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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청춘을 깨운 선생님의 ‘따듯한 일격’[스승의 날 특집] 중앙고 검도부 강은수·김재홍 교사…대를 잇는 검도 정신
"검도는 운동이 아닌 인격수양"…방황과 질풍노도의 학생들 이끈 죽도

▲ 제주중앙고 검도부 동문회 모습.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에 있는 사람이 1980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25년간 검도부를 지도해 온 강은수 옹이다.

“이얏!” 우렁찬 기합소리가 체육관 밖까지 터져 나왔다. 단호하게 내리치는 죽도소리도 날카롭게 퍼졌다.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맨발의 소년들이 죽도와 하나가 돼 저마다의 상대를 날카로운 눈매로 응시하고 있었다.

숨을 죽인 채 땀을 흘리며 차가운 죽도를 손에 쥔 이들은 바로 제주중앙고등학교 검도부원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한 성인 남성이 눈에 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는 체육관을 압도하고 있다. 그의 구령 한마디 한마디에 학생들의 죽도는 허공을 반듯하게 가르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남성의 이름은 김재홍(50). 제주중앙고 상업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다.

이날 체육관에는 노년의 한 남성도 이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칠순을 넘긴 이 남성은 이 학교 교단에 섰던 퇴직교사 강은수(73) 옹이다. 또 한 사람의 청년도 눈에 띈다. 이 남성은 김진수(43)씨다.

▲ (왼쪽부터) 김재홍 선생님, 강은수 선생님, 김진수 검도부 동문회회장.

세 사람은 모두 중앙고 검도부와 관련이 있다. 강은수 옹과 김진수씨는 사제 간이다. 또 강은수 옹과 김재홍 교사는 교사와 교사 간이다.

중앙고 검도부는 지난 1980년 처음 만들어진 뒤 올해로 35년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창단은 강은수 교사가 했다.

검도는 축구나 야구 같은 인기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개설 당시만 해도 학교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마땅히 연습할 장소도 없어서 처음엔 빈 교실을 이용하다가 나중에는 옥상이나 야외공원 등을 전전하기에 이르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강 교사는 학교 인근에 있는 빈 목공소를 검도부 연습장으로 만들기로 했다. 대충 쓸고 닦고 치웠지만, 중요한 건 시멘트바닥을 마룻바닥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결국에는 학부모의 도움까지 빌려 합판을 가져다 깔고 어느 정도 구색을 맞췄다.

▲ 기합, 죽도, 몸이 하나가 되어 상대방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모습.

그런데 이번에는 ‘장비’가 문제가 됐다. 제주도검도회에서 빌려 온 장비는 한두 벌에 불과해 매번 앞사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려 입어야만 했다. 결국 몇 달을 기다려서야 학교 지원비로 한 벌을 사고, 또 한 벌을 사고. 그렇게 차곡차곡 사 모은 끝에 검도부 전원이 동시에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검도부를 유지하려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제주중앙고 검도부 동문회 회장 김진수씨.
그 해답의 힌트는 김진수씨가 내놨다. 김씨는 중앙고 검도부 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강 교사가 검도부 지도를 맡고 있을 당시 학생이었다.

김씨는 “학교에서 검도부에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아 사장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강 선생님이 지켜주셨다. 처음엔 왜 저렇게까지 붙잡고 계시나 했는데 졸업을 해서야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 검도부에 들어갔을 때와 3년을 지낸 뒤 졸업할 때 나를 돌아보니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며 “마음과 생각이 안정되면서 행동까지 변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검도를 통해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 김씨는 강 교사가 검도부를 통해 학생들의 정신수양과 인성을 가르쳤다고 고백했다.

강 교사가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검도의 목적은 검을 통한 올바른 인격 형성”이라고 강조하며 “올바른 칼을 쓰게 함으로써 인격을 다듬도록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년 동안 꾸준히 검도를 하면 틀림없이 이다음에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걸 제자들이 증명해줬다”며 “방황하던 제자들도 검도부에 일단 들어오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리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 강은수 선생님이 검도부 재학생들을 찾아와 조언을 건네고 있는 모습.

현재 검도부 지도를 맡고 있는 김 교사 또한 강 교사의 제자였다. 동료 교사인 동시에 사제지간으로 얽혀있는 사연은 무엇일까?

때는 1988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갓 발령 온 김 교사는 학교에 ‘검도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작정 검도부를 찾았다. 교사라고 해서 꼭 누군갈 가르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숨쉬기 운동밖에 할 줄 몰랐던 김 교사를 받아준 이가 바로 당시 지도교사였던 강은수 옹이었다. 강 교사는 검도부를 개설하던 1980년부터 교단을 떠나던 2004년까지 무려 25년간 검도부 지도교사를 맡았다. 이후 자연스레 ‘단원’이 됐던 김 교사가 강 교사의 바통을 이어받게 됐다.

▲ 강은수 선생님의 바톤을 이어 검도부 지도를 맡고 있는 김재홍 선생님.
강 교사의 ‘후계자’ 김 교사는 “강 선생님의 뜻을 잘 알기에 검도부의 맥을 잇고 싶었다”며 “나 뿐만 아니라 졸업한 동문들도 이에 동참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김씨는 “후배들한테 기합을 주다 강 선생님한테 걸려 오히려 우리들이 기합 받은 적도 있고, 다른 부서 학생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데모를 하다 선생님한테 죽도로 맞은 적도 있다. 몇몇 애들은 운동 안하겠다며 방과 후엔 캐비닛에 숨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찾아냈다”면서 지난 학창시절 일화들을 늘어놓았다.

방황하며 갈피를 못 잡는 학창시절의 한 가운데 ‘강 선생님’이 있었기에 학교에 흥미를 가지고 반듯한 사회인이 될 수 있었다는 김씨. 그리고 강 교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김 교사.

강 교사는 “나 때문이 아니라 ‘검도’가 학생들을 바르게 자라도록 해준 것이다. 검도는 그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인격을 가꾸는 훈련”이라면서 “앞으로 중앙고 검도부가 선수 육성보다는 마음자세를 가꾸는 데 의미를 두고 커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중앙고 검도부 동문들은 여전히 죽도를 놓지 않고 있다. 강 교사의 가르침이 사회에 진출한 자신들이 있게 했다고 믿는 동문들.

▲ 1980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25년간 검도부 지도를 맡은 강은수 선생님.

김씨는 “검도부 동문회는 졸업 후 함께 검도를 즐기기 위함도 있지만,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이들 중에는 검도관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경찰관이 된 이도, 일반부 선수로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검도인지이라 일찍 시작한 이들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한 실력이지만, 여태 검도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퇴근 후 취미로 즐기는 이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강 교사의 가르침으로 인해 검도부 동문들의 정신수양은 졸업 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안서연  asy01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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