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근식의 '유기농 언담' - 4

▲ 문근식 e제주영농조합법인 대표

영화 ‘명량’이 관람객 1600만 명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연일 신기록을 깨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감독의 연출력만 뛰어나서 그런 것일까?

아마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입장과 너무나 닮은꼴들이 많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건 아닐까?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한다. 소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했다. 선조는 자기만 살겠다고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을 가서는 정권을 뺏길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수군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연전연승하며 왜군들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또 의병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왜군들은 결국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알고 후퇴했다. 지금까지가 임진왜란이다.

그 후 휴전을 하고 또 다시 3년 만에 왜군들이 침략한다. 이게 바로 정유재란이다.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두려워해 온갖 핑계를 삼아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했다. 그리고 그의 3도수군사 자리에 원균을 보냈다.

하지만 원균은 패하자 선조는 다시 이순신 장군을 원상복귀 시켰다. 하지만 그땐 이미 12척의 배만 남아 있었고 330척의 왜군들과 싸워야 했다.

선조는 수군을 버리고 권율 장군과 합치라고 했다. 하지만 이순신장군은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이다”며 조선을 지킬 전략을 세운다.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명언을 남긴다.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았고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넓은 공간보다는 협소한 길목을 결전의 장소로 택했다. 참모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은 출정을 결정하고 선봉에서 홀로 외로이 적들과 맞서 싸웠다.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며 부하들을 다독거렸다.

소용돌이가 치는 명량해역을 주 무대로 삼고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서 왜군을 맞서 싸웠다.

처음엔 관망만 하던 참모진들도 가능성이 엿보였는지 나중엔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모두가 서로 힘을 합친 결과 승리하게 된다.

리더의 외로움 그리고 결단력과 실천력.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영화 ‘300’이 순간 교차된다. 영화 ‘300’에서도 어마어마한 페르시아 대군을 동등한 위치에서 맞서 싸우는 스파르타왕의 지략도 역시 협곡이었다.

한중FTA와 TPP를 대비하는 농업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만의 협곡을 찾아야 한다.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위치를 먼저 선점해야한다. 그 위치에서 우리만의 강점을 키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모두가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숫자·통계·하드웨어 등. 하지만 어떤 신념을 가지고 접근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정부는 ‘쌀시장 전면개방’이라며 농업을 버렸다.

쌀은 농업의 상징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식이다. 농업의 상징을 버렸는데 다른 농산물들은 오죽 하겠는가.

지금 처한 농업의 입장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 배 12척만을 가지고 330척의 왜군과 싸우는 형상이 아니겠는가?

농민 모두가 이순신 장군이 될 순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농민들이 처한 입장을 일반 국민들이 알아주고, 격려해주며, 토닥거려준다면 희망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농민들 스스로도 외국 농산물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하나씩 완성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금 가슴에 새겨본다.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았고,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 문근식 e제주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는…

현재 한국농업경영인 제주시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감귤, 키위, 한라봉, 레몬 등 직접 재배한 친환경농산물과 그 농산물로 만든 가공식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직접 농사를 짓는 농사꾼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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