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달 기획] 우리 시대 다양성을 말하다 ⓶
돌멩이 필름(주식회사 작은영화제작소) 대표 함주현 감독 인터뷰
독립영화전용관은 운영의 문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절실’
내 삶이 존재하는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인생은 네가 본 영화와는 달라... 인생이... 훨씬 힘들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자끄 레펭 주연의 작품 ‘시네마 천국(1988년 개봉)’에서는 영화와 인생의 관계를 이 짧은 한 줄로 뱉어냈다.

인생은 영화처럼 잘라낼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며 각자가 처한 인생의 막에서 모두가 주인공이다. 또한 내 뜻대로의 결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생이 영화보다 훨씬 힘든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결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비교의 전제가 되는 ‘영화’라는 간접 세계를 경험해봐야 한다. 인생이 영화보다 쉽든 어렵든 간에 우리는 영화라는 객관의 기준으로부터 지금 내 삶이 쉬이 가고 있는지 어렵사리 꼬여가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애석하게도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한 편의 영화가 주는 삶의 위로’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제주도민으로 산다는 것은 다양한 영화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화예술의 땅을 부르짖는 제주에서는 오직 멀티플렉스에서 제공하는 거대 자본의 상업 영화에 껴맞춰 내 인생을 들여다봐야 한다.

올해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와 해녀의 삶을 소재로 제48회 휴스턴 국제영화제 여성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그림 그리는 해녀’의 함주현(돌멩이 필름 대표) 감독을 만나 예술영화의 불모지 제주에서 예술영화인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휴스턴 국제영화제 금상 수상작 '그림 그리는 해녀'
-국제영화제 금상 수상 후 반년이 지났다. 늦은 수상소감을 묻는다면?
“내가 만든 작품이지만 작품성을 보고 상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작품은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수상 소감을 굳이 얘기하자면 제주 해녀는 누구보다 고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이기에 그녀들의 인생에 바치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으로는 수상 후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창작욕이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제주에서는 개봉이 됐나? 제목은 들어봤는데 내용을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작년에 인디다큐영화제와 광주여성영화제에서 개봉을 했고, 올해는 환경영화제, 휴스턴 국제영화제, 제주여성영화제에서도 개봉을 했다. 모두다 영화제에서만 개봉이 됐기 때문에 극장에서는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총 런닝타임이 51분이다. 중편 영화라서 극장 개봉을 하기에는 애매한 분량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된 영화라서 극장용으로 재편집하는 것도 무리다”

-감독 입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더 많은 관객에게 보이고 싶을텐데 아쉽지 않나?
“뭐 예술영화 감독들이 다 그런 경험들을 한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정석은 배급사를 통해 극장에서 정식 상영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배급사와 계약을 맺고 배급사 부금으로 50%를 줘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입장 수입으로 채워야 되는데 결론은 뻔하다. 저예산으로 제작하는 예술영화의 특성상 그 자금까지 감독이 감당하기는 무리수다. 예술영화전용관이 생긴다면 혹시 또 모를까...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 아니니까...”

-제주에서 예술영화전용관 건립이 가능할까? 왜 실행이 안될까?
“물론 가능성은 충분하다. 예술영화전용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고 다양성 영화에 주목하는 관객의 수도 부쩍 늘고 있다.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이란 것은 비단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예술영화전용관이 생기다고 해도 운영이 더 큰 문제다. 제주 뿐만 아니라 서울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정부나 기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예술영화’ 즉 ‘다양성 영화’ 자체를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예술영화라고하면 따분하거나 난해하고 까다로운 내용을 떠올린다. 허나 ‘다양성 영화’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멀티플렉스의 상업영화보다 더 많은 장르가 있고,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물론 사회적, 정치적인 분위기가 뒷받침돼야 하는 문제도 있다. 영화 지원 사업조차 심사권을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기준을 내세워 다양하지 못한 작품들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자유로우면 더 풍성한 주제의 영화들이 나올 수 있다”

▲ 함주현 감독(돌멩이필름 대표)
-그러한 맥락에서 돌멩이 필름이 진행 중인 ‘찾아가는 영화관’ 행사가 더 뜻깊게 다가온다. 자체적인 평가를 한다면?
“소외지역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예술전용영화관 역시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다. 먼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어? 이런 문화도 있었어? 재밌네?’식의... 마을 회관이나 학교 운동장에 스크린을 설치해두면 많은 동네분들이 찾아주신다. 돗자리를 손수 챙겨오신 꼬부랑 할머니도 뵙고, 마지막 영화가 20년 전에 본 ‘부시맨’이라는 동네분도 만났다.(웃음) 농담이 아니다. 진짜다”

-궁극이 무엇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육지에서 방송 일을 하다가 제주행을 결심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내 삶이 존재하는 이유와 가치를 찾고 싶다’는 것. 내가 왜 마을 사업을 하는가? 내가 왜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가? 나의 가치를 찾아야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에 온 후부터는 과거가 생각나지 않는다. 후회나 회한도 없다. 매 순간 오늘과 내일만 보면서 나아가고 있다”

함주현 감독이 담아낸 해녀의 그림은 어떤 시선으로 펼쳐졌을까. 그의 카메라에 기록된 해녀의 일상보다 지금껏 그네들이 짊어지고 온 삶의 무게가 훨씬 힘들었음을 헤아려본다. 그러나 그의 영화로부터 우리는 해녀의 모진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언젠가 그가 이 땅에서 건져올린 다양한 삶의 조각들을, 그 가치들을 스크린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꿈이 있기에 어쩌면 그의 인생은 영화보다 더 달콤하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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