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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리아인의 고백 “살아있음에 감사…제주사람으로 살고파”[인터뷰] 제주에 사는 유일한 시리아인 아메드(23).
“제주 바다로부터 슬픔 위로 받아…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자유 꿈 꿔”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 지난 2012년 12월 제주에 온 아메드(23)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본인의 일상을 이야기했다.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아침 8시, 알람이 울린다. 자그마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비비며 일어선다.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저 멀리서 770번 버스가 온다. 익숙하게 버스카드를 찍고 구석 자리에 앉아 창가에 머리를 기댄다.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의 한 식당. 앞치마를 둘러매고 거울을 바라본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 ‘미용실에 가야하는데’ 오늘도 생각만 한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테이블을 닦기 시작한다. 이제 또 하루가 시작이다.

오후 3시까지 식당 일을 하고 나면 제주시청 부근에 위치한 또 다른 식당으로 향한다. 숨을 좀 돌린 뒤 오후 6시부터 홀서빙을 시작한다. 밤 11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40만원짜리 월세방에 몸을 눕히면 천국이 따로 없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를 떠올려보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른다.

3년 전 시리아에서 제주에 온 아메드(23·제주시 노형동)의 이야기다.

노동착취했던 ‘나쁜 아저씨’…난치병 걸렸지만 의료보험 혜택 못받아 ‘전전긍긍’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 2012년 처음 제주에 온 뒤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털어놓는 아메드.
2012년 12월, 추운 겨울 제주땅을 밟았다. 찬바람이 불었고 입도 떼지지 않았다. 한국말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내전이 격화되면서 전쟁과 죽음을 피해 고향을 떠나왔다. 터키에 잠시 머물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 지인분을 통해 이 곳 제주까지 오게됐다.

‘어쩌다 이 낯선땅까지 흘러오게 됐을까?’ 고향을 등진 슬픔도 잠시. 살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몸을 쓰는 일 뿐이었다. 한 아저씨의 소개로 공사장에서 벽돌을 날랐고, 무 밭에서 무를 나르기도 했다.

일을 하면 숙식제공을 해주겠다던 아저씨는 자신의 집에 데려가 방 한 칸을 내줬다. 아침 6시부터 밤 7시까지 무려 13시간 동안 일을 하고 돌아오면 감자와 계란을 줬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역시나 감자와 계란만 줬다.

한국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싫은 내색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건강이 점차 나빠지는 게 느껴졌지만 묵묵히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병원에서는 ‘크론병(만성 염증성 장질환)’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 달간 꼼짝없이 입원해야만 했다.

하지만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병원비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인도적 체류’만 인정돼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수백만원으로 불어난 병원비는 고스란히 아메드의 몫이었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은 이야기를 하며 해맑게 웃는 아메드.
자신을 지켜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 아메드는 스스로 살 길을 찾았다. 난민인권센터에 사정을 호소해 후원금을 받았다. 140만원이나 되는 주사를 몇 차례 맞고 나니 후원금으로도 모자랐다. 주사는 계속 맞아야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모여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jeju lsland social’에 난처한 상황을 알렸다. 사정을 접한 이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100만원이라는 큰 돈을 선뜻 건넸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제주에 사는 외국인’이라는 공통점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아마 서울에 살았으면 이런 게 없었을 거예요.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더 똘똘 뭉쳤던 것 같아요”

제주가 더 좋아졌다. 반년 앞서 한국에 들어온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은 제주에서의 삶이 지루하다며 서울로 떠났다. 하지만 아메드는 떠나기 싫었다. 육지에 가면 고향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일거리도 더 많을테지만 제주의 푸른 바다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닮은 시리아…자유 찾아 떠나왔지만 한국서도 온전하지 않은 삶

협재, 함덕, 이호. 지칠 때면 찾아가 위로를 받고 돌아오는 바다들이다. 바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매번 같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시리아에서는 꿈도 가질 수 없었다. 사사건건 경찰에 물어본 뒤 행동해야 했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교과서는 그대로였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대학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죽거나 죽이거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였을 때 결국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한국에 와서 보니 시리아는 북한과 닮았더라고요. 학교에 가면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고, 대통령의 통제 하에 국민의 자유는 없었어요”

자유를 찾아 떠나왔지만 한국에서의 삶도 온전히 허락되지 않았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치적 이유나 재난 등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의 출국을 유예해주는 ‘인도적 체류’ 상태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이마저도 1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의료보험은 기대할 수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4월이면 한국 여권이 만료되지만 한국에는 시리아 대사관이 없어 일본에 있는 대사관에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권이 없으면 터키에 머물고 있는 가족을 보러갈 수도 없다. 이미 여권이 만료된 남동생은 가족을 못 본 지 오래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영원한 이방인’인 채로 삶을 이어가야만 할 수도 있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 최근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 배기 아일란 쿠르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아메드. 그는 "언론 보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리아인들의 죽음, 슬퍼할 여유도 없어…“돈 벌어 제주도 사람으로 살고파”

그러나 내전이 끝난다 해도 시리아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모두 흩어졌다. 유럽으로 피난을 가다 바다에서 죽은 이들도 있고, 생사도 확인할 수 없게 연락이 끊긴 이들이 대부분이다.

연락하고 지내는 시리아인이라고는 가족이 전부다. 뉴스에서 시리아 소식을 듣곤 하지만, 언론에 비춰진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최근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 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이 보도되면서 세상이 들썩거렸지만 아메드는 놀라지 않았다.

“피난을 오다 죽음을 맞이한 꼬마는 아일란 뿐이 아녜요. 우리 아버지의 여동생, 그러니까 내 고모의 3살, 10살 난 자식들도 죽었어요. 내 동생의 친구도 죽고, 친구의 동생도 죽었어요. 시리아인들의 죽음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예요”

매 순간 슬픔에 겨워하며 살아갈 순 없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놀라고 힘이 들었지만, 반복되는 슬픔에 시간을 뺏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돈을 벌어야했다. ‘시리아인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돈을 벌어 삶을 살아내는 것 뿐이었다.

“지난해 세월호에서도 많은 이들이 죽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슬픔에 젖었고 울면서 식사도 하지 못했죠. 그렇게 슬픈 일이 시리아에서는 매일 일어나요. 하지만 우린(시리안인) 슬퍼할 여유가 없어요. 모든 슬픔에 괜찮을 순 없지만 밥을 먹지 않곤 살 수 없으니깐요”

가끔은 시리아에서의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일을 하며 눈치껏 한국말을 배웠고, 이제는 의사소통을 하는 데도 별 어려움이 없다. 겉모습만 보고 낯설어하던 한국인들도 한국말로 먼저 말을 건네면 금세 친근하게 대해준다.

▲ [제주도민일보=김명선 기자] 제주에서 가족과 함께 살길 바란다는 아메드. 스물 세살의 청년은 자신만의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가 되기를 꿈꾼다.
“제주에 살면서 시리아를 까먹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이 마치 내 나라같다는 느낌이 든다니깐요”

‘나는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을까’ 원망한 적도 많지만 아프고 난 뒤에는 삶의 가치관이 바뀌게 됐다. 살아있음에, 건강함에 감사하다. 완치되지 않는 병 때문에 계속해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하지만 일을 할 수 있고, 일한 만큼 벌 수 있어 행복하다.

“이제는 어려울 게 없어요. 옛날에는 더 많이 힘들었으니까요. 돈을 많이 벌어서 카페를 차릴거예요. 그런 다음 터키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데려오고 싶어요. 그럴 수 있겠죠?”

꿈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요즘이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아메드에게 한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총각 잘생겼네, 어느 나라 사람이야?”. 아메드는 갑작스런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답한다. “제주도 사람이예요”.

그는 너무도 간절히 ‘제주도 사람’이 되고 싶다.

안서연 기자  asy01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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