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주년 특집 기획] 한라산 지킴이 24시…②
“기상변화 많은 한라산, 가볍게 봐서는 안 돼…준비는 철저히”
등산에 맞지 않은 복장, 자칫 안전사고로…탐방객 안전까지도

지난 한해 한라산을 찾은 탐방객수는 116만6000명이다. 수많은 탐방객들이 한라산 5개 코스를 통해 한라산 정상과 윗세오름을 오르내린다. 한때는 부악(한라산 정상부)의 벽이 무너지는가 하면 곳곳이 훼손되면서 일부 탐방로가 폐쇄됐다. 이후 일부 구간에 휴식년제가 도입되고 수많은 곳에서 복원 사업이 이뤄지기도 했다. 100만 명이 넘는 탐방객들이 오르내리면서도 한라산이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한라산 지킴이(청원경찰)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영산(靈山)이자 명산(名山), 그리고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을 지키는 25명의 한라산 지킴이가 있다. 이들은 한라산 곳곳을 누비면서 탐방객들의 안전은 물론 한라산이 훼손되는 것까지 막는 역할을 한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대한민국 최고(最高)·최대(最大)의 직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한라산 지키는 일,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2. “나 에베레스트까지 다녀온 사람이야”

▲ 한라산 동릉 정상에서 바라본 백록담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한라산은 기상변화가 많은 곳이다. 날씨가 좋았다가고 갑자기 흐리고, 흐렸다가도 갑자기 좋아진다. 바람이 그쳤다가 갑자기 바람이 부는 곳, 안개가 걷혔다가고 갑자기 앞이 안보일 정도로 안개가 끼는 곳. 그곳이 한라산이다. 쉽게 한라산에 오르기를 허락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름을 허락하지 않는 그러한 영산(靈山)이다.

한라산 지킴이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라산 각 코스에 대한 점검과 통제를 한다. 특히 궂은 날씨에는 일하기가 어려워진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 다름 아닌 억지 탐방객들 때문이다.

10년을 한라산에서 근무했다는 한라산 지킴이 김상범(51)씨에 따르면 대설주의보나 호우주의보 등 한라산 탐방이 전면 금지가 되는 날에는 탐방로 입구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멀리서 왔는데 조금만 올라갔다 오겠다며 떼를 쓰는 탐방객, 자신이 에베레스트까지 다녀온 사람이라며 큰소리치며 금지된 산행을 하겠다고 우기는 탐방객 등 가지각색이라고 한다.

▲ 성판악 탐방로 입구에서 한라산 지킴이들이 진달래밭에 보낼 사발면 등을 모노레일에 실고 있다.
4일 9시쯤. 한라산 지킴이들이 성판악 코스 입구에서 사발면이 가득 실린 모노레일이 운행 준비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라산 지킴이들이 사발면을 가득 담은 가마니 몇 포대를 지게로 지어 대피소까지 날랐다고 한다.

10여 년 전부터 한라산 지킴이들이 그런 수고를 더는 모노레일이 깔려 한라산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짐이나 대피소의 필요한 물건, 응급 시에는 환자수송까지 한다.

이날은 성판안 코스와 정상에 근무하는 한라산 지킴이들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한라산에서 근무하는 한라산 지킴이들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부치다. 결국 이날 한라산 동릉 정상에서 근무하는 김상범씨를 만나자 기쁨(?)이 몰려왔다.

성판악 코스에서의 한라산 지킴이들의 근무 방식은 진달래밭대피소에서 근무한 자가 다음 날 정상에서 근무하고 다음 날은 반대로 근무하는 순환근무 방식이다.

▲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한 한라산 지킴이가 탐방객들의 탐방을 지켜보고 있다.
김씨 역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탐방객들이 백록담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지, 위험한 곳으로 이탈하지 않는지 등을 살핀다. 또 곳곳에 탐방객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를 줍는 일도 한다.

진달래가 한창인 6월 초 한라산 성판악코스는 한라산 동릉 정상까지 오르는 탐방객들로 줄을 잇는다. 관음사 코스로도 정상에 갈 수 있지만 그다지 난코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판악 코스는 진달래가 만발하게 피는 ‘진달래밭’도 있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한라산 동릉 정상에서는 백록담의 장관을 마주하려는 많은 탐방객들로 일찌감치 붐빈다.

단체 산악인들부터 개별관광객·대학 동아리·수학여행단까지 많은 탐방객들이 줄을 서다시피 해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오른다.

▲ 한라산 동릉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 동북부. 탐방객들이 하산하고 있다.
성판악 코스에서 백록담을 볼 수 있는 동릉 정상까지 9.6km. 약 4시간 30분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이어 하산 시간만 3시간이 훨씬 넘게 걸리다 보니 해가 지기 전 하산하려면 정상에서 늦어도 오후 2시30분에는 하산 준비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 남쪽 최고봉인 한라산 동릉에서 바라보는 백록담은 장관이다. 그 너머로 제주시와 서귀포시가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맑은 날이면 동쪽의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그 사이에 올록볼록 엠보싱처럼 솟은 수많은 오름들은 제주가 천혜의 자연공원임을 말해준다.

탐방객들은 온 힘을 다해 정상에 올라 백록담과 그 주변의 장관을 만끽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 내려가야 한다.

오르면서 지칠 대로 지쳐 힘도 없거니와 쿠션이 전혀 없는 신발과 혹은 구두, 땀이 잘 마르지 않는 젖은 바지를 입은 탐방객들에게는 하산이 더욱 큰 곤혹이다. 게다가 가벼운 배낭하나 가져오지 않아 진달래 밭 대피소에서 사먹고 남은 쓰레기까지 양 손에 들고 내려가야 한다.

▲ 한라산 지킴이가 한라산 동릉 정상에서 탐방객들의 하산을 안내하고 있다.
▲ 한라산 지킴이가 한라산 동릉 정상에서 탐방객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하산 시간이 임박하자 정상 부근에 있는 관리사무소에서 김씨가 하산 안내 방송이 연이어 한다.

정상에서 출발해 30여분 하산 길. 탐방로 곳곳에는 탐방객들이 주저앉아 있거나, 심지어 부축을 받거나 업혀서 하산을 하는 탐방객들이 눈에 뛴다.

발목이 아파 쉬는 탐방객. 평소 무릎이 좋지 않았다던 탐방객. 감기 증상이 있어 탈진 한 탐방객. 넘어져 다친 탐방객 등.

정상 근무를 마치고 제일 마지막으로 하산을 하던 김씨의 눈에도 많이 힘들어 보이는 탐방객들이 눈에 띤다.

그 중에서도 생리통으로 조금 움직이는 것 조자 힘들어 보이는 여성 중국인 관광객이 김씨의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20여분 남짓 남은 진달래밭대피소까지 이 여성 관광객을 부축해 하산을 돕는다.

▲ 김상범씨가 한 중국인 여성관광객을 부축해 하산하고 있다.
▲ 한 탐방객들이 발목을 다친 일행을 업고 하산하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 1시간여 만에 만날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 진달래밭대피소. 모두 떠난 이 곳 대피소에는 환자 6명과 한라산 지킴이 6명만 남아있다.

한라산 지킴이들은 아픈 탐방객들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다. 구조를 요청해야 할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한라산 지킴이들은 탐방객들의 상태를 확인 한 뒤 모두 병원 후송 환자는 없다고 판단, 모노레일에 태워 성판악 입구까지 후송시키기로 결정했다.

인천에서 여행을 온 최연숙(57.여)씨는 “요즘 체력 많이 떨어져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인데 하필 치료를 마친 무릎이 말썽”이라며 “한라산 지킴이들 덕분에 모노레일로 쉽게 내려 갈수 있어 다행”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라산 지킴이들은 한라산 탐방에 나서면서 아무런 준비 없는 탐방은 사고 확률을 높인다고 입을 모은다.

▲ 김상범씨가 마지막 하산을 하는 탐방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김씨는 “제주도 여행을 왔다가 준비 없이 한라산을 탐방하는 탐방객들이 많이 있다”며 “이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체력 정도에 맞게 탐방을 하고 돌아 가야 한다. 하지만 일행들과 함께 산을 오르다보니 무리해 사고를 많이 당한다”며 “이 때문에 다치기도 하지만 심지어 숨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절에 따라 알맞은 등산 장비를 꼭 갖춰 악몽 같은 산행이 아닌 안전하게 한라산을 즐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해 한라산을 탐방하다 골절과 타박상, 심정지 등으로 헬기나 119구조대, 모노레일, 인력 등에 의해 후송된 탐방객은 모두 774명이다. 특히 숨진 사람도 모두 4명(심정지)에 이른다.

그만큼 한라산 탐방을 간단한 등산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라산 지킴이들은 한라산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탐방객들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