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제주도정의 감귤 구조혁신 발표…현장에선 “문제점 투성이”
비상품유통 심화·환경오염·자율성 침해·재산권 침해 등 ‘불만 폭주’
농가혁신 필요하지만 현장 실정 고려해야…"전면 폐기 후 재수립

▲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14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감귤구조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제주도가 '고품질 감귤 안정생산 구조혁신'을 발표했다. 감귤농가에 혁신을 요구하고 그 혁신을 이행하는 농가에 한해 행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농가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농가의 작목 재배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일부 정책의 경우 중단으로 인해 농가의 수익 감소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떠한 정책에서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농민들은 반발하고 있을까?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14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감귤 고품질 생산기반 구축 ▲비상품 감귤 산지에서 폐기 ▲가공용 감귤 수매가격 재설정 ▲과학적 감귤통계 시스템 도입 ▲감귤거래소 시범적 운영 ▲감귤 전업농 3000농가 육성 등을 골자로 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특히 ▲표준과원 조성 의무화, ▲불량감귤원 정비명령제 도입, ▲성목이식사업 확대, ▲품종갱신, ▲수령 50년 이상 감귤원 재입식, ▲부적지 감귤원 폐원, ▲작목·작형 전환 등을 통해 고품질 생산기반을 구축할 것을 선언했다.

# 가공용 감귤 규격 재설정·수매제도 폐지 및 고품질 감귤생산에 투자·산지폐기

제주도는 그동안 비상품 감귤 전부를 수매하고 1kg당 50원을 보전해왔다.

제주도에 따르면 감귤생과 10만t을 가공할 때 들어가는 비용은 수매비 160억 원에 감귤가공 2차 발생 비용(감귤박 처리비, 농축액 저장료, 농축액 생산비) 등 500억 원까지 포함하면 660억 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비상품감귤을 상품규격에서 발생하는 중결점과만 가공용으로 수매토록 하기로 했다. 게다가 kg당 50원을 보전했던 제도도 없애기로 했다.

보전에 사용됐던 예산은 고품질 감귤 생산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원 지사의 설명이다. 가공용으로도 처리되지 못하는 감귤은 산지폐기를 방침으로 세웠다.

이를 통해 감귤생산량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공용감귤도 고품질의 감귤로 하겠다는 계획이다. 가공용감귤의 이미지 개선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농가로서는 상당한 소득 감소와 장기적인 감귤 가격 안정적 보장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게다가 산지폐기로 인한 토양오염 등을 우려하고 있다.

감귤 농가들은 비상품 감귤을 생산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농가들의 입장에서는 비상품 감귤 발생에 애를 썩고 있다. 그러한 고민은 가공용으로 처리되면서 약간의 생산비라도 건져내면서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비상품감귤의 가공용 수매 불가 원칙이라는 정책은 농가들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의 김진관씨는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비상품 감귤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제주도가 비상품 감귤에 대한 수매가격보전제도를 폐지하고 수매 물량도 줄인다고 발표하면 농민들 입장에서는 비상품 감귤을 어디로 처리해야 하냐”고 비공식 통로를 통한 비상품갈귤 유통을 우려했다.

제주도는 보전제도를 없애고 그 예산을 고품질 감귤 생산에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대책도 없다.

김씨는 “제주도가 수매제도 보전제도를 없애고 고품질 감귤 생산에 투자하겠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계획은 아무리 눈을 찾고 씻어도 보이지 않는다”며 “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더욱이 비상품감귤을 산지폐기 하겠다고 했지만 이로 인한 토양오염과 지하수 오염 등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씨는 “비상품 감귤을 산지에서 폐기하라고 하는데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심각해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폐기하는 농심도 아프지만 농지를 비롯한 재배환경도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다.

# 표준과원 의무화

제주도는 고품질 감귤 적정생산, 품질향상, 감산정책의 핵심사업으로 ‘감귤원 정비명령제’와 병행해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도는 표준과원을 올해 400ha, 내년 500ha, 2017~2019년까지 각각 500ha 등 올해부터 2019년까지 총 2400ha를 조성해 나간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표준과원 조성 기준이 모호하다고 농지의 특성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제주지역 감귤 농장의 경우 각 지역마다 농지 특성이 있고 기후조건도 제각각이다. 때문에 농가마다 재배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같은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도 노하우도 달라 조금씩 다른 농법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률적인 재배방식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표준과원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표준화된 공장에서 규격에 맞는 감귤을 찍어내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표선면 가시리의 강석대씨는 “현장을 도외시한 대책”이라고 못 박은 뒤 “제주도라도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토질과 기후 등 농업조건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서귀포라도 또 동과 서쪽이 감귤품질이 다른데 어디를 기준으로 표준과원을 설정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강씨는 특히 “농산물을 표준화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농산물이 공산품도 아닌데 어떻게 표준화 한다는 것이냐”고 쏘아붙였다.

▲ 원희룡 제주지사가 14일 발표한 감귤대책에 대해 현장농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농민들은 퇴진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 부적지 감귤원 폐원

도는 감귤농사를 짓기 적절하지 않는 감귤원을 폐원하겠다고 밝혔다. 부적지 감귤원에서 저품질 감귤이 나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부적지 기준을 어떻게 삼아야 할지가 문제된다. 더욱이 농가의 ‘작목 선택의 자율’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우려마저 들고 있다.

게다가 부적지에 심어진 감귤나무를 뽑고 나면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도 문제로 남는다.

강석대씨는 “제주도에서 가장 감귤농사가 잘 되는 곳은 중문, 효돈, 남원, 위미, 표선 일부지역이다. 이 지역의 토질은 감귤농사 외에는 되지 않는다”며 “특히 이 지역의 감귤 생산량은 제주도 전체 생산량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함덕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김모씨는 “현재 3000평 이상 감귤 농사를 짓는 농가들의 경우 부적지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폐원시킨다면 재산권 침해가 되지 않겠느냐”고 항변했다. 

그는 특히 “그들도 부적지라지만 부적지에 따른 개별 농법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저품질 감귤만 생산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은 탁상행정 중에서도 가장 잘못된 탁상행정”이라고 비꼬았다.

부적지 감귤원 폐원에 따른 대체작목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폐원만 추진하다간 제주도 전체 농산물 가격의 동반 폭락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제주도는 품목의 집중화 현상을 막기 위해 지난해 보리 재배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올해는 메밀 재배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불안하기 마찬가지다. 감귤과수원이 없어지면 그 자리에 심을 만한 품목이 없다는 것이다.

성산읍 온평리 송대수씨는 “제주에서 감귤은 전체 농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감귤 과수원을 폐원하고 다른 품목으로 유도한다고 하지만 막상 심을게 없다”고 꼬집었다. 매년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인해 더 심을게 없다는 농민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송씨는 “2002년 한·칠레FTA가 타결되고 제주도는 감귤밭을 폐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다시 감귤 재배면적이 늘어났다. 이는 감귤 외에는 심을게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근데도 제주도는 2002년 내놓은 대책을 10년이 지난 지금 원희룡 지사가 다시 꺼내들어 농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어떤 바보 같은 농민이 이를 받아드리겠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성산읍의 현호성씨도 “나는 현재는 감귤 농사를 짓지 않지만 매년 농산물 가격이 오락가락 해서 진짜 지어먹을 농사가 없다”며 “그런데 감귤 과수원을 폐원하고 나면 그 자리에 뭐가 심어질 것 같나. 바로 무 아니면 당근 등 채소류, 근채류가 심어질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또 해당 품목에 대한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폭락될 게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불량감귤원 정비명령제 도입

불량감귤원 정비 명령제는 말 그대로 오래된 나무,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지는 감귤과수원을 강제로 정비명령을 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사유재산 침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사유재산 처분을 개인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이다. 일면 현실과 맞지 않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란 지적도 나온다.

표선면 성읍리의 홍모씨는 “어떻게 사유재산을 처분을 지방정부가 강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과 국가 간의 충돌을 어떻게 조정, 해결할 것인가”라고 제주도정에 질문했다.

#감귤 전업농 3000농가 육성

제주도는 감귤만 전업으로 하는 3000농가를 육성하겠다고도 발표했다. 프로농민을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가 어떻게 감귤농사 짓겠다는 농민들을 강제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발표는 감귤농사를 짓는 농민과 다른 품목의 농사를 짓는 농민과 ‘계층 간 소득불균형’이란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감귤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과 다른 농사를 지어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비슷해야 농민들의 불만이 폭주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고성효 전농 제주도연맹 정책위원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제주도가 감귤농사에만 집중하고 타 농산물의 가격 정책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차별정책을 펴면 농민들은 당연히 감귤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선 대책 발표 후 설득

제주도의 이번 발표는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농가의 혁신을 포장해 ‘선 대책 발표 후 설득’을 한 것인데 당연히 농가의 반발은 불보듯 뻔했다.

그런데도 제주도가 이러한 방침에 벌써부터 도내 일각에서는 ‘불통행정’의 표본이라는 지적하고 있다.

남원읍 신흥리 김윤천씨는 “농민들과 함께 감귤 대책 논의해 보자고 한마디도 없었다. 공무원 자기들끼리 책상에 앉아서 대책이랍시고 만들어 놓고 우리 농민들한테 ‘이거 해라’라고 하면 누가 하겠냐”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아무리 잘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발표하기 전에 농민들에게 물어보고 반응도 살핀 뒤 발표해야 하는데 이건 거꾸로 가고 있다”며 “원희룡 지사가 취임 당시 소통하겠다고 해놓고 지금 이게 소통하는 것이냐”고 강하게 꼬집었다.

#현장 농가의 목소리 반영 안 돼

농민들은 또 제주도가 보조금을 명목으로 농민들을 길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이 안 됐다는 것이 농가들의 주장이다. 때문에 정책의 '전면 폐기 후 재 수립'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덕면 덕수리 송모씨는 “보조금이 무기냐?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농민들을 상대로 의식을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 과연 원희룡 지사 입에서 나오기 적절한 말이냐”며 “보조금으로 농민들을 길들이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고성효 정책위원장은 이번 대책을 종합적으로 “제주도가 발표한 대책은 정말 현장 농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딱 좋은 대책”이라고 꼬집으며 “어떻게 이런 발표가 나왔는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전체적인 농산물 가격이 골고루 좋아야 한다. 그래야 농민들이 한 품목에 집중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감귤이라는 품목 한 개만 살리려다 보니 이런 참담한 대책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남원읍 남원리 김모씨는 "농가의 혁신이 필요하고 해야되는 것은 인정한다. 그 취지는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원 지사가 문화분야와 함께 농정분야에서 협치를 구현하겠다고 했다. 협치위원회가 불발되긴 했지만 적어도 협치를 하겠다고 했으면 농정분야의 전문가와 일선 농가들과 심도 있는 토론과 논의를 거친 뒤 정책을 발표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욱이 "감귤은 수십년 동안 제주를 버텨온 버팀목"이라며 "섣부르고 잘못된 감귤 정책은 제주의 농업 경제는 물론 도내 전반적인 경제마저 흔들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다시 농가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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