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주대의 ‘반값 등록금’ 홍보에 학생·학부모 가슴 아파

교외장학금 교내장학금의 3배, 생색은 대학이…대학이 하는 짓이

▲ 김영하 기자
‘가사장학금’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가사장학금’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장학금의 일종이다.

그런데 10여년 전만해도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 ‘가사장학금’은 다른 뜻으로 불렸다. 집에서 주는 장학금. 우스갯말로 등록금을 ‘가사(家舍)장학금’이라 했다. 집에서 받는 장학금을 대학에 내는 꼴을 빗대어서 한 얘기다.

웃긴 얘기지만 웃지 못 할 말이기도 하다. 집에서 부모님이 힘들게 돈을 벌어서 경제활동을 못하는 다 큰 자녀들의 등록금을 대기 위한 것이니 말을 하는 대학생도, 이를 듣는 대학생도 가슴 한쪽에는 착잡함이 남았을 것이다.

불과 19~20년 전만 해도 제주대학교의 등록금은 100만원 안팎이었다. 국립대이다 보니 등록금이 싸기도 했지만, 당시 등록금 인상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당시 사립대는 이보다 약 2~3배 정도는 됐다.

그런데 IMF외환위기 사태가 직면하기 전 제주대의 등록금은 갑자기 25%나 뛴다. 당시 입학생들의 입학금은 약 130만~150만 원 정도로 껑충 올라 납부 거부사태까지 빚어졌다. 물론 재학생들도 학기 등록을 하지 않는 등 대학과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졌다. 기자도 당시 학생회의 방침에 따라 등록금을 다소 늦게 납부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동결됐던 등록금이 물가 인상과 타 지역 사립대의 인상 물결에 편승, 결국 오르고 말았다. 그 이후 제주대는 물론 대학의 등록금은 꾸준히 올랐다.

급기야 일부 사립대는 한 학기에 900만원이 넘는 등록금 시대가 됐다. 이제 곧 1000만원 등록금 시대가 머지않은 것 같다. 국립대는 이에 절반 수준으로 300만 원대에서 540만 원대 시대가 됐다. 불과 20년 만에 3~5배나 뛴 것이다.

물론 물가가 오르고, 인건비도 올랐다. 학교 연구시설이나 학생 편의시설, 강의실 신증축 등 돈이 들어갈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하지만 IMF외환사태, 국제경기 침체, 좀처럼 살아나지 않은 국내 경기, 취업난, 오르지 않는 월급 등으로 대학을 보내는 학부모들은 등허리가 휜다. 하다못해 학자금 대출이라는 제도가 생겨나긴 했지만 학자금 대출도 쉽지 않다. 받는다 해도 졸업 후 학자금을 갚기 위해 주머니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도서관이나 연구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이나 주점 등에서 ‘알바’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일한다.

대학 등록금이 사회문제화 되자 정치권이 나섰다. 수년전부터 정치권에서는 ‘반값 등록금’을 이슈화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너도나도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노라고 하면서 대학생들과 그들을 둔 학부모에게 공약(空約) 처럼 혀를 놀렸다.

대학생들도 ‘반값 등록금’을 외치자 정치권도 사회전체가 '반값 등록금'을 외쳐댔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일부 대학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까지 했다.

▲ 제주대학교 본관 건물
최근 제주대가 ‘제주대, 등록금 대비 62% 장학금 지원…반값이하 등록금 실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제주대와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제주대의 올해 학생 1인당 평균 등록금은 378만2400원이다.

제주대는 올해 장학금 규모로 국가장학금 등 교외장학금 187억5600여만 원, 기성회회계 등 교내 장학금은 58억9300여만 원 등 총 246억5000여만 원이 지원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주대는 올해 장학금 총액에 재학생수 1만244명(추산)을 나누면 1인당 평균 장학금은 234만4000원에 이른다고도 했다. 1인당 평균 등록금의 62% 수준으로 장학금으로 반값이하 등록금을 실현한 셈이라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 지난 2006년 3월 제주대학교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진 뒤 제주시내에서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 제주도민일보 DB
장학금이 늘어난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국가·지방자치단체·시설·학업우수·저소득층·근로·교직원 등 어떠한 형태의 장학금이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제주대가 ‘반값 장학금 실현’이라는 보도자료를 내자 일부 언론사들도 ‘제주대, 반값 등록금 실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겠나.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제주대에 따르면 올해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절반에 이른다. 반대로 따지면 절반은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학업 우수 장학금도 종류에 따라 등록금 전액 면제가 있고, 일부 면제가 있다. 일부 면제 중에서는 절반에서 수업료 약 30% 감액 등이 있다. 절반이야 반값 등록금을 실감하겠지만 그 이하 면제는 사실상 반값이 되지 않는다.

혜택을 보는 학생이 절반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378만원에 이르는 고액(?)의 ‘가사장학금’을 받아서 대학에 내야 한다. 이들이 낸 등록금 중에는 일부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돌아갈 것이다.

더욱이 제주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시설 등에서 주는 교외 장학금이 학업 우수·저소득층·근로·봉사·교직원 장학금 등 교내 장학금의 3배 이상이나 된다.

그러면서 반값 등록금을 실현했다고 자랑하고 홍보하고 있다.

뛸 듯 기뻐하면서 예년의 반값으로 자녀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다고 기대하던 학부모들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 것은 뻔한 일이다. 막상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본 학부모들의 심정은 또 다시 월급 이상의 자녀 등록금에 한숨을 내쉬면서 벌이가 시원치 못한 자신을 자학할지도 모른다.

이런 부모의 심정을 아는 대학생들은 학업과 돈벌이라는 이중 일을 하거나 학업을 포기해 차라리 취업전선으로 뛰어들고 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전국 대학 등록금 인하율은 지난 2012년 4.3% 내린 것을 빼면 지난해와 올해 모두 인하율이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제주대는 0%대로 거의 움직임이 없다.

제주대는 제주지역 인재양성의 요람이고 지식의 상아탑이다.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학업과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학 본연의 업무다.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 것이다.

그런 지식의 상아탑이 정작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지도 못하면서 교외 장학금으로 마치 자신들의 업적인양 포장하고 있다. 게다가 거짓된 정보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알리고 있다.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할 일은 분명히 아니다. / 제주도민일보 김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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