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주년 특집 기획] 한라산 지킴이 24시…①
“1백여만 탐방객 관리부터 쓰레기 줍기까지…바쁘다 바빠!”
“사법권 없어 불법 단속 힘들어…그래도 자랑스러운 직장”

지난 한해 한라산을 찾은 탐방객수는 116만6000명이다. 수많은 탐방객들이 한라산 5개 코스를 통해 한라산 정상과 윗세오름을 오르내린다. 한때는 부악(한라산 정상부)의 벽이 무너지는가 하면 곳곳이 훼손되면서 일부 탐방로가 폐쇄됐다. 이후 일부 구간에 휴식년제가 도입되고 수많은 곳에서 복원 사업이 이뤄지기도 했다. 100만 명이 넘는 탐방객들이 오르내리면서도 한라산이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한라산 지킴이(청원경찰)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영산(靈山)이자 명산(名山), 그리고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을 지키는 25명의 한라산 지킴이가 있다. 이들은 한라산 곳곳을 누비면서 탐방객들의 안전은 물론 한라산이 훼손되는 것까지 막는 역할을 한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대한민국 최고(最高)·최대(最大)의 직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한라산 지키는 일,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2. “나 에베레스트까지 다녀온 사람이야”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3일 오전 9시쯤 한라산 어리목 탐방로 입구. 탐방객들 사이로 ‘공원 순찰’이라고 적힌 배낭을 맨 한 남자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는 해발 1950m 한라산의 어리목 탐방로 구간을 누비며 경비와 순찰을 맡고 있는 한라산 지킴이 김용성(35)씨다.

▲ 한라산 지킴이 김용성씨가 윗세오름 광장을 찾은 탐방객들에게 주의 방송을 하고 있다.
출발부터 김씨의 발걸음과 숨소리가 빠르다. 어리목 탐방로 입구에서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일반인들의 발걸음으로는 2시간 남짓 소요되지만 김씨는 그 시간의 절반이면 충분하다.

윗세오름 안내소에 도착한 그는 잠시 숨 돌릴 틈이 없이 윗세오름 안내소에 들어간다. 김씨보다 먼저 출발해 도착한 탐방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는 안내 방송을 한다. 탐방객들의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 한라산 지킴이 김용성씨가 영실코스 탐방로를 순찰하고 있다.
오전 11시30분쯤. 김씨의 전화가 울린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약 1km 떨어진 선작지왓에서 다수의 탐방객들이 탐방로를 벗어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과태료 고지서를 챙기고 선작지왓으로 손살 같이 달려간다.

선작지왓 곳곳에는 탐방로를 벗어난 탐방객들이 눈에 띤다. 인근 만세동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두 삼각대에 카메라 장비를 설치해 사진 촬영에 몰두하고 있는 사진작가들이다. 일부는 자신의 키 보다 넘는 사다리까지 들고 왔다.

김씨에 따르면 이맘때면 진달래로 붉게 물든 한라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 한 사진작가 무리가 한라산 탐방로를 이탈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반 탐방객들은 탐방로를 따라 지나가고 있다.
그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그들을 촬영한다. 탐방로 이탈은 불법이기 때문에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진작가들에게 큰 소리로 나오라고 요청을 한다. 하지만 사진작가들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어 듣는 둥 마는 둥이다.

▲ 한라산 지킴이 김용성씨가 탐방로를 이탈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사진작가에게 탐방로로 들어가 줄 것을 요청하지만 사진작가는 사진 찍는데만 몰두하고 있다.
결국 그는 사진 촬영에 몰두한 사진작가들에게 다가가 “과태료를 부과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제야 조금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진작가들은 “잠시 만요. 한 컷만 더 찍고요”라면서도 계속해서 사진 촬영을 한다.

한마디로 ‘쇠귀에 경 읽기’다. 김씨는 이럴 때마다 곤혹스럽다.

그는 “원칙대로라면 과태료를 부과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법권이 없다보니 과태료 부과도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는 또 “우리는 사법권이 없다보니 신분증 확인을 요구해도 거절해 버리면 그만”이라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고 단속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이어 “신분증이 없다며 거짓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말해버리면 과태료 처분을 내릴 수도 없다”면서 “그나마 양심이 있는 사람들만 과태료 처분을 받는 이상한 규정”이라고 하소연 했다.

지난 한 해 한라산 지킴이들에게 단속돼 과태료가 부과된 건수는 모두 113건이다. 부과 내용별로는 흡연 85건, 무단출입 28건이다. 이처럼 국립공원 내 불법행위로 적발될 경우 50만 원 이하 과태료에 처해진다.

무단출입의 경우 대부분 사진작가들이다. 이들은 꽃이 만발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거나 신비한 기상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탐방로를 이탈해 사진 촬영을 하는데 한라산 지킴이들에게는 골치 아픈 불청객이다.

▲ 한라산 지킴이 김용성씨(맨 뒤)가 사진작가들과 한창 실랑이 끝에 출입금지 지역에서 사진작가들을 이동시키고 있다.
김씨는 실랑이를 벌인 끝에 사진작가들을 겨우 탐방로로 쫓아(?)내고는 그들이 이동하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안심을 놓는다. 단속을 마치고 다시 윗세오름에 돌아온 김씨는 여전히 바쁘다.

탐방객들이 몰래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 특히 수학여행단이나 단체 탐방객들이 한번 지나간 자리는 쓰레기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아무리 방송을 하고 주변을 다니며 계도를 해도 소용이 없다. 계도를 할 때뿐, 빈 봉투에 들어간 쓰레기들은 잠시 후 봉투 채 아무데나 또 버려진다.

그에게는 쓰레기를 줍는 것도 신속해야 한다. 자칫 쓰레기가 바람에 날려 멀리 날아가면 줍기도 곤란할 뿐만 아니라 청정한 한라산을 망치기 때문이다.

▲ 탐방객들이 한라산에 버리고 간 쓰레기
탐방객들이 대부분 하산하고 난 3시15분쯤. 김씨가 안내소에 들어와 쉬려던 순간 50대 여성으로 보이는 탐방객이 관리소 창문을 두드린다.

일행의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어떻게 하산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그는 안내소 이곳저곳을 뒤져 끈을 찾아내고는 탐방객의 등산화를 단단히 고정시켜준다. 그리고는 “조심히 내려가세요”라는 당부의 인사도 잊지 않는다.

▲ 한라산 지킴이 김용성씨가 한 여성 탐방객의 등산화를 끈으로 묶어주고 있다.
탐방객들이 모두 하산한 4시30분쯤. 이제야 김씨도 하산을 한다.

그는 하산도 그냥하지 않는다. 손에는 하얀 쓰레기봉투를 쥔 채 내려간다. 탐방로 주변에 일부 몰지각한 탐방객들이 버리고 간 물병 등 각종 쓰레기를 주워야 하기 때문이다.

허리를 구부렸다가 펴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내려갈수록 그의 쓰레기봉투는 점점 부피가 커져간다.

▲ 한 한라산 지킴이가 탐방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고 있다.
탐방객들을 관리하고 그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도 그는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다.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즐겁다. 게다가 제주의 자랑거리, 대한민국의 명산,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을 지킨다는 자부심도 있다.

김씨는 “우리나라 최고의 산인 한라산이 내 직장이고 이 산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며 “게다가 제주 어디서든 내 직장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직장이 어디 있느냐”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한라산 지킴이 김용성씨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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