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일승 제주도민일보 발행인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 아는 만큼 보인다는 뜻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인용되면서 유명해진 이 문구는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의 글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知則爲眞愛·지즉위진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愛則爲眞看·애즉위진간)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과는 다르다. (看則畜之而非徒畜也·간즉축지이비도축야)

7월1일 원희룡 제주도정이 출범했다. 하지만 출범 보름도 되지 않아 6·4 지방선거에서의 민의(民意)에 기댄 원희룡 도정에 대한 기대감은 너무도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에 대한 인사와 더불어 협치정책실이라는 조직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위태롭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러한 문제의 시작은 돌이켜보면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제주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중앙정치의 논리로 제주도지사에 오른 과정도 그 하나일 것이다.

제주도에 대해 원희룡 도정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준비해 왔는가를 돌아보면 그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중앙정치무대와는 다르게 제주도는 ‘실명(實名)사회’라고 할 수 있다. 좁은 지역사회라는 공간의 특수성으로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 것이 공개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앙의 언론과는 달리 제주의 언론은 사건·사고는 물론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원희룡 도정의 수장은 이런 제주도의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갖고서 제주도의 미래를 열어가고자 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원희룡 도지사는 당선자 시절인 지난달 9일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협치를 통해 ‘제주당’을 이끌어 나가자”고 했다. 또 “제주호 자동차가 잘 가기 위해서는 ‘엑셀’과 ‘브레이크’가 중요하다”며 “민심이라는 낭떠러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브레이크가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브레이크야 밟으면 서고 엑셀이야 밟으면 나아가게 된다. 또 차량이 출시될 때는 차량의 제원을 공개하고 시운전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급발진과 같은 사고를 최대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제주시장이라는 차량이 이제 막 출시된 상황에서부터 ‘급발진사고급(?)’의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고 있다.

행정시장을 공개모집 했으면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하는 절차부터 한 점의 의혹도 생기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그래야 그 차량을 안심하고 도민들이 탑승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과정들은 모두 생략된 채 출시된 형국이 아닌가.

또 다른 우려도 있다. ‘제주당’·‘제주호’를 만들겠다는 의욕이 자칫 ‘세월호’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위기감마저도 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협치정책실’을 증축해 선박의 무게 중심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게다가 선장은 어느 바다에 암초가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 명의 항해사는 좌표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은 또한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인적구조의 문제와 더불어 시민·사회단체 역시 제자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희룡 도정 출범의 시기에 기이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비대해진 조직과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도지사, 그리고 문제를 지적하거나 개선하지 않는 측근들, 게다가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하지 않는 제주사회 일원들.

결국 그 자리에 충실하지 않을 때 일어난 ‘세월호’를 연상케 한다. 기울어져가는 배는 구조의 손길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것.

가장 불행한 참극은 선장이 제주도민이 탄 배를 버리고 훌쩍 중앙정치무대로 복귀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 도정은 도정 초기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행정을 장악하고 제주도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더해 조급하게 인사와 조직을 개편하고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중앙정치무대의 시선을 의식해 단기적인 성과를 내고 중앙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하고픈 정치적인 야심이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행정이 하루아침에 개벽을 하고 신제품 출시하듯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대 도정 초기에 2014년 7월과 같이 쓴 소리를 많이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많은 기대감을 가지면서 협력하는 미덕도 있었다. 언론도 속칭 ‘허니문’이라는 기간 동안 도정이 첫 출발에 힘을 실어줬다. 성공한 도정이 되기를 기원하는 바람에서다.

하지만 원희룡 도정 초기의 상황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협치’라는 이름으로 모든 세력을 모으겠다고 했지만, 모든 세력에게 배척될 수도 있다는 이면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 아는 만큼 보이고 애정을 갖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을 수 있다는 점을 원희룡 도지사는 기억해야 한다. / 제주도민일보 발행·편집인 성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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