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역 장애인 당사자들, 임신·출산·양육 어려움 토로
“활동보조서비스 확대 절실…남성장애인도 배제해선 안돼”

▲ 1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당사자! 그들이 말한다. 장애인의 임신·출산·양육 공감 토크콘서트'가 개최됐다.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있어서 임신과 출산, 육아는 얼마나 더 힘든 일일까. 실제 자녀를 낳고 키우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은 불편한 기능을 대신해 양육을 함께 해줄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소장 김경미) 소속의 여성장애인 자조모임 ‘띠앗’(회장 장기자)은 1일 오후 2시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당사자! 그들이 말한다. 장애인의 임신·출산·양육 공감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긴장한 표정으로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김미현(49·지제장애)씨는 “벌써 20년 전의 일”이라며 비장애인 남편과 서귀포에서 신혼 살림을 꾸리던 때를 회상했다.

김씨는 “친정도 시댁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행복할거라 믿었다. 하지만 생각과 현실은 달랐다”며 “임신을 하고 어렵사리 출산을 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생계를 위해 남편은 일터로 가고 조그마한 방 한 칸에서 아이와 단 둘이 있는데 생활하는 모든 게 다 불편했다”며 “내 몸도 겨우겨우 기어다니면서 생활하는 형국에 내 손으로 아이를 돌본다는게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를 회상하며 감정이 격해진 그는 쏟아지는 눈물에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렵사리 다시 입을 뗀 김씨는 “아이를 키우기까지 힘들었던 과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며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아이가 아팠을 때였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아이가 토하고 칭얼거리는데도 안아주지도 업어주지도 못할 때면 가슴이 미어졌다”며 “오죽하면 아들녀석이 집에 놀러온 동네 6살 아이에게 업어달라고 보채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만약 당시에 활동보조서비스만 있었더라도 아이를 양육하는데 힘들진 않았을 것”이라며 뒤늦게 도입된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양선영(39·청각장애)씨 역시 양육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청각장애남성과 결혼한 양씨는 “상견례 때 같은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시어머니께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비장애인과 결혼을 했으면 하셨다”며 “자녀도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날까봐 걱정했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건강한 딸을 얻은 양씨는 “막 태어난 아이가 ‘응애’하고 울었을 때 아기 목소리에 너무 기뻤다”며 당시의 감격을 떠올렸다.

하지만 양씨는 “밤에 아기가 울어도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며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양씨는 “아이가 아플 때 어찌해야 할 지를 몰랐었다”며 “나중에는 어린 딸아이가 수화로 아프다는 걸 말해서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양씨는 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겪었던 불편함들도 호소했다.

그는 “수업에 참관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모든 어머니들이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며 “이후부터는 친정엄마를 대신 보내야만 했다”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가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보니 아이에게 책도 읽어주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3년 전까지만 해도 언어바우처사업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직접 집에 와주셨는데 지금은 중단된 상태”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양씨의 이야기를 경청한 김경미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은 “어떤 청각장애여성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배 위에서 아이를 키웠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며 “다름에 대한 인정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1일 '장애인의 임신·출산·양육 공감 토크콘서트'에 참여한 장애인 당사자들이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양육에 대한 어려움은 여성장애인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결혼 4년차인 이준협(척수장애)씨는 “임신·육아라고 하면 여성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지는데 남성도 역시 어렵다”며 “특히나 장애를 갖고 있으면 더욱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먼저 척수장애인으로서 아이를 갖기까지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씨는 “남성척수장애인의 경우 자연임신을 할 수 있는 확률이 2~3%다. 때문에 시험관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데 제주에는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없다”며 “접근성이 어려운 저같은 경우 이용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뿐만아니라 이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임 상담을 하지만 제주지역 병원들은 대부분 불친절로 일관했다”고 지적하며 “때문에 육지에서 (시험관 시도를) 하게 됐다”로 말했다.

하지만 육지로 가도 어려움은 따랐다. 이씨는 “타지로 가다보니 항공비, 숙박비 등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컸다. 난임지원비가 1회당 150만원 정도 지원되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출산장려를 위한 지원의 미비점을 꼬집었다.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며 노력한 끝에 겨우 아들을 얻게 된 이씨는 “아이를 갖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어려웠다. 맘 편히 안아볼 때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출산장려정책이 여성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남성장애인이 기껏 받을 수 있는 건 활동보조인 6개월 추가 지원뿐”이라며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아내가 걸을 때마다 통증이 동반되는 질병에 걸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아내는 항상 울고 있다. 하소연을 듣는 일밖에 해줄 게 없다”며 “양육 부분에서는 여성장애인도 힘들지만 남성장애인도 힘들다는 걸 공감해줬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임신 3개월째인 이정순(29·지적장애)씨와 함께 참석한 남편 부현준(31·지적장애)씨는 “아이를 낳게 되면 키우기가 힘들 것 같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지를 모르겠다”며 누구나 하는 고민이지만 지적장애인들에게는 더 간절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들 부부는 “우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고 하는 걸 옆에서 누가 도와주면 고맙겠다”며 장애인 육아 활동보조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들 부부의 고민을 들은 김 소장은 “지적장애인들의 아이는 공동체가 같이 키워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활동보조인제도 서비스가 올해부터 3급까지 확대됐지만 막상 3급 지적장애인들이 신청을 하면 등급 외 판정을 받는 실정”이라며 대상 확대 취지에 걸맞은 서비스 지원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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