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경수 여사님을 기리며

그날 처음 만났고, 만나고 열흘 뒤 어이없게도 당신과 영원한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지난 15일, 우리는 지상에서 마지막 아름다운 나눔을 행하신 한 어머님을 떠나보냈습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올해 81세 김경수 어머님. 아무도 당신의 이름을 몰랐고, 아무도 당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 그런 오래된 스스로의 약속을 품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당신의 이름을 얼마 전에 우리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생의 말년에 당신은 이제 자식을 위한 삶은 그만해도 되겠다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평생 모은 쌈짓돈 1억원을 제주대학교 발전기금으로 선뜻 내놓으셨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마지막 소원이었고, 부탁이었고, 그것을 당당하게 실천하셨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훌훌 비우고 떠난다는 건 누구에게도 쉽지 않음을 압니다. 이 돈의 가치는 단순히 환산할 수 없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병상에서 겨우 움직여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학에서 만난 그 자리에서 한평생 거칠고 거친 흙밭을 일구던 당신의 마른 손을 잡았습니다.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오신, 그 숭고한 노동의 자취가 새겨진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저절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뭉클함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고, 당신 역시 아무 말씀도 못 하시고 그저 미소로만 답하셨습니다. 말씀이 없어도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이 당신 생의 마지막 외출이 되고 말았습니다.

피할 수 없었던 제주4·3으로 10대에 부모님을 잃어야 했고, 여동생과 의지하며 삶을 헤쳐나가야 했기에 하고 싶던 학업은 딴 세상 이야기였다했습니다.

가슴에 묻어야 했던 가족사의 아픔과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서러움은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속에 돌고 돌았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나마 생을 정리하며 조금이나마 가진 것을 어려운 젊은이들에게 내놓고 갈 수 있어 당신은 참으로 다행스러워 했습니다.

세상에 남겨놓고 떠나신 3남3녀 자식들 역시 제게는 아주 큰 감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의연하게 단호한 결정을 내리신 어머님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고 한없이 자랑스럽다”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그 어머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당신이 기부한 그 돈은 밭농사는 물론 비자 열매를 주워 팔기도 하고, 고사리를 꺾어서 판 돈이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몸이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일만 하며 한푼 두푼 모아둔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건 척박했던 시대, 한번도 송당마을을 떠나지 않고 견디며 살아낸 어머님의 삶이 녹아난 숨결이었습니다.

이 귀한 성금은 당신의 헌신을 기리며 해마다 어렵지만 미래를 열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위한 귀한 장학금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아직도 기부문화가 크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당신의 이번 나눔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하고, 다시한번 부끄럽게 합니다. 그러기에 당신이 행하신 이 단호한 비움은 우리 사회에 아주 오래 여운을 던지고도 남습니다.

이 혹한 속에 당신이 남기고 떠난 마지막 향기는 오래 오래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따뜻한 한 톨 나눔의 씨앗이 학생들에게 발아가 돼 그것이 다시 새로운 희망으로 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가 엎드려 고 김경수 여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추모글인 관계로 기고자의 사진을 게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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