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가 지키지만 도난 모습 바라만 볼뿐 현장서 범인 못 잡아
청원경찰 1명이 40만㎡ 자생지 보안…야간과 퇴근 후엔 ‘무방비’

▲ 제주한란자생지 내에 꽃을 핀 한란
[제주도민일보=이석형 기자] 그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제주한란이 자생지에서 도난당했다. 그런데 그 도난 장면을 보고도 현장에서 붙잡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눈뜨고 코 베이는 격이다.

이런 이유로 자생지 관리와 보호대책이 허술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게다가 각종 보호철책이나 장비는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서귀포시 상효동에 있는 한란 자생지는 지난 2002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제432호로 지정한 곳이다. 면적인 40필지에 38만9879㎡다.

이 자생지에는 한란 약 1237개체 4341촉이 자라고 있다.

특히 한란은 국내에선 제주도에만 자생한다. 세계적으로도 중국·일본·대만에서만 볼 수 있다. 멸종위기 육상식물 1급이다.

희귀한 만큼 정부는 지난 1967년 7월 천연기념물 제191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제주도 밖으로 반출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게다가 전시회에 출품될 만한 한란 한 촉의 가치가 5000만원을 넘어 부르는 게 값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때문에 한란과 그 자생지에 대한 관리는 각별해야 한다. 특히 시내권과 인접해 있어 조금만 신경을 쓰면 관리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관리당국인 서귀포시의 관리는 그야말로 아주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귀포시는 과거에는 한란 자생지인 돈내코 일원에 순찰위주로 보호했다. 그러나 1998년 제주한란 생태계조사를 기점으로 올해까지 약 90억 원을 들여 22필지 토지 6만4648㎡를 매입해 보호책 3.4㎞과 CCTV를 설치했다.

자생지에 설치된 CCTV는 모두 16대. 한란이 자생하고 있는 곳에 집중 배치돼 있고 일부는 주 출입구 등에 배치돼 있다. 여기에서 촬영된 영상은 인접한 제주한란전시관 사무실에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철조망을 넘어 한란을 절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2일 오전 9시40분쯤 출입이 금지된 한란 자생지에 오모(52)씨가 무단 침입해 고이 자라고 있던 한란 19촉을 뿌리째 파 훔쳐 간 것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절취혐의다.

그런데 더욱 어이없는 것은 오씨가 한란 19촉을 훔쳐 가는 것을 보고도 현장에서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자생지 인근 제주한란전시관에 근무하던 직원이 CCTV를 모니터링하던 중 오씨의 범행 장면을 목격했다.

직원은 장면을 목격하면서 자치경찰에 신고했지만 현장에서 오씨를 붙잡지는 못했다. 다행히 자치경찰이 당시 촬영된 장면의 인상착의 등을 토대로 탐문을 벌인 결과 14일 만에 붙잡을 수 있었다.

문제는 CCTV 모니터링 전담 인력은 청원경찰 1명이라는 점이다.

당시 충분한 인력만 있었더라도 현장에 출동해 오씨를 붙잡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니터만 봐라보면서 불법 채취해 훔쳐가는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지난해 11월 제주한란전시관 개관 당시 개방된 자생지
더욱이 문제는 야간과 퇴근 후다.

야간에 CCTV에 촬영이 된다하더라도 흑백으로 촬영되고 화질도 좋지 못하기 때문에 얼굴 식별이 어렵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여기에 더해 퇴근 후에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모니터링은 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 야간에 촬영된 영상은 다음날 일일이 확인해야하거나 순찰을 나가서 한란이 없어진 뒤에야 CCTV를 확인 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도난당하고 난 뒤에서 범인을 잡아야 하니 CCTV나 철조망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서귀포시가 제주한란전시관과 자생지 보호에 투입하는 예산은 고작 9140만원. 원희룡 도지사가 내세운 '제주의 가치'를 살리기는커녕 심각한 위협에 노출됐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산중도 아닌 시내권에 인접한 한란 자생지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한란 자생지 관리와 보호를 위해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중”이라며 “계획에는 최근 벌어진 한란 절취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CCTV 추가 설치 등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