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 2년
복원 약속한 도정, 어떤 노력 했을까?…‘문화’가치 키우겠다는데

▲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제주도민일보=김영하 기자] 2년 전 3월6일은 ‘제주 건축문화가 사망한 날’로 기억된다. 제주를 넘어 전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세계적인 건축가의 마지막 유작이 사라진 날로 기억하고 있다.

정확히 2년 전 그날 가건물이라기보다 예술작품이라고 칭송을 받던 건축물이 행정이 동원한 굴삭기의 이빨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1위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

하지만 2년이 지난 뒤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잊힌 채 역사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복원하겠다는 행정의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문화’의 가치도 키우겠다는 새로운 도정이 출범했지만 딱히 복원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가 없다.

▲ 굴삭기에 의해 파괴되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복원하겠다는 제주도정, 뭘 하고 있었나?

뭐가 문제일까? ‘행정의 연속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전임 도정의 수수방관을 현 도정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인가?

민선5기 우근민 도정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더 갤러리)가 가건물이면서 새로운 사업자가 인수하지 않아 철거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2013년 3월6일 오전 9시5분부터 중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철거 작업을 벌였다.

당시 제주도는 현재 더 갤러리를 완전 철거한 뒤 다른 곳에 이 건축물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장소는 현재 장소에서 가까운 곳 또는 저지 문화예술인마을 등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필요에 따라 사유지를 매입 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도 했다.

복원비용은 복원을 갈망하는 단체나 도민들의 성금을 모금해 추진하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도가 예산을 충당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복원 후에는 국내외 유명 예술인들이 일정기간 동안 무료로 작품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끝나는 시점에 본인의 작품 1점을 기증토록 해 유명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당시 이명도 문화관광스포츠국장은 “철거반대 범시민단체 및 일부단체에서 건축학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으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충분한 기한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전장소와 복원방안, 재원 등을 마련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을 복원하겠다는 도정은 어떠한 노력을 해 왔을까?

도는 철거 당시 건축 설계도면을 무상으로 기증받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소유주도 무상 기증의 의사를 밝혔다. 특히 확실하게 무상기증을 받아야 지적재산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설계도면 소유주는 제주도의 수차례에 걸친 의사타진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설계도면 원본을 무상 기증 받으려고 전화를 했으나 비서실에서 연락을 주겠다고만 했지 여전히 응답이 없다. 문서도 보내면 답장이 없다”며 “설계도면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면서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가 복원을 위해 노력을 하긴 하나 보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도가 그 동안 도면 소유자에게 보낸 공문은 모두 두 차례에 불과하다.

보낸 날짜를 보면 더욱 어이가 없다. 철거가 이뤄지기 한 달 전인 2013년 2월5일 처음으로 공문을 시행한 뒤 도정이 바뀌고 1년10개월이 지난 지난해 11월에야 두 번째 공문을 보냈다.

취재가 이뤄진 5일 오후 3시까지도 시행이 안 됐다가 ‘지금 보낼 것’이라는 답변을 얻었다. 그렇게 해 봐야 모두 세 차례다.

그러다면 전화는 몇 번이나 했을까?

전화통화는 철거 이후 8차례다. 딱 2년이 지났으니 3개월에 한 번한 꼴이다. 모두 10차례 공문과 전화통화를 시행하면서 무상기증에 노력(?)한 결과는 여전히 ‘무응답’이다.

▲ 철거되기 전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내부
설계도면 무상기증에만 연연…원희룡 지사는?

연락을 취하면서 응답을 들으려는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써 봤을까?

더 갤러리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앵커호텔(부영호텔)은 지금은 고인이 된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부영호텔이야 현재 (주)부영건설이 소유했지만 더 갤러리는 사라졌다. 복원 방법은 설계도면이 유일하다. 설계도면 역시 레고레타의 마지막 작품이다.

무상기증을 약속했지만 계약서가 없는 이상 설계도면 소유자가 마음만 먹으면 돈을 받고 팔아넘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는 유상으로 구매하는 방법은 아예 생각조차도 하지 않은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다.

제주도 관계자는 ‘유상으로 구매하려고 노력했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결국 ‘무상’에만 기대한 나머지 ‘보상’을 줄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공문의 내용은 ‘설계 도면의 무상 기증을 부탁하고 설계도면을 주면 잘 활용하겠다’는 내용이 전부다.

▲ 굴삭기에 외벽이 파괴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자연’ 다음에 ‘문화’의 가치를 거론하는 원희룡 지사는 어떨까?

지금까지 원희룡 지사가 더 갤러리에 대해 거론한 내용이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주도 관계자 역시 원 지사가 언급한 내용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다만 담당 국장은 더 갤러리에 대한 관심이 있어 복원과 관련한 업무를 지시한다고 했다.

“그날의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만 남아…”

2년 전 현장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더 갤러리에 부착된 포스터를 땐 이선화 도의원은 5일 언론 기고글을 통해 “그날의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만 남았다”고 밝혔다.

▲ 2013년 3월6일 철거 당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에 붙여져 있던 포스터를 때어내며 울먹이는 이선화 제주도의원.
그는 “당장 눈앞에 이익이 오는 자본의 탐욕과 문화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가 빚어진 발상이었다”며 “이는 오랫동안 부끄럽게 기억해야 할 문화파괴의 현장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세계적 건축가의 유작을 철거시켜놓고 그 대신에 무슨 이익을 얻었느냐”고 물은 뒤 “결국 우리는 제주의 물, 햇빛, 바람에 영감을 받아 제주자연에 아름다운 예술혼을 선물한 세계적 작가의 유작을 잃었다. 단지 문화 마인드부재의 행정과 문화관광의 미래를 보는 안목조차 없었다는 부끄러운 자괴감만 남았다”고 성토했다.

이 의원은 특히 “호텔소유주인 부영은 더 갤러리가 있던 자리에 주변 환경과도 어울릴 수 없는 작은 정자 한 채를 세웠다”며 “호텔건물은 당초 레고레타의 건축설계와는 전혀 다른 정체모를 번쩍이는 황금색 돔을 가진 건물로 변해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과 제주에서 열리는 시민문화제에 공감하며 참여했다”며 “아름다운 제주도이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보존해야 한다는 전국 문화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주는 더 갤러리와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게 큰 빚을 졌다”며 “그래서 더더욱 더 갤러리의 교훈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자연, 문화,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를 도정 운영의 철학으로 내세운 원희룡 지사. 과연 그는 허무하게 행정의 폭거 쏙에 무너진 더 갤러리를 복원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철거되기 전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외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는?

한편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위치해 있던 ‘더 갤러리’는 제주컨벤션센터 앵커호텔의 홍보관이자 모델하우스다. 2008년 8월28일 가설건축물로 지어졌다. 앵커호텔은 2007년 기공을 시작, 지난해 말 완공됐다.

앵커호텔과 더 갤러리는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설계했다. 그가 세상을 뜨기 전에 남긴 유작이다.

맥시코 출신의 레고레타는 전 세계 곳곳에 지역적인 요소와 보편적인 예술 감각을 섞어낸 건축물(작품)을 60여개 남겼다. 사람이 편해야 좋은 건물이라는 지론을 고집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을 지내는 한편 전미건축가협회 금메달, 국제건축가연맹(UIA)상을 받았다.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물의 집)으로 명명된 앵커호텔은 작가가 제주의 태양과 흙, 물을 꼼꼼히 살피고 연구한 건축 작품이다. 이국적인 색감과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제주의 자연에 속해 있는 듯 설계됐다. 해외 건축가들은 ‘이 집은 땅에 본래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런 뜻이 담긴 모델하우스 ‘더 갤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하우스’라 불릴 정도다.

▲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앵커호텔인 '카사 델 아구아' 조형물
작가가 타계하기 전 아시아에 남긴 2개의 작품 중에 내부공간까지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나머지는 일본에 있는 개인 주택이다. 때문에 건축학도나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이들 사이에선 견학 필수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물론 영화 ‘건축학객론’이 히트치면서 이 모델하우스는 더 빛이 났다.

당초 ‘더 갤러리’는 앵커호텔 첫 사업자인 제이아이디(JID)가 모델하우스가 아닌 VIP룸으로 쓰려고 했다. 그러나 JID는 사업이 늦어지자 가설건축물인 ‘더 갤러리’를 2009년 12월 1차로 사용기간 연장 신청을 했다. 이후 2010년 7월 2차 연장 신청했다.

그러나 JID가 자금난을 못 이기면서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자 2012년 6월30일까지 사용기간을 연장하려던 신청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불법 건축물이라는 딱지가 붙게 됐다. 내부 집기들도 압류딱지가 붙었다.

이 와중에 2012년 6월 (주)아시아신탁과 (주)부영주택이 콘도와 호텔을 인수했다. 그러나 ‘더 갤러리’ 건물은 인수대상에서 제외됐다. 여기서부터 ‘더 갤러리’는 위기에 직면했고 국내외의 많은 반대 여론 속에서도 끝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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