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특집] 장애인도 ‘성적 권리’가 있다…‘뜨거운 침묵’ 그 속살 보다

② 척수장애인 성재활정보와 부부간 대화 필요…제주에 성재활실 없어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성적(性的) 욕구’. 하지만 다른 욕구들에 비해 ‘성’은 활발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더구나 ‘생존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이 ‘성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사치’라고 느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아니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 무심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성의식뿐만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에까지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이야말로 인간 본능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이에 <제주도민일보>에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장애인의 성’이라는 주제를 표면으로 꺼내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가 ‘당연한 권리’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방향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 따르면 척수장애인 중 90% 이상이 사고 등으로 척수가 손상됐다. 이 중 절반 이상이 교통사고로 인해 사고를 당했다.

아무 불편함 없이 몇 십 년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지 또는 하반신이 마비된다면 그로인한 불편과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장애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히다 보면 성생활도 자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과연 척수장애인에게 있어 성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영역인 것일까?

“감각이 마비됐는데, 성욕이 생길까?”

지난 2002년 교통사고로 흉수(척추의 한 부분) 5번이 손상된 척수장애1급 안상호(가명·36)씨는 사고가 나고 4개월쯤 흐른 뒤,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다신 예전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안씨는 “그동안 당연하게 해왔던 모든 일들에 있어서 걱정과 두려움이 앞을 가렸다. ‘성생활’도 그중 하나였다. ‘가슴 밑으로는 전혀 감각이 없는데 과연 예전처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의 막막함을 토로했다.

그 순간 안씨의 곁을 지키던 사람이 아내인 김진희(가명·34)씨다. 이들 부부는 사고 후 1년쯤이 지나서야 잠자리를 함께 했다.

▲ 국립재활원 유정아 상담실장. 
김씨는 “다쳤다는 충격에 아무런 생각도 못할 줄 알았는데 그날 남편이 ‘줄곧 너를 만지고 싶었다’는 말을 하더라”며 “그제야 감각은 마비됐어도 마음은 똑같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유정아 상담실장은 “장애를 입은 초기에는 신체적인 요인, 먹는 약의 요인으로 인해 많이 우울해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손상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성적 욕구가 감소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실장은 “사고 후 7~8개월이 지난 다음부터는 대부분 성적 욕구를 느끼기 시작한다”며 “실제로 척수손상을 입는다고 해도 성적 욕구까지 손상을 입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남성척수장애인 75% ‘발기’ 문제 겪어…해결 가능

하지만 두 사람의 성생활은 쉽지 않았다. 안씨는 하반신에 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라 발기가 되지 않았다. 됐다 하더라도 지속 시간이 짧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약물치료’와 ‘주사’다.

지난 2011년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에서 발간한 ‘장애인 성재활 가이드북’에 따르면 발기부전은 남성척수장애인들이 고민하는 가장 큰 성 문제다. 남성척수장애인 100명 중 25명 정도만 성교가 가능할 정도로 발기가 된다. 하지만 50명은 성교가 안 되는 불완전 발기상태다. 나머지 25명 발기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75%는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한 셈이다.

유 실장은 발기부전을 해결하는 일차적인 방법으로 먹는 약을 추천했다. 성생활 전에 복용했을 경우 70% 이상이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척수장애1급 이기호(가명·41)씨는 “발기가 되지 않아 약을 복용한 적 있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약은 원래 심장치료약으로 많이 복용할 경우 심장에 무리가 간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먹는 약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시에는 음경 부분에 직접 주사를 놓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90% 정도가 충분히 발기한다. 이외에도 진공흡입기 등의 방법이 있으며 이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으면 마지막 방법으로 보형물을 삽입하는 방법이 있다.

이처럼 발기부전은 의학적인 도움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아예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단 척수손상 후 발기기능의 회복은 6개월에서 2년에 걸쳐 이뤄지므로 발기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2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수술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 후에 고려해도 늦지 않다.

▲ 척수장애인들의 성재활에 있어서 의학적인 도움 등을 받을 수 있는 국립재활원 성재활 상담실.

성관계 도중 ‘실금’ 생기지 않도록 장·방광 비워둬야

다음으로 안씨가 토로한 어려움은 바로 ‘실금’ 문제다.

안씨는 “척수장애인은 소변이나 대변을 비장애인처럼 보지 못하다보니 성관계 도중 소변이 마렵거나 실제로 나오는 상황도 발생했다”며 “성관계는 서로 좋아서 좋은 면만 보여주면서 하게 되는 건데 실수를 하다 보니 자존심도 상하고 수치심도 느끼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유 실장은 “우선 실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생활 2시간 전부터는 수분섭취를 피하고 성관계를 갖기 전에 장을 비워두는 게 좋다”고 권유했다.

이어 “만약의 요실금을 대비해 성행위 전에 미리 엉덩이 밑에 패드나 수건을 깔아 두고, 혹시나 도중에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사전에 배우자와 충분히 얘기를 해뒀다면 당혹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씨의 아내 김씨는 “우리 부부의 경우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태에서 갑자기 소변이 마려우면 어색하긴 하지만 불을 켜고 자연스럽게 소변을 빼낸다”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는 쑥스럽지만, 상대방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받아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감각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경계선, ’제2의 성감대’ 될 수도

하지만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해도 성기부위의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성기부분을 자극한다고 한들 과연 성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씨는 “사고 전과 똑같은 성적 느낌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성생활을 통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척수장애인은 성적인 영역에 있어 언제나 ‘불만족’인 상태로 머물러야 하는 걸까?

▲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서 2012년 9월~11월 전국의 척수장애인 303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생활 만족도’ 조사 결과. 출처/한국척수장애인협회.

한국척수장애인협회가 2012년 9~11월 전국의 척수장애인 303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척수장애인 욕구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35%가 매우 불만족이라고 답했다. 보통이 29.3%, 불만족이 27.9%, 대체로 만족이 1%다. 약 63%가 성생활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서 2012년 9월~11월 전국의 척수장애인 303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재활을 위해 필요한 것’. 출처/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 설문조사에 응한 대상자에게 ‘성재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전문가 상담이 31.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이 24.6%, 척수장애인의 동료상담이 24.6%, 약물·수술적 요법의 개발이 8.8%, 비디오 혹은 가이드북 제작이 6.3%였다.

전문가로부터의 성상담을 절실히 원하는 척수장애인

이들이 성적 만족을 느끼기 위해 성생활에 어떻게 임해야할 지에 대해 유 실장은 “일반적으로 성생활을 생각할 때 비장애인이었을 때처럼 하는 성교를 하는 쪽으로만 고집하지 않길 바란다”면서 “두 사람이 함께 어떤 체위들이 더 편안한지, 몸의 어떤 부분들이 감각이 더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면 성적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척수장애인의 경우에 감각이 없는 부분이 생김으로써 감각이 살아있는 부분이 훨씬 더 예민하다”며 “제2의 성감대를 찾기 위해 감각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경계선을 잘 애무해보라”고 권유했다.

아울러 “이 같은 조언은 여성척수장애인에게도 해당되며, 다만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달리 성감대가 널리 분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신’ 아무 문제없나?…남성 ‘사정’의 문제 겪어

유 실장에 따르면 여성척수장애인은 사지가 마비된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성생활을 할 수 있다. 성교의 행위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의 성기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므로 모든 여성척수장애인들은 성교가 가능하다.

다만 척수손상 후에 질 분비액이 감소되거나 분비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윤활액을 사용하면 된다.

임신 및 출산 또한 물론 가능하다. 척수손상 초기에 한 50% 정도에서는 월경이 끊기는 현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평균 6개월 정도면 다시 월경을 시작하게 돼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능력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척수장애인의 경우 ‘사정’이 되지 않아 ‘불임’일 확률이 높다.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척수손상 후 사정이 가능한 경우는 역행성 사정을 포함해도 20% 정도에 불과하다. 정자의 활동력도 떨어져서 의학적인 도움 없이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는 경우는 약 10% 미만이다. 즉 남성척수장애인 10명 중 1명만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이기호씨는 “아기에 대한 욕심은 애초에 접었다. 살다보면 욕심이 생길수도 있지만 아내와 단 둘이 재밌게 살려 한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부부간에 자식을 낳지 않기로 했을 경우에는 상관없지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인공수정이다. 이 경우 남성척수장애인 부부의 60% 정도가 자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안씨의 경우 시험관 아기를 시도해 지난 2008년 건강한 딸을 얻었다. 현재 둘째를 계획 중이다.

‘성재활’과 ‘대화’로 행복한 성생활 가능

첫 아이를 낳고 또 다시 둘째를 갖겠다고 결심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부를 지탱해준 것은 무엇보다 ‘대화’라고 한다.

김씨는 “사고 후 첫 관계를 한 날, 남편이 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그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이후 나는 언제든 남편에게 털어놓았고, 성관계 전에도 자주 대화를 나눴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비장애인들은 ‘감각도 없는데 무슨 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비장애인부부 못지않게 서로를 사랑하고 성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사고 후 처음으로 성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었던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을 떠올리며 “덕분에 자연스럽게 성적 문제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을 기회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재활원.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은 주기적으로 성재활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척수장애인 부부 또는 미혼척수장애인끼리 소그룹을 만들어 성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씨에 따르면 제주도내에는 이 같은 성재활 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서울에 위치한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을 찾는 이들도 많이 있다.

척수장애인에게 성재활 상담·교육·치료 등을 실시함으로써 성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척수장애인 욕구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살펴본 결과 ‘성재활 정보를 얻은 적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13.6%나 되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성재활에 대한 정보 제공의 기회를 더욱 늘리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3부에 계속> /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 전화 02-901-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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