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예쁜 조개가 떠올랐다. 하얀 포말이 훑고 간 자리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밀던 알록달록 예쁜 조개껍데기. 올해 초부터 제주에서 생활하게 된 내가 모슬포를 찾은 건 반 년이 다 되어서다.

곧게 잘 뻗은 평화로를 차로 달려 산방산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드넓은 바다와 송악산, 그리고 모슬봉까지 펼쳐진 경치는 마치 유명한 작가가 그려 놓은 그림을 보는 듯 그저 아름답고 평온하기만 할 뿐, 역사의 격동기에서 수많은 고난과 아픔을 견뎌낸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모슬봉 앞을 지나자 도로 양쪽으로 두 개의 탑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6․25 사변 때 신병들을 훈련시켜 전장에 투입하던 육군 제1훈련소 정문이라고 했다. 1951년에 창설되어 5년여 간 약 50만 명의 강한 병사들을 키워 내던 ‘강병대(强兵臺)’, 그 당시에는 ‘모슬포훈련소’로 통했던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때 모슬포의 인구가 현재보다 5배 이상 많은 10만 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량이야 말 할 것도 없고 식수도 넉넉지 않았을 그 시절,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몰려든 지원병과 전쟁을 피해 들어온 피난민, 그리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했던 모슬포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얼마 가지 않은 작은 언덕 위에는 그 시절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강병대교회’가 있었다. 아마 이 곳에서 많은 병사들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빨리 전쟁이 끝나 모두가 무사 안녕하기 만을 빌었을 것이다.

송악산으로 가는 길목, 넓은 들판 곳곳에 세워진, 족히 스무 개가 될 것 같은 소형 격납고를 보는 순간 이 곳이 일제시대에 지어진 ‘알뜨르 비행장’이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말끔히 정리된 밭 한가운데 잡초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어색했지만 첫 눈에 비행기가 드나들던 곳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바다와 직접 마주한 송악산 절벽 아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사람들을 동원해 파놓았다는 인공 동굴 여러 개가 보였다. 이처럼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강제노역에 동원됐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여기저기 훼손된 자연경관들을 보고 있자니 나라 잃은 설움에 몸서리 쳐야했던 그 시간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송악산 정상에 올라 본 경치가 복잡했던 나의 생각들을 한 번에 싹 날려 버렸다. 위로는 한라산의 줄기를 내려 받은 산방산이 우뚝 솟아 있고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바다가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를 품어 안은 이 곳.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뿌듯함에 몸서리가 쳐 질 정도였다.

이 아름다운 모슬포가 과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견뎌내야만 했던 그 날의 아픈 사연들을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이 우리들에게 전해 주려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잊지 말라는 것처럼.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말 못할 역사적 아픔을 함께 간직한 모슬포! 다시는 모슬포처럼 아름다운 우리 영토가 역사의 소용돌이에 내몰려 훼손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튼튼한 안보의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최은순 제주지방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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