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철학적 깊이도, 높은 수위의 사색도,
날카로운 현실 인식도 없는....이작가의 이름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 '1Q84' 세 번째 시리즈. 지난 5월 일본에서 출간된 뒤 2달만에 200만부를 돌파한 이 작품은 국내의 판권계약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문학동네를 비롯해 민음사, 문학사상사, 열린책들 등 10여개 출판사가 뛰어들어 경쟁을 벌였다.문학동네가 경쟁에서 승리했고 국내 출간이 이뤄졌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도록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며 ‘역시 하루키’란 찬사를 받고 있다. 하루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이미 집착으로 비춰질 정도다. 마니아들은 하루키가 좋아하는 음식,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를 별도로 공유하며 따라하고 즐긴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이 덩달아 히트를 치고, 몇 년전에는 하루키의 내뱉은 ‘고독함’에 심취한 여중생 2명이 목숨을 끊는 뒤틀린 반응마저 낳기도 했다. 하루키가 그저 인기작가 아닌 시대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왜 하루키에 열광하는 가

현대인들은 고독하다.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기계처럼 일하며 낯선 군중들과 뒤섞여 결국 자신은 혼자라는 비애를 안고 산다. 고독과 맞닥뜨리는 것이 두렵고 자신의 고독을 대변해 줄 그 무언가를 지금 이순간에도 끊임없이 찾고 있을 것이다.

하루키는 인간의 고독과 공허함을 한단계 수면위로 끌어올린 작가로 평가받는다.
하루키의 작품 전반에는 고독과 공허함이 스며있다. 아니, 그의 주제의식이다. 작중 인물들 대부분은 수동적 삶을 살아가고 고립된 영혼들.

그렇지만 등장인물들은 고독함에 절망하거나 문득 찾아올 공허함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순응적이고 자연스레 고독을 받아들인다.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도리어 고독 앞에서 ‘능동적’이다. 돈이나 명예·출세 등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은채 개인의 삶을 ‘등신대’로 살아간다.

거기에 평이하고, 리드미컬하면서도 센스 있는 문장으로 결합된 하루키식 수사법이 더해져 인간의 고독이 맛깔스럽게 책속에 펼쳐진다.

“외톨이로 지낸다는 건 비 내리는 저녁에 커다란 강 입구에 서서 많은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와 같은 기분이야”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중략> 나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걷던 길을 걷고, 창고의 돌계단에 걸터앉아서 홀로 바다를 바라본다. 울고 싶을 때는 으레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다 그런 법이다”


1999년 발표된 하루키의 장편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한 대목과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비 내리는 저녁에 커다란 강 입구에 서서 많은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 

이 문장을 읽고난 후 눈물을 흘리거나 ‘고독은 정말이지 절망적이야’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가슴 한쪽이 알싸해짐과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찾아온다.
죽느냐와 사느냐와 같은 고답적 성찰과 직면해야 하는 고독보다는 아름답고 쿨하게 그려진 고독에 현대인들은 감정을 쉽게 이입시킨다. 

인간의 고독을 그 이전부터 얘기해온 마르셀 프루스트.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두 작가는 종종 비교대상이 된다. 그러나 현대인들을 아무래도 하루키의 손을 들어준다. 비슷한 주제는 이왕이면 지루하지 않고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이점이 하루키를 연호하는 이유다.

# 하루키 비판

책 판매량과 노벨 문학상과의 상관관계는 딱히 없다. 하루에만 2000만권이 팔렸던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이라곤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노벨 문학상은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가 담보돼야 한다. 하루키도 책을 출간할 때마다 매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지만 아직까지는 노벨 문학상과는 거리가 있는 작가로 분류된다.

평단과 독자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소설가 김연수씨는 “이전에 세계의 명작소설이라고 하면 역사와 사회 속에서의 개인을 다룬 게 대부분이었던 반면 무라카미 문학은 역사나 사회·집단보다는 좀 더 개인화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 특히 세계의 젊은 독자들과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그의 이런 장점은 ‘칼날’이 돼 자신을 향한다. 하루키의 지나친 개인화는 비평가들의 입에 쉬이 오르내리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태도를 ‘일본적(문학적) 스노비즘(snobbism : 속물근성)’이라고 부르는 건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본질적인 갈등이나 대립, 대결은 배제된 채, ‘공허한 형식적 게임’으로서의 이야기 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와무라 미나토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中>

사회를 배제한 그의 문학은 일부 평단에 의해 종종 표현에만 치중한 ‘가벼운 책’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는 어찌보면 문학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자 문학이 가지는 사회와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하루키의 소설이 문학의 경계 밖으로 내밀리지도, 안으로 끌어당겨지지도 않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위대한 작가는 위대한 스승이다”라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해답을 찾는 일도 문학의 임무다.

하루키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이제 나이 60을 바라보는 하루키가 해결해야 난제다.
마니아와 독설가가 공존하는 하루키의 세계.

그럼에도 현대인들을 하루키를 찾을 것이다. 그것은 대략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며 하루키를 부정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니까. 

내가 뽑은 하루키

1. 나이를 먹는 것 자체는 그다지 겁나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어떤 한 시기에 달성되어야만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채 그시기가 지나가버리고 마는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나는 정말 알알하게 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있다. <'먼 북소리' 中>

 2. 모든 복잡한 문제들은 도너츠의 구멍과 도너츠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냐 아니면 존재로 받아들이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도너츠의 구멍 때문에 도너츠의 맛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중>

 3. 나에게 있어서 문장을 쓰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한 달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한 적이 있는가 하면, 사흘 밤낮을 계속 썼지만 그 결과가 모두 잘못되었다고 느낀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쓰는 것은 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비해 거기에 의미를 덧붙이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일본 교토 효고현 출생. 혈액형 A형. 중학교 때까지 러시아 문학과 재즈에 탐닉했고 고교 때는 영어로 된 미국 소설을 탐독했다. 196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 일본 내의 학생운동인 전공투 체험. 학생 신분으로 결혼하고 재즈 카페 ‘피터켓츠’를 코쿠분지에 연다.1975년에야 7년 동안 제적당한 상태로 있던 대학을 졸업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을 하고서 ‘1973년의 핀볼’을 펴낸 다음 카페를 정리하고 전업작가가 된다. 1980년대 후반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에서 생활하고 1992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연구원으로 미국에 체류했다.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群像) 신인문학상 수상. 1982년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노마문예신인상 수상. 1985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타니쟈키 준이치로상 수상.

<제주도민일보 이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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