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실형에 안심하다 ‘청천벽력’…피해자 보호 조치도 없는 상황 ‘보복 우려’

비대위 “어렵게 드러난 사건 ‘공소시효’ 때문에 묻혀…무조건 상고해야”

제주시내 모 아파트 내에서 지적장애여성을 돌아가며 성폭행한 남성 3명이 20일 항소심에서 ‘공소시효 만료’로 풀려났다. 죄는 명백하지만 시효가 만료돼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석방 소식을 전해 들은 제주지역 장애인 성폭력피해 지원 비상대책위원회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재판부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광주고등법원 제주형사부(재판장 김창보 제주법원장)는 20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폭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고모(39)씨와 이모(39)씨, 김모(39)씨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면소 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지난 2002년 4월 제주시내 한 아파트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아파트 놀이터에 있던 지적장애여성 A(당시 23세)씨를 집으로 데려가 번갈아 성폭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공소시효. 공소시효 10년이 지난 만큼 법적 처벌 가능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11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장애인에 대한 강간죄는 공소시효를 폐지한다고 개정할 당시 경과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단순 누락”이라며 “입법 취지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광주고법 제주부는 “2011년 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적용해야 한다는 경과규정이 마련된 것은 2012년”이라고 강조하며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에 따라 개정 이전의 형사소송법을 따라야 한다”면서 원심 판결과 의견을 달리했다.

즉 해당 사건은 경과규정 마련 이전에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에 법 적용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고씨 등 3명은 1심에서 받은 징역 10년, 8년, 7년형을 뒤집고 오늘 부로 석방조치됐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상담을 맡았던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김경미 소장은 “10년만에 어렵게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 공소시효 만료라는 이유로 이렇게 묻혀버려선 안 된다”며 “검찰은 반드시 상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소장은 이어 “사각지대에 있는 중증장애여성들은 표현력의 부재로 인해 (성폭행 등을 당해도) 늦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선례가 남아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불어 “피해자는 여전히 트라우마가 있는데다가 예전에 살던 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며 “1심 판결만 믿고 마음을 놓고 있다가 느닷없이 석방이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해코지’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도 없이 가해자를 무작정 석방시킨 데에 대한 우려다.

면소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석방을 한다고 해도 처벌이 불가한 것일 뿐 죄는 명백하다”며 “사회에 나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과연 재판장의 ‘당부’만으로 피해자가 안심하고 동네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김 소장은 “절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긴급 비상대책위 회의를 열고, 공익적 처벌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무려 10여 년간 제주시내 모 아파트에서 자행된 ‘장애인 여성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 남성은 이들 3명을 포함해 7명에 달한다. 이번에 석방된 3명을 제외한 4명 중 이모(58)씨와 고모(39)씨는 각각 징역 4년과 3년 6월을 선고 받고 수감된 상태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추모(66)씨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 박모(53)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28일 오전 10시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린다.

전직 입주자대표인 박씨는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상습적으로 지적장애여성을 간음하고 피해여성의 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9월12일 구속기소 됐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다른 혐의들이 병합되면서 판결이 더뎌진 것으로 확인됐다. /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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