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제주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필자는 육지 출신으로 2000년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와서 제주사회의 새 식구가 되었으니, 벌써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제주의 변덕스런 날씨가 부담스럽다는 것만 빼면, 필자의 제주생활은 대체로 ‘OK’다. 이제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해진 것이다.

하여, 육지 사람들을 만나면 제주 이야기를 하느라 입이 바쁘다. 그만큼 제주사회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은 ‘제주사회가 잘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기초가 튼튼해야 발전과 성공의 가능성이 큰 법인데, 제주사회의 기초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올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무리짓기, 결국은 발전 걸림돌

얼마 전 제주시내에서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려고 택시를 탔다가 우연히 택시기사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경상도 출신으로 거의 30년을 제주도민으로 살았고, 택시운전 일을 한 지도 십수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가끔은 육지 출신이라고 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는 기사의 말이 오래도록 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전에도 지인들로부터 제주사회의 ‘배타성’과 ‘끼리끼리 문화’에 대해 몇 번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배타성’과 ‘끼리끼리’ 무리 짓기는 타지로부터 들어온 육지 것들을 향한 것만이 아니었다. 필자가 속해있는 제주대학교는 총장 선거 때만 되면 ‘끼리끼리’ 무리 짓기로 홍역을 치른다. 먼저 제주도 출신과 그렇지 않은 교수로 구분된다. 다음은 제주대학교 출신과 아닌 자로 구분되고, 결정적으로는 제주의 특정 고등학교 출신별로 구분된다.

이러한 지연·학연 보다 더 탁월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혈연이다. 놀라운 것은 진보성향 교수도 혈연관계로 조금만 얽혀있으면 보수성향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후보자의 정책이나 행정 능력 따위는 당락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누가 ‘끼리끼리’ 무리 짓기에서 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가, 이것이 당락을 좌우한다. 후보도 유권자도 공공연하게 이것을 인정하고 심지어 즐기고 있다. 그것도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말이다. 이 패거리들 간의 배타와 싸움은 대학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기에 충분하다. 세상에 이런 대학이 제주도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자기성찰만이 건강한 발전 담보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제주도 지사 선거는 육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원래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였던 사람들이 각각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그 두 사람 모두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를 제치고 압도적 지지율로 1위를 다투었다. 그것이 65%라는 전국 최고의 투표율로 이어졌고,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게 하였다.

1위를 다툰 두 후보의 ‘끼리끼리’ 무리 짓기 능력이 엇비슷했던 것이고, 이런 조건에서는 아무리 정책능력이 우수하고 유력한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라 해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공무원은 물론이고, 전직 대학총장들까지 이 추한 무리 짓기의 대열에 나섰으니, 보통의 제주도민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래서는 제주사회가 제대로 발전하기 어렵다. 지연, 학연, 혈연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없는 제주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보장해줄 민주주의는 ‘배타성’과 ‘끼리끼리’를 넘어서려는 도민사회의 치열한 자기성찰 속에서만 자라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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