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근식의 '유기농 언담' - 2

▲ 문근식 e제주영농조합법인 대표

요즘 제주는 장마철이다. 또 태풍이 올라온단다. 태풍 이름이 '너구리'다.
참 재미있고 귀여운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도 태풍의 진로가 일본으로 방향을 틀지도 모른다는 예보에 조금은 안심이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두들 태풍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특히 비닐하우스 농가들은 비닐의 밴드 끈을 더욱 팽팽하게 졸라 묶어 비닐이 날리지 않도록 하고 하우스 버팀줄도 정비하는 등 분주하다.

밭농사하시는 분들은 미리 배수로를 정비하기도 하고 비바람에 젖을지 모르는 비료며 퇴비들도 비닐로 단단히 덮는다.

거센 바람에 날아갈지 모르는 갖가지 농업용 자재들도 창고 안으로 집어놓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우리 농장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밖에 놓여있던 감귤컨테이너며 뭔가를 지어보려고 모아뒀던 조립식 판넬들도 단단히 묶어 놨다. 화분도 건물 안으로 집어놓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이 농업뿐 만이겠는가?

건설현장에서는 무거운 구조물에 단단히 묶거나 휀스를 보강하고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출입문을 단단히 고정시킨다. 가정에서는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고 헐거워진 방충망은 미리 떼어놓는 등 준비를 한다.

또 정전에 대비해 발전기를 점검하는 곳들도 있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난 후 맞이하는 태풍도 막상 다가오면 뭔가를 빠뜨린 부분이 있기에 후회도 한다.
태풍이기에 이렇듯 준비를 한다.

그나마 태풍이라도 있기에 평소에 느슨한 생각과 행동을 하다가도 경각심이 나는 것 같다.

만일 큰 태풍이 지나가지 않는 육지부의 농부들은 어떨까?

그들은 태풍보다는 폭우와 폭설에 대비를 한다. 강이 넘치고, 우박으로 농작물들이 갈가리 찢기고,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사는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다.

누구를 더 부러워하거나 자만해서도 안 된다. 이런 것이 세상사다.

어머니는 나에게 항상 준비하라고 하신다.

이듬해 파종할 씨앗도 준비하라 하시고, 미리미리 퇴비도 만들라고 하시고, 이번 태풍이 지나면 바로 뿌릴 농약도 미리 사다 놓으라 하신다.

미리 준비를 하라고 하실 때는 예측가능 하기에 때문이다.

자연은 어느 정도 변수는 있겠지만 예측가능하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걱정도 있지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봄이 오면 새싹이 피고, 여름엔 푸르름을 간직하다 가을엔 풍성한 결실을 맺고, 겨울엔 잠을 잔다. 봄에서 겨울로 거꾸로 가지는 않는다.

올해에도 그랬듯이 겨울이 지나 봄이 왔고 이젠 여름의 문턱에 있다. 그러하기에 태풍이 온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아주 어렵거나 힘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게으름으로 무장돼 대충하거나 내일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항상 놓치는 일이 발생해 곤란한 경우를 겪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약 보름 전 어머니가 심어놓은 콩들이 이젠 제법 자랐다. 이맘때쯤이면 이정도 자랄 것을 알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콩들이 저절로 자란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는 콩 검질을 매면서 중간 중간 솎아도 주고, 비료도 줬다. 그래서 어머니가 키운 콩들은 매해 튼실하다.

미리미리 튼실한 씨앗도 준비도 하고, 콩을 파종하기 전에 미리미리 밑거름도 줬기에 가능하다. 앞으로 콩을 수확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할 것이다. 그래야만 땀을 흘린 보람을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거동이 좀 불편하시지만 오늘도 어머니는 아침부터 몸소 콩 검질(잡초)을 매신다. 나한테 보여주시고픈 것은 부지런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라는, 그것이 어머니의 뜻이다.

▶ 문근식 e제주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는…

현재 한국농업경영인 제주시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감귤, 키위, 한라봉, 레몬 등 직접 재배한 친환경농산물과 그 농산물로 만든 가공식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직접 농사를 짓는 농사꾼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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