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선거에서 도민 선택받아…남다른 인생사에서 생긴 ‘교육철학’

제주에서 사상 첫 진보교육감이 탄생했다. 앞으로 4년간 제주교육의 변화와 개혁, 그리고 제주 미래세대의 길을 이끌어갈 제주교육의 수장으로 이석문(55) 후보가 확정된 것이다.

이석문 후보는 6·4지방선거에서 제주도민의 선택을 받아 제주도교육감으로 당선됐다. 사상 첫 일선 교사 출신이 제주교육의 수장이 됐다. 특히 전교조 출신이 제주교육의 지도자가 된 것은 제주교육계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과연 첫 일선교사 출신인, 전교조 출신인 이석문은 어떤 교육자이기게 도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일까?

책 읽기 좋아했던 유년시절…순탄치 않은 가족사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당선자는 제주시 용담동에서 나고 자란 ‘용담토박이’다. 이석문 당선자의 현재 주소는 도남동이지만 인생 대부분은 용담동에 스며들어있다. 유년과 학창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신혼살림도 용담에서 시작했다.

이 당선자는 공부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한 그는 삼국지를 너무 좋아하다보니 공부에 소홀할 것을 걱정한 어머니가 삼국지를 모두 태운 일화도 있다. 독서를 향한 열의가 남달랐던 것이다.

그는 4남3녀의 둘째 아들이다. 하지만 그는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도맡아 했다.

장애를 갖고 있던 여동생은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또 이 당선자가 20대 때에는 큰 형과 남동생을 잃는 아픔도 있다.

특히 여동생과의 사별은 이 당선자가 장애와 특수교육에 큰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교육감이 된 이후 추진할 특수·장애교육의 정책방향도 명확히 세워진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들의 상실은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부모와 남은 동생을 모두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동생들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잔정이 많다. 하지만 가족 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원칙에 따라 단호하고 확고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편치 않은 형편임에도 동생들을 아무런 탈 없이 키운 배경에는 이 당선자가 가족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집안에서 큰 어른 역할을 했기 때문인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실제로 주위에서 이 당선자를 향해 ‘딱딱하다’, ‘강하다’라는 평가를 내린다. 가슴 깊은 곳에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감성이 많지만 고단했던 삶 탓에 이를 그대로 표현하는 ‘기술’이 모자라 생긴 오해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지은들은 그의 인간적 매력과 리더로서 진면목을 충분히 발견한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전교조 제주지부장…교육철학 수립

이 당선자는 제주서초와 제주제일중, 오현고를 나온 뒤 제주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소개팅으로 만난 현재 초등 교사인 송여옥 여사와 7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이후 1985년 여수 여천중을 시작으로 교단에 본격 발을 들여놓은 이 당선자.

하지만 그는 오현고 재직 시절인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면서 인생의 큰 격랑에 부딪힌다. 해직 후 아내와 두 명의 아들을 책임지기 위해 학원 강사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교단에서 떠나게 했던 전교조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전교조 활동을 통해 제주교육이 풀어야 할 시급한 현안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이때부터 미래 제주교육의 비전을 본격 수립하기 시작한다.

전교조 활동이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1994년 세화중 교사로 다시 복직한 이 당선자는 2000년 전교조 제주지부장에 선출된다. 이후 전교조 지부장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제주도교육청과 단체교섭을 진행해 학교환경을 개선하기 시작한다.

마침 터진 각종 교육 비리는 이 당선자가 제주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지난 2004년 1월 김태혁 전 교육감의 인사비리 파문에 따른 불명예 퇴임, 제11대 교육감 선거의 오남두 당선자와 다른 후보들 간 돈거래 불법선거에 의한 구속 사태는 제주 교육계 사상 유례 없는 초유의 사태였다. 당시 전교조 지부장인 이 당선자는 제주교육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교육청과 적극 맞섰다.

이 당선자는 이 외에도 당시 적지 않은 일을 해냈다. 지난 2004년 제정된 ‘제주도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사용에 관한 지원 조례’ 제정 운동을 벌였다. 당시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제주연대’ 상임대표로서 주민발의에도 나선 것이다. ‘친환경 급식 전도사’로 본격 이름을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다. 이는 이 당선자가 교육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의원들과 발의·제정한 ‘친환경무상급식 조례’의 시초가 됐다.

이후 2012년에는 ‘제주도친환경우리농산물 학교급식사용에 관한 지원 조례’와 ‘제주도 무상학교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2010년 10월 제정)를 하나로 통합한 ‘제주도 친환경우리농산물·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동료의원들과 발의·제정했다.

이와 함께 어린이날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였던 제주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를 전교조 지부장 시절 기획·운영했다. 또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이 당선자는 특히 제주4·3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진상규명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제주4·3연구소 창립멤버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제주4·3유족회 제주시 중부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제주4·3의 전국화에 공헌했다.

제주 최초 ‘진보교육의원’으로 이름을 새기다

평교사와 전교조 지부장 등을 겪으며 제주교육의 변화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이 당선자는 2010년 제주도의회 교육의원 선거에 나선다.

출마부터가 화제였다. 교육의원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진보계열의 교육자가 후보로 나선 것이다. 교장 및 관료 출신의 교육의원이 즐비했던 제주교육계의 현실에서 과연 평교사 출신에 진보계열 교육자가 당선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그는 당선에 성공했고 당당히 제주도의회 교육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당선자는 교육의원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조례제정 실적을 남겼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관리 조례안’, ‘제주특별자치도 농어촌지역 학교 초·중·고생 교통비 지원 조례 전부개정조례안’, ‘제주특별자치도 학생의 정신건강증진에 관한 조례안’ ‘제주특별자치도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한 지원에 관한 조례안’, ‘다자녀 학생 교육비 지원에 관한 조례안’ ‘4.3평화교육 활성화 조례’ 등이 그의 흔적이다.

주로 사회적 약자와 교육에서 소외당할 수 있는 영역에 지원을 확대하는 조례를 주로 제정했다. 또 학생들의 건강을 챙기고 수업 본연의 활동을 확립하기 위한 조례도 만들었다.

게다가 교육청의 작은 학교 통폐합 조치에 맞서 각 읍면지역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통폐합을 막아냈다. 평생 과제로 생각하는 고입제도 개선 또한 학부모 등과 간담회를 통해 해법을 만들어갔다.

교육현장 안팎에서 교육자로서의 외길만 걸어왔던 이석문. 이제 자신의 제주교육철학을 앞으로 4년간에 걸쳐 펼칠 때가 됐다.

그는 지난 1월 출마 이유에 대해 아이들이 행복한 ‘따뜻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미래의 희망’이라고 믿고 있다. 그 ‘미래의 희망’, 한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고 같이 가려는 그 ‘미래의 희망’의 완성을 보기 위해 제주도민들이 그를 선택했다. / 제주도민일보 김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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