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한다는 것! 참으로 대단한 축복이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주어진 한번뿐인 인생을 여러 번에 걸쳐 다른 나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현실에서 내가 가진 단점을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다른 이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단점들이 존재 하지 않는 이 인물이 진정한 내가 아닐까 하며 자찬을 할 수 있는 것.

다른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연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과 노력의 결실이다. 성공하고 실패하고, 명예와 부를 동시에 누리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모두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바로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이다.

연기 활동 중간에 가끔 지나간 나를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역할과 인물을 연기하였다. 살아보지도 않았던 조선시대의 정승에서부터 사성(四星) 장군,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총수, 말을 타고 무사들을 이끌던 고대의 장수, 비열한 사기꾼, 거리의 노숙자, 무자비한 살인마까지….

이 모든 인물들과 같이 하며 배우는 자신의 인생관이 바뀌어 버린다. 스스로가 추구하던 가치관과 의미들이 배역들을 연기를 하는 동안 새롭게 사색하고 반성하며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배우들이 생각이 깊어지고 고민이 많아지고 남들이 겪지 않는 여러 가지 고통들과 시련 속에 노출되는지도 모른다. 그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국민배우로 거듭나는가 하면 자신을 아끼지 않고 절제하지 못하여 한번의 실수로 그냥 그런 잊혀진 삼류로 기억되기도 한다.

묵묵히 배우라는 길을 가고 있는 많은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배우라는 직업은 어느 직업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직업이다. 자기자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어느 누구 앞에서도 나를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도록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아끼는 것 그것이 바로 배우라는 직업이다. 인기에 연연하지 하고 주인공이든 아니든 내가 연기하는 배역을 사랑하고 그에 최선을 다하는 자신을 존중하고 아낄 수 있어야 배우로서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갈 수 있으며, 그렇게 진정 배우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기회라는 것은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왔을 때 한번에 그 기회를 낚아채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로 인해 얻게 될 모든 것들을 진정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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