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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한국어, 한국문화를 알아야 진짜 한국인이죠”중국며느리 류쥔나·멕시코 사위 하비·네팔댁 아니타
세 사람이 직접 들려주는 좌충우돌 한국 생활 적응기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태어나 자란 모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제2의 조국에서 꿈을 좇으며 새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 위대한 도전을 가로막는 첫번째 장애는 '언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 소통을 한다는 것은 말의 표현이 아니라 말에 담긴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기에 '공감'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렵다.

가까운 중국, 더 멀리 네팔, 지구 반대편 나라 멕시코를 떠나 제주도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 친구를 만나면서, 한국 여자를 사랑하면서, 한국 시어머니를 이해하면서 한국인의 마음을 느끼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제서야 조금씩 한국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제주를, 한국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다.

▶ 중국며느리 류쥔나(25세) “엄마, 까치볶음 먹고 싶어요”

▲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밝은 얼굴의 류쥔나(중국, 25세)

우연히 아들과 단 둘이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아들은 “엄마, 까치볶음 먹고 싶어요”라며 졸라댔다. “무슨 까치? 이거 어떻게 먹어? 까치 하늘 날아다녀요. 먹으면 안돼요.”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였다.

아들은 이미 화가 잔뜩 나서 입을 다문 상태다. 표정도 뽀루퉁하다. 지하 야채코너에 도착하자 무언가를 들고 “엄마, 이거예요. 이거.”라고 소리쳤다. 엄마는 그때 처음 ‘가지’라는 채소를 알았다.

“그날부터 마음이 너무 급해졌어요. 원래는 한국말 관심 없었어요. 왜냐하면 남편이 중국말 잘해요. 우리 둘은 문제 없어요. 그런데 그날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다니면서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류쥔나씨의 고향은 중국 북방인 산동이다. 단기 코스로 진행되던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던 중 그곳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남편을 만났다. 그때가 2008년이다. 4년의 열애 끝에 2012년에 결혼, 아들을 낳은 후 2014년에 이곳 제주에서 터를 잡았다.

“처음에 한국 왔을 때 말 못해요. 외로워요. 친구도 없어요. 마음 슬프네요. 고향 보고 싶어요. 다시 중국 갈 거예요”

하지만 올해 3월부터 한국 문화를 배우고 난 뒤 그녀의 삶은 달라졌다. 각국의 친구들을 만나 1주일에 3일 하루 두 시간 반씩 한국어와 요리를 배우며 이 땅의 문화를 체험 중이다. 그때부터 한국이 좋아졌다.

“저는 한국 언니들 목소리가 너무 예뻐요. 선생님도 친절해요. 그리고 한국 남자는 이상한 냄새가 없어요. 여자, 애기 앞에서 담배 안피워요. 공기도 좋아요. 바다도 예뻐요. 길이 너무 깨끗해요.”

그녀는 앞으로 한국말을 잘하게 되면 한중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정통 요리법을 배워서 중국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의 맛을 보여주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한국이랑 중국이랑 감정 비슷해요.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은 감정이 많아요. 러브. 정이 많아요.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있어요. 진심이에요. 제주도 사람들은 친절해요. 저도 나중에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줄 거예요.”

류쥔나 씨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가장 좋아한다. 자신은 아무리 많이 연습을 해도 한국 사람들과 다른 소리가 나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 수줍은, 멈칫거리는 인사말 속에는 이미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 멕시코 사위 하비(34세) “장모님 뭐해? 밥 먹었어? 뭐 먹었어? 어디가? 장모님 괜찮아?”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눈빛만 마주쳐도 통하는 하비(멕시코, 34세)와 그의 아내 김나현(한국, 31세)

멕시코 칸쿤에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하비씨와 그녀의 아내 김나현(31세)씨는 캐나다에서 만난 인연이다. 각자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우기 위해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멕시코 남자와 한국 여자. 그둘은 첫눈에 서로가 서로를 콜롬비아 남자와 일본 여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두번째 만남부터 서로가 인연임을 알았고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훌렁 뛰어넘어 하나가 됐다.

“캐나다에서는 1년 조금 넘게 살았고, 결혼해서 바로 멕시코로 떠났어요. 덕분에 대학 졸업은 못했어요.(웃음) 6년 정도 멕시코에서 살았는데 하비의 직업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공무원이었어요. 그런데 멕시코가 아무래도 부정부패가 많은 나라기도 하고 하비가 마음이 약한 편이라 업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제주행을 결심했죠.”

3년의 준비 끝에 작년 2월, 나현씨의 고향인 제주도에 정착했다. 가장 좋은 것은 마음대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였다. 치안 문제가 심각한 멕시코에서는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일이 아니면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딸 나비아(엄마 ‘나현’과 아빠 ‘하비’의 이름을 따서 지음)는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뛰어논다. 막내 유곤이는 이제 막 다섯 살을 넘겼다.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한국어 아주 어려워요. 진짜예요. 존댓말도 어려워요. ‘장모님 뭐해? 밥 먹었어? 뭐 먹었어? 어디가? 장모님 괜찮아?’ 반말만 했어요. 지금은 ‘요’자를 붙여요. 문법은 괜찮은데 단어가 기억이 안나요. 하지만 들을 수는 있어요.”

하비씨는 올해 초 한라대학교 언어교육센터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이 있지만 의사소통의 문제로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비씨는 최대한 빨리 한국어를 배우고 내년쯤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인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듣기 위해 열심이다. 멕시코에서도 그는 초, 중, 고등학교 내내 1등을 빼앗긴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다.

“나현이를 만났을 때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아시아는 일본하고 중국만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 멕시코에서 한국 인기 대단해요. 며칠 전에 멕시코에서 빅뱅 콘서트 열렸어요. 멕시코 난리났어요. 조카들한테 카톡도 왔어요. 그리고 저는 K-POP보다는 한국 음식 좋아해요. 내장탕, 곱창, 순대... 멕시코에도 이런 음식 다 있어요. 비슷해요. 소고기 제일 많이 좋아하고 김치찌개랑 청국장도 잘먹어요.”

나현씨는 남편이 끝까지 말을 마칠 때까지 귀담아 들어준다. 둘다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 소통이 가능하지만 밖에서는 철저히 한국말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집에서는 아이들과 스페인어로 이야기한다. 하비씨는 유독 한국어를 배우는게 힘들었다. 그 답답한 마음을 나현씨가 모를리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며 씩씩하게 이야기한다.

“하비는 너무 걱정이 많아요. 걱정을 사서 하는 스타일예요. 생기지도 않은 일을 걱정해요. 어느 날은 잠도 못자면서 중요하지 않은 일을 고민해요. 저는 ‘케세라세라(’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뜻)예요. 별로 고민하지 않아요.(웃음)”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만큼 무엇이든 최선을 다한다는 하비씨는 한국 남자의 근성과 묘하게 닮아 있다. 멕시코 특유의 여유와 웃음은 나현씨의 몫이다. 특히나 한국어를 시작한 이후 하비씨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너무 자주 입에 올리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아내의 말에 하비씨는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웃음)

▶네팔댁 하망아니타(23세) “남편 이름이 ‘이승철’인데 처음에는 ‘이띵떨’이라고 불렀어요.”

▲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한국에 온지 37개월 된 하망아니타(네팔, 23세)
2012년 8월. 스무살. 꿈에 그리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9살 때부터 한국 드라마에 빠져 살았고,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을 꿈꾸었다. 그녀의 고민은 하나였다. '어떻게하면 한국에 갈 수 있을까.' 그러던 중 큰 이모의 제의로 국제결혼이란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스무살이 넘자마자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살아보니 너무 달라요. 네팔 문화랑 한국 문화랑. 처음에는 변기물을 내리는 방법도 몰랐어요. 그 소리가 너무 무서웠어요. 뭔가 터질 것 같았어요. 의자에 앉아서 볼 일을 보는 것도 불편했고요. 그래서 그냥 화장실 바닥에 볼 일을 본 적도 있었어요.(웃음)”

식사를 할 때에도 어른들이 먼저 드시기 전에 수저를 들었다. 외출을 하시거나 집에 들어오시는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는 법도 몰랐다. 네팔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문화였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식구들과 마찰도 많았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충고도 나를 싫어해서 하는 잔소리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시어머니께서 한국어를 배우는 곳이 있다고 신청했어요. 집근처 주민센터에서 몇달 배우다가 애기를 낳게 됐어요. 그리고 1년 동안은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에서 선생님을 집으로 보내줬어요. 지금은 너무 좋아요. 남편이랑 말도 통하고 밖에 혼자 놀러갈 수도 있고. 네팔에는 바다가 없으니까 저는 제주도 바다가 너무 좋아요.”

네팔의 소수민족인 타망족 새색시는 그렇게 한국 며느리가 됐다. 아기를 낳으면 닭고기를 먹는 네팔의 풍습이 아닌 미역국을 끓여먹는 한국의 문화도 익숙하다. 손님이 오시거나 시아버지가 들어오시면 (가끔 잊어버리는 하지만) 이제는 곧잘 먼저 나가서 인사를 하려고 한다.

“한국어는 발음이 어려웠어요. 마음으로는 나오는데 입으로 말할 수가 없었어요. 남편 이름이 ‘이승철’인데 처음에는 ‘이띵떨’이라고 불렀어요. 이제는 ‘이승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오빠'가 제일 편해요.”

아니타씨는 ‘아이고~ 잘한다. 잘하네. 착하다’라는 칭찬이 가장 좋다고 했다. 네팔 사람들은 표현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칭찬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서로를 안아주는 가족의 언어를 한국에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녀에게 한국은 '사랑'이다.

중국 며느리 류쥔나, 멕시코 사위 하비, 네팔댁 아니타. 세 사람은 9일 오후 2시 제주웰컴센터 1층 웰컴홀에서 만난다.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이 주최하는 ‘569돌 한글날 기념’ 전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자신들만의 좌충우돌 한국 생활 적응기를 풀어 놓을 예정이다.

이날의 승자는 중요하지 않다. 이 땅에서 우리말로 느끼고 생각하고 꿈을 찾는 그들이 모두 승자다.

조보영 기자  maana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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