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특집] 학령기 이후 갈 곳 잃은 성인 발달장애인…①
발달장애 부모의 고민 “혼자 될 아일 위해 뭘 해야?”…평생교육체계 ‘절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봄을 필요로 하는 발달장애인에게 있어 올해는 참 특별한 해다. 지난 2012년 19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발의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이 오는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장애유형과의 형평성 등으로 인해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대해 난색을 표해왔던 정부가 드디어 발달장애인이 ‘장애인 중의 장애인’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알멩이 있는 시행령’과 ‘예산 확보’라는 진짜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발달장애인의 삶을 부모가 오롯이 짊어져야했지만 발달장애인법이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이 역할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특히 학령기가 끝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경우 24시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막막한 현실에도 일말의 ‘돌파구’를 안겨줄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성인 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시설’은 줄곧 요구돼 왔지만 여전히 요원하기만 한 상황에서 <제주도민일보>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관점에서 ‘평생교육시설’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발달장애인’이란 ☞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그 밖에 발달이 지연돼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의사결정 및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능력이 부족해 성인이 돼서도 주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제주영송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고수완(19)군이 오름에 올라 해맑게 웃고 있다.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고영관(52)씨가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위치한 창암재활원 문을 두드린다. 아들 고수완(19·영송학교2)군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껏 들뜬 아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조수석에 떡하니 앉아서는 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린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 않고 그저 신난 표정이다. 스무번도 넘게 갔던 조근노꼬메오름에 또 오르러 간다.

생수가 든 가방을 들춰매고 아버지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는다. 이제 수염도 거뭇거뭇하게 난 녀석이 스스럼도 없다. ‘수완아, 안 힘들어?’라는 질문에도 답이 없다. ‘헥헥’거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오름에 오른다. 

5년째 반복되는 일요일 풍경이다.

수완군은 자폐성장애 1급의 발달장애인이다. 처음 장애판정을 받은 건 3살 때였다. 고씨는 ‘어떻게든 고쳐보자’는 생각에 10년간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아이에게만 매달렸다. 복지관에 가서 언어치료도 받고, 유명한 사설기관에 가서 심리치료도 했다.

그런데 복지관은 ‘대기자’가 너무 많았고, 사설기관은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아이만 괜찮아진다면 뭔들 못할까 싶었다. 그렇게 5년쯤 흘렀을까.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않다보니 서서히 경제적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고씨가 수완군을 시설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암투병을 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2년여 전의 일이다.

“불이 났어요. 새벽이었는데 수완이가 제 바지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갖고 놀다가 불을 낸거였죠. 집이 홀라당 탔고 죽기 일보 직전에 나왔어요”

그날 이후로 고씨는 담배를 끊었다. 점점 힘이 쎄지는 아들을 챙기려다보니 ‘체력’을 길려야만 하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체력을 길러도 자기의사 표현이 어려운데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을 챙기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가르치면 좀 나아지는 게 있어요. 반복적으로 활동하면 습관처럼 되는 게 있거든요. 주위에서 봤을 땐 ‘그게 그거’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천방지축이던 아이가 조금 차분해진 걸 보면 느낄 수 있어요. 부모 눈엔 조금의 차이도 엄청나게 커 보이거든요”

고씨는 수완군이 꾸준한 ‘연습’과 ‘훈련’을 한다면 ‘희망’이 보일 것도 같았다. 하지만 수완군의 발전 속도는 너무 더뎠고, 고씨의 생활은 점점 쪼들려갔다. 우여곡절 끝에 가게 하나를 차리게 됐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아들을 시설에 보내야만 했다. 그때 수완군의 나이가 14세였다.

“시설에 맡겼다고 해도 어떤 부모가 마음이 놓이겠어요. 그런데 언제까지 백수로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고 돈을 벌어야 애들을 키울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수완군보다 한 살 어린 딸애는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 고씨는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해도 착실하게 제 할 일을 하는 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 아이에게 그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오빠와 너는 관계없어. 모든 건 아빠가 책임질게. 아빠가 가기 전까지 오빠를 위해서 다 조치를 해둘테니 걱정마렴. 너한테 부담을 지우진 않을거야’

혹여나 아빠가 떠난 뒤 오빠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지도 모를 딸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는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부모로서 마지막으로 갈 때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내가 없어도 수완이가 한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을 지키면서 살아가게 하려면 무얼 해놓아야 할까’ 이런 걱정이 앞서요. 시설에서 평생 살 수 있는 돈을 벌어놓고 가야하나, 맞춤 일자리는 없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고씨는 아들을 평생 시설 안에서만 살게 하기는 싫다. 지역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그곳에서 남은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년에 수완군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당장 갈 곳이 없다. 자리가 없어 대기를 걸어놓고 몇 년씩 기다려야만 하는 시설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장애인직업재활센터’가 있다지만 이 또한 경증장애인 정도나 돼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중증의 경우엔 의사표현도 전혀 되지 않는데다 한 자리에 앉아서 꾸준히 일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은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 비해 중증 비율이 높거든요. 그러니까 성인이 되서 시설이라도 들어가지 못하면 대부분 방구석에서 일생을 보낼 수 밖에 없는거죠”

부모 이외에 장애인활동보조인이라도 있다면 바깥 활동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나마 있는 복지서비스들은 대부분 대상이 장애아동으로 국한돼 있다.

뿐만아니라 발달장애인은 자기의사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신체 장애인에 비해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는 늘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사지가 멀쩡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고씨는 단 한 번도 국가를 원망해본 적은 없다.

“사실 제가 아들이 발달장애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도, 배려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애를 배려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경우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물론 지원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한테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고씨는 아들의 장애를 이유로 ‘재정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싶진 않았다. 아쉬운대로 자신의 삶을 조금 포기하고서라도 좀 더 부지런하게 살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학령기 이후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터전을 구축해주는 일이다. 그것은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사회가 분명히 해야 하는 일이다. 국민이 나라에 세금을 내는 일만큼이나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부모가 정부에 의존하겠다는 게 아니예요. 최선을 다하는데도 도저히 우리 힘만으로는 안되니까 사회에서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평생교육 체계를 마련해달라는 거예요”

발달장애인은 내버려두면 기존에 향상돼 있던 상태도 유지하기가 어렵다. 꾸준하게 재활을 시키고 자극을 줘야만 그나마 습관화가 되고 인지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성인기부터는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또 다시 부모의 몫으로 돌릴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스무살이 얼마남지 않은 수완군은 곧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다. 대한민국의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 받는 것이다.

하지만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수완군이 이 땅에 발 붙일 곳은 시설과 집 안 뿐이다. <2부에 계속>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