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후보 배우자 열전] 신구범 후보 아내 김시자 여사
“첫 민선도지사로 받았던 사랑…보답하는 마음으로 현장 뛴다”
연신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그에게 연유를 물었다. 터놓고 말해 지지율도, 판세도 그렇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이 그리 감사하단 말인가?
“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 몰랐어요. 마음속에 진심으로 제주도민께 ‘고맙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사연이 있어요. 먼저 초대 민선도지사 당선 당시 저는 나이도 어리고 정치도 몰랐어요. 도민들의 엄청난 응원과 지지가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인지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때 그 고마우신 분들께 ‘고맙습니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또 한 가지는 남편이 교도소에 갔을 당시 7만4515명이 무죄석방 서명운동을 해주신 일이에요. 그때 하루하루 서명용지가 도착하는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뼈저리게 고마웠지요”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도지사 후보가 된 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그 말만 할 수 있어도 이 자리(인터뷰)가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슴이 저려요. 그래서 남들이 ‘여론조사 차이가 많이 난다, 해보나 마나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도 저는 달라요. 남편이 가진 좋은 정책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니까요. 도지사로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고마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김 여사와 신구범 후보의 만남은 신 후보의 육사 재학 시절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그는 십대에 처음 본 신 후보가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이 저를 굉장히 좋아해 오현단 꼭대기에서 매일 기다렸어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나중엔 그 집착이 ‘진실’로 다가왔지요. 진실함을 느낀 뒤로 신뢰가 갔어요. 무엇보다 친정어머님이 ‘다리 아래 놓아도 널 굶기지는 않을 사람’이라고 인정하셨어요”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대학에 가서 다시 재회하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4년8개월의 로마생활 동안 마더 테레사 수녀님을 뵐 기회가 있었어요. 수녀님이 제 이름도 지어주셨지요. 로마에서 수녀님 강론도 듣고 점심도 함께 먹는 엄청난 영광을 누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은총을 받았나 싶어요”
그는 최근까지 제주대 행정학과에서 사회복지 분야와 관련한 강의를 했다.
“요즘은 또 대학 강단에 설 수 있음이 감사해요. 대학 강단에 올라가면 떨리는 마음이 들어요. 어떻게 내게 이런 기회가 올 수 있나 싶어서요.”
김 여사는 남편인 신 후보에 대해 묻자 ‘정직함’ 이라는 단어를 우선 내세웠다.“평생 그 사람을 봐오며 느낀 것은 무엇보다 정직한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남편이 교도소에 가며 느낀 고난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지나고 나니 다 복이 오더라고요. 사람들을 헤아릴 줄 알게 됐다고 봐요. 한 예로 우근민 제주도지사와 화해한 것도 그렇지요”
그는 신 후보가 교도소에 다녀왔다는 표현 대신 ‘우리가 감옥에 다녀왔다’고 말한다. 남편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묻어나는 말이다.
“나이를 먹은 만큼 제주사회를 다 안고 가고 싶어요. 그것만큼은 젊은 사람보다 자신 있어요. 우리는 감옥을 다녀왔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절실함을 느껴요. 어찌됐든 우리는 제주도 땅에서 살다가 제주에 묻힐 것이니까요”
그가 제주사회에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신 후보의 출마 때문이다. 하지만 신 후보가 출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있었다.
신 후보는 유세 때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단상에 오른다. 신 후보는 그때마다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한다. 신 후보의 아들 신용인 제주대로스쿨 교수(변호사) 등 아들들이 반대하자 김 여사가 ‘아버지가 하고 싶은 데로 하시게 해드려라’라며 아들을 설득한 것이다.
뚝심 있고 젊은 혈기 못지않게 체력을 과시하는 신 후보 곁에는 부드러움 속 강인함을 지닌 김 여사가 늘 함께해왔다. 그는 지금 선거라는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민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 제주도민일보 이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