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특집] 장애인도 ‘성적 권리’가 있다…‘뜨거운 침묵’ 그 속살 보다 ③ 뇌병변장애인을 둘러싼 성 서비스 논의…‘자기愛’, ‘사회적 여건’ 우선돼야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성적(性的) 욕구’. 하지만 다른 욕구들에 비해 ‘성’은 활발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더구나 ‘생존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이 ‘성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사치’라고 느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아니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 무심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성의식뿐만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에까지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이야말로 인간 본능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이에 <제주도민일보>에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장애인의 성’이라는 주제를 표면으로 꺼내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가 ‘당연한 권리’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방향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처음으로 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논의를 표면 위로 끌어올린 영화 ‘오아시스’. 영화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중증 뇌병변장애인 공주(문소리)와 전과자 종두(설경구)가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그려냈다.
공주와 종두의 성관계 장면을 목격한 경찰은 종두에게 묻는다. ‘너는 저런 애를 보고 성욕이 생기디?’ 현실 속에서 여성 뇌병변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뇌병변장애인은 움직이고 말을 하는 데 있어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비장애인과 다름없는 완벽한 감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성적인 자극과 욕구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비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거나 심리적 또는 사회적 문제로 인해 성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혼 뇌병변장애인 ‘경직’과 ‘경련’으로 인한 어려움 호소
뇌병변장애인의 성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경직’이나 ‘경련’이다. 이로 인해 체위를 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 18년차 김진옥(57·뇌병변장애1급)·김정근(65) 부부는 “몸이 자유롭지 않다보니 체위가 단조로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 “주로 남편이 편한 쪽으로 체위를 취한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할 수 있는 체위에 있어서 최선을 다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어우러지면 충분히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의 경우에는 남편이 비장애인이다보니 다른 중증장애인 부부에 비해 성생활이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부부가 둘 다 중증장애인일 경우, 성생활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지난 2011년 결혼에 골인한 김동림(53·뇌병변장애1급)·이미경(45·뇌병변장애1급) 부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족할만한 성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김씨는 “둘 다 중증이다 보니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성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 의견 분분…어디까지 괜찮은가?
일각에서는 이들 같은 중증장애인 부부의 원활한 성생활을 위해 체위 변경을 돕는 ‘성 도우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2009년 개봉한 영화 ‘섹스볼란티어’에서는 중증장애인의 성생활을 돕기 위한 방안으로 ‘성 자원봉사’와 ‘성 도우미’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둘 다 중증장애인인 김동림·이미경 부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무리 성생활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둘만의 성스럽고 고귀한 시간에 누가 옆에 있다면 자연스럽게 성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성 서비스 이용을 꺼려했다.
반면 굿잡 자립생활센터 김재익(49·뇌병변장애1급) 소장의 경우에는 “중증장애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전문 교육을 받은 간호사 등이 중증장애인 부부의 성관계를 지원해주는 건 윤리적으로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최소한 원하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지원서비스가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성 서비스 도입을 적극 찬성했다.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은 뇌병변장애인들은 성 서비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미혼의 경우에도 기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견이 분분했다.
뇌병변장애 1급 최동우(36)씨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다”면서 “장애인의 전반적인 생활을 돕는 활동보조인처럼 직접적인 접촉이나 행위 등으로 장애인의 성적 욕구 해소를 돕는 성 활동보조인이 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호식(42·뇌병변장애1급)씨는 “물론 성적 욕구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지만 성생활이 인생에 전부는 아니다. 직접적인 성 도우미까지 이용해서 성욕을 해소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면서 거부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다만 “활동보조인이 성과 관련한 자료를 구해주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덧붙였다.
성 서비스 ‘있고 없고’ 문제 아냐…근본적인 해소 있어야
이 같은 논의에 대해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는 “장애인이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타인에게 의존해야한다는 것을 스스로 전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며 “어찌됐든 성 서비스는 욕구 해소에 초점을 맞춘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왜’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일반적인 성 파트너가 아닌 성 도우미를 불러오게 됐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배 대표는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지나치게 고착화 돼 있다. 정형화된 성문화에 맞춰 일회성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성 서비스로 규정하지 말고 개념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앞서 최동우씨가 호소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뇌병변장애인은 활동의 제약 등으로 인해 비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다.
육체적인 요인 외에도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은 성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장애인이 무슨 성생활이냐?’, ‘임신이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등의 우려로 인해 애초에 성적 권리를 무시당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한 장애인 당사자는 자기 혐오감에 휩싸여 ‘과연 누가 나를 좋아해줄까?’, ‘나에게 성적 매력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이성에게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곤 한다.
배 대표에 따르면 독일의 한 ‘장애인 자기결정 상담소(ISBB)’에서는 장애인 스스로 성적 권리, 성적인 것과 관련한 가능성 혹은 관계성 등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바디페인팅, 탄트라 마사지 등을 통해 자기 몸의 성감대, 성적 에너지가 어딘지를 확인하도록 한다.
여기서 ‘핵심’은 반드시 일반적인 성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성적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실제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몸을 제대로 보지 못한 중증장애인이 많다”면서 “성생활에 앞서 자신의 몸, 성감대 등을 먼저 알도록 하는 것이 그 어떤 성 서비스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앞으로 국내에서도 이러한 성 워크숍이 자주 진행될 수 있도록 국가적 예산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혼 중증장애인 “성적욕구,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한편 이성을 만나지 못하는 장애인 당사자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자위행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일 경우에는 이마저도 힘든 실정이다. 중증장애인의 장애정도에 맞는 자위 기구의 개발은 아직 미비하다.
이를 위해 김재익 소장이 제기한 것이 ‘가상현실을 통한 섹스’다. ‘가상현실을 통한 섹스’는 실제로 성행위를 하진 않지만 마치 실제로 하는 것처럼 오감이 인지되도록 하는 ‘사이버 섹스’다.
인간의 뇌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때 시각적인 부분이 90%를 차지하므로 3차원 가상세계를 구축해 이미지를 보여주고, 최첨단 성기구를 통해 10%의 신체적 접촉까지 곁들인다면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맞춤형 자위 기구의 개발’이나 ‘가상현실을 통한 섹스’ 등은 미혼 중증장애인의 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한 대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 합법적으로는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 간에 성을 논의할 수 있도록 온라인상에 대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김경미 소장은 “상담소에서 조차 꺼내놓지 못하는 고민들을 온라인 공간에서 서슴없이 얘기하고, 정보를 공유한다면 스스로 성적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응범 사무국장은 “성을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좁은 제주사회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활발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성 만남 기회 부족…‘자기愛’, ‘장애인 사회적 여건 개선’ 필요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성과의 만남을 통해 정서적 만족을 동반한 성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여느 비장애인들은 “그러면 장애인끼리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사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구자윤(37·뇌병변장애1급) 성 활동가는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다”며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만나 가난했던 과거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은 본인이 더 힘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장애가 더 심한 상대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혼 성인 장애인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여느 복지관에서 단체 미팅을 실시하기도 했으나, 그다지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구 활동가의 설명이다.
구 활동가는 “사람인 이상 조건을 전혀 따지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누군가 무얼 해주길 바라는 것보다 장애인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국가적 차원에서 장애인의 사회참여권, 취업권, 교육권, 이동권 등이 확실히 보장돼야만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이성에게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 “이름뿐인 성 향유권을 시행하기에 앞서 사회적 여건부터 제대로 보장해 달라”고 주문했다.
여전히 자신의 성적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김진옥·김정근 부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길 바라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말고 행복을 잡을 수 있는 지혜를 갖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