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달 기획] 우리 시대 다양성을 말하다 ①
송승호 제주여중 역사교사·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장 인터뷰
역사적 시각의 단일화는 아이들 개성을 짓밟는 행위
어렵게 이뤄놓은 4.3의 진실과 가치 훼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지난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됐다. 2013년 교학사 역사교과서 오류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2017년부터 역사교과서를 아예 국정화하겠다는 극단의 조치를 감행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 발표가 있었던 당일 국정교과서에 반대했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연행, 여학생 1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연세대 사학과 전임 교수 전원은 13일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을 발표했다. 또한 오늘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는 야권을 필두로 지역 시민단체, 역사학계 지식인, 학부모들까지 연일 반대성명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장을 역임하고 제주여중 역사 교사로 20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송승호 교사를 만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한 쟁점을 짚어봤다.

[다음은 송승호 제주여자중학교 역사교사·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장과의 인터뷰 내용]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제주여자중학교 3학년 교무실에서 '한국사 국정 교과서' 현안에 대한 인터뷰 중인 송승호 역사 교사

-12일 한국사 국정 교과서 확정안 발표. 어떻게 지켜보았나?
"교육부에서, 여당에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 수순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결론이 그렇게 난 것에 대해 역사 교사로서 굉장한 자괴감이 든다."

-정부가 발표하면 끝인가?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정된 사항을 그들이 번복하겠나? (한숨) 당분간은 이 문제를 가지고 반대 여론이 들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나 정부가 꿈쩍하지 않는다면, 이조차 어느 정도 시간이 가면서 시들해지는 상황이 올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함께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당시 제주 역사 왜곡, 2천건의 오류 등 우편향, 친일미화 논란으로 많은 공분을 사지 않았나?
"그때보다 지금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13년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검인정(민간 출판사가 집필. 국가의 검정·심의를 통과해 발행)  체제로 8종 교과서 중 하나를 채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국정 교과서(1종 교과서.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직접 발행)가 나오면 아예 선택권이 없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에서 제주 4.3 사건은 공산당의 선동으로 발생한 빨갱이 폭동으로 기술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사람들은 해당이 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희생된 젖먹이에서부터 7,80대 노인들까지 그런 역사의 굴레를 씌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주도의 경우 가장 예민한 문제가 4.3이다. 2003년도에 4.3 진상보고서가 확정됐고 '4.3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정의가 내려졌다. 그렇게 겨우 역사의 진실을 바로 잡아놨는데 국정화가 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제주도는 왜곡된다고 해도 선생님들이 나서서 바로 잡으려고 하겠지만 육지부 같은 경우에는 그대로 가르칠 것 아닌가. 이 경우 4.3은 왜곡된 채로 학생들의 기억 속에, 역사 속에 남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까지 왔다고 생각하나?
"갑자기 교육부 장관이 '이념의 갈등의 요소가 역사 교과서에 있다'면서 뜬금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이념의 갈등을, 국민의 분열을 막으려면 하나의 교과서로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것이다. 얼마 뒤에는 집권 여당이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교과서를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펴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정치적인 어떤 견해가 강하게 개입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역사교과서 때문에 국민간의 국론이 심하게 분열되는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시정해야 한다. 하지만 잠잠한 상태에서 갑자기 이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사를 전공한 선생님들 중에는 대부분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렇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순수한 의도로 이해되기 어렵다.

또한 정부에서는 현재 교과서가 북한을 좇는 좌편향적인 내용이라서 문제가 된다고 얘기하는데 검인정 절차를 밟기 때문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정부를 부인한다면 당장 국가보안법에 걸릴테고, 교육부에서 심의를 거쳐 통과된 교과서에서 좌편향 내용은 있을 수 없다."

-자체적인 교과서를 따로 제작해 역사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타지역의 발표가 있었다. 
 가능한가?
"국가에서 만든 역사교과서를 완전히 배제하고 수업을 할 수는 없겠지만 교육을 해나가는데 중요한 참고자료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 교육감의 경우에도 국정교과서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나타냈기 때문에 만약 정부의 수순으로 국정교과서가 채택된다면 제주도에도 제주도만의 교과서가 따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해본다."

-교과서의 저작권은 누구한테 있는가?
"저작권은 책을 집필한 사람들한테 있다. 현재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의 경우는 각 출판사마다 집필진을 구성해서 책을 만든다. 만약에 국정화하게 되면 교육부에서 집필진을 따로 구성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집필과 해석의 권한도 국가에 있고, 저작권 역시 국가 소유다."

-국정교과서 이름이 ‘올바른 역사교과서’이다. 올바르게 집필될 수 있을까?
"집필진을 구성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교학사의 경우에도 결국은 졸작으로 나와서 비판을 많이 받고 채택이 되지 않은 것 아닌가. 채택률이 0%였다. 그런데 1년 안에 균형있는 시각으로 다양한 역사관을 보여줄 수 있는 국정 교과서를 만든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든 책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이름을 달고."

-역사 교사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교편을 잡은지 20년 조금 넘었다. 나역시 국정교과서 세대다. 우리나라는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다. 어른이 돼서 생각해보니 내 사고가 지나치게 굳어 있다고 느껴졌다. 그 이유가 뭘까 고민도 해봤다. 국가에서 어떤 이념을 주입하거나 암기를 강요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고를 하지 못했고, 내 삶에 있어서도 다양성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깊이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개인의 생각, 개성이 존중돼야 한다. 특히 역사라는 것은 그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주는 중요한 요소다. 그 시각을 단일화시킨다는 것은 아이들의 다양성을 빼앗고 개성을 짓밟는 행위와 같다. (한숨)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지금이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나라는 북한,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 중에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공교육을 통해 단 하나의 역사관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 하나의 내용이 ‘올바른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분열, 혼란, 단절이 아닌 통합, 공감, 소통의 ‘올바른 과정’의 정당성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