가 가슴을 짓누른다”며 “과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던 주민들이 이제는 수심이 가득한 모습만 보인다”고 걱정했다.

현 씨는 특히 지금과 같은 모습이 강정마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현 씨는 “정부와 제주도 행정은 강정해군기지 건설과 같은 방식으로 제주 제2공항을 추진하고 있다”며 “온평리는 제2의 강정마을 처럼 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굳은 의지를 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현 씨는 “제주도정이 도민 혈세를 가지고 제주 제2공항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온평리 주민들은 마을 돈을 털어가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우리 세금으로 도정이 일방적으로 (공항)찬성 홍보를 하는게 문제가 있지 않냐. 주민들은 반대하는데 말이다.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반대 홍보에 드는 비용을 제주도정이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온평리 주민들은 하반기 핵폭탄급 소식에 우울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가 밝아와도 제주 제2공항 반대 목소리를 낸다는 계획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지만 끝까지 투쟁한다는 각오다. 마치 ‘질긴 사람이 이긴다’, ‘끝까지 남은 사람이 승자’라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주민 송 씨는 “내년에도 해야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끝까지 해야지. 조상들이 수 천년, 수 백년 지켜온 마을을 이대로 뺏길 수 없지. 그리고 우리만 살게 아니라 아들도, 손주도, 증손주도 살아야 하니 이 마을 지켜야지”라며 “이 마을 뺏기고 내가 눈을 어떻게 감겠어”라고 먼산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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