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까막눈 설움 벗는 늦깎이 학생들…⑥
강인숙 자원교사 “감사함 속 행복 찾아…부끄러움 잊고 오길”

▲ 동려평생학교 자원교사 강인숙(52)씨.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제일 뜨거운 사랑을 선생님께 바칩니다’

수줍게 내민 편지에는 꾹꾹 눌러 쓴 진심이 담겨있었다. 중간중간 뭉친 까만 점들에서는 지난밤 고민의 흔적들이 엿보였다. 삐뚤삐뚤 문장 아래, 새빨간 하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여느 색연필 색깔과 달랐다.

“‘색이 없어서 립스틱으로 칠했다’며 쭈볏쭈볏 편지를 건네시더라고요. 립스틱으로라도 하트를 그려주고픈 어르신의 마음에 가슴이 얼마나 뭉클했는 지 몰라요”

스승의 날을 앞두고 만난 동려평생학교 자원교사 강인숙(52)씨는 3년 전 그 날을 떠올리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편지를 주실 때면 눈물이 나요. 아무리 받침이 틀리고 글씨가 제각각이어도 좋아요. 거기에 진짜 마음이 담겨있잖아요”

수십여년간 소리로만 사용했던 한글을 써내는 모습만 봐도 기쁜데, 마음까지 담아 써주실 때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참 감정을 느낀다.

“사실 저도 늦깎이 학생이었어요”

강씨 역시 마흔일곱이라는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에 들어갔다. 평생교육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가 얼마나 힘든 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문해교육’에 관심이 갔다.

“늦은 시기에 도전을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거든요. ‘아, 이거구나’ 이해했다가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예요. 그 안타까운 심정을 잘 아니까 마음이 더 쓰였던 것 같아요”

2012년 실습으로 시작한 강의는 학교를 졸업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나와서 초등반 국어를 가르친다. 다른 자원교사들의 연차에 비하면 햇병아리 선생님에 불과하지만 강씨에게는 수업을 돕는 ‘보조교사’까지 있다.

바로 강씨의 딸(17)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를 따라 평생학교에 드나들던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함께 수업에 들어간다. 강씨가 칠판 앞에서 가르치고 있으면 딸아이는 수업진도에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어르신들을 돕는다.

“아이가 먼저 선뜻 따라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이제는 저보다 더 열성적이라니깐요. 아이도 즐거워하고 어르신들도 참 좋아하셔요”

웃음이 끊이지 않는 교실 속에서 아이는 ‘교사’라는 꿈을 갖게 됐다. 그 과정 속에서 강씨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딸아이를 바라봐주었다.

“가만히 앉아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직접 공부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싶더라고요. 학원 보내는 것보다 이 편이 아이한테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딸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달려온 강씨는 지난해 제주시에서 주최한 평생학습센터 강사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체험수기 제목은 ‘감사함 속에서 작은 행복을 보다’였다.

“평생학교에서 어르신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얻어가는 게 더 많거든요. 비록 소박하고 작은 교사활동이지만 저에게 행복과 긍지감을 주셔요. 그 마음을 체험수기에 담았어요”

남들 앞에서 신문을 읽는 척 연기해야만 했던 60대 어르신은 자신의 거짓인생을 고백하며 ‘글을 알면서 온 세상이 이렇게 환하고 예쁜지 이제야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첫 소풍을 가던 날 ‘자식들을 위해서만 싸주던 도시락을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준비했다’던 어르신들의 들뜬 표정도 잊혀지지 않는다.

깜깜했던 시간을 통과해 비로소 글을 알게 된 어르신들은 한 목소리로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강씨는 고개를 내젓는다.

“저는 그저 옆에서 돕기만 한 것일 뿐인걸요. 스스로가 용기를 내어 학교를 찾았기 때문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거예요”

강씨가 처음 대학에 들어갈 때도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과연 내가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적응은 물론 학생회장까지 역임해가며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오시기까지 얼마나 힘든 지 잘 알아요. 부디 늦었다 생각 말고 오늘과 내일의 값진 행복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학교에 오셨으면 좋겠어요”

동려평생학교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강씨의 본업은 ‘포크아트강사’다. 문화강좌에서 가구나 소품에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본인 이름으로 샵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본업보다 자원교사 활동에 더 열심히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다.

“오며 가며 어르신들 뵙는 게 좋거든요. 어젠 얼마만큼 공부하셨나 보고 수다도 떨고요. 게다가 여기 자원교사 선생님들끼리 뜻이나 생각이 닮아서 함께 있으면 참 편안해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여기 있어요”

이런 강씨에게 자그마한 바람이 하나 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학교가 ‘부끄러움’이 아닌 ‘즐거움’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어르신들로부터 받은 한없는 사랑을 돌려드리기 위해 제 힘이 되는 날까지 좋은 인연 함께하며 자원교사로서의 역할을 다할 거예요”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