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특집] 장애인도 '성적 권리'가 있다…‘뜨거운 침묵’ 그 속살을 보다

① 성에 대한 무조건 금지·무지 강요…잘못된 장애인 성교육이 성 향유권 침해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성적(性的) 욕구’. 하지만 다른 욕구들에 비해 ‘성’은 활발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더구나 ‘생존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이 ‘성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사치’라고 느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아니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 무심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성의식뿐만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에까지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이야말로 인간 본능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이에 <제주도민일보>에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장애인의 성’이라는 주제를 표면으로 꺼내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가 ‘당연한 권리’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방향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매년 제주에서는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법정에는 매주 장애인 관련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충격적인 사건이 제주사회를 분노케 했다. 무려 10여 년간 제주시내 모 아파트에서 자행된 ‘장애인 여성 집단 성폭행 사건’이 그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 지자체와 경찰, 장애인협회 등에서는 장애인 당사자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예방교육과 점검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예방교육’에 있어서 당사자들을 ‘성적 주체’가 아닌 ‘무성(無性)의 존재’, ‘성적 결정권이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데 있다.

‘성적 결정권이 없는 존재’로 강요받는 지적·자폐성장애인

지적장애 2급 강미연(가명·27)씨는 고등학교 시절 딱 한 번 장애인 당사자들끼리 모여 성교육을 받은 게 전부다. 당시 강씨가 받은 교육이라곤 ‘안 된다’라고 말하는 등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 필요한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했다.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잘 모른다고 말하는 강씨. 그런 강씨에게 조심스레 이성과의 만남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골똘히 생각하더니 ‘딱 한 번 있다’고 답했다.

“한 번 있어요. 아는 분 집에 놀러갔는데 어떤 남성분이 있었어요. 그때 그분이 내 가슴을 만졌어요. 속상했는데 안 된다는 말을 못했어요. 아무 말도 안 나왔어요.”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성인남성 앞에서 강씨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강씨는 이모에게 털어놨지만, 이모는 ‘다시는 그 집에 놀러가지 말라’는 선에서 상황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만약 비장애인 20대 여성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문제는 커졌을 것이다.

강씨는 ‘어디 가서도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후 단 한 번도 이 얘길 꺼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후 강씨는 이성에 대한 불신만 깊어졌다.

▲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김경미 소장.
그는 “언니는 내가 비장애인과 만나 결혼해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저는 어떤 남자도 다 별로예요. 불안해요”라고 고백했다. 성적 권리를 스스로 묻어버린 것이다.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김경미 소장은 “예방도 중요하지만 ‘안돼요’, ‘싫어요’ 식의 무조건적인 저항의 교육은 옳지 않다. 올바른 성교육이 아니”라며 저항의 교육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사실 강씨가 알고 싶었던 건 ‘성은 무조건 안 된다’가 아니라 ‘언제 누굴 만나 사랑해도 되는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지적·자폐성장애인은 ‘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성을 무조건 금지당하거나 무지함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결국 ‘예방’하지 못한 것이다.

“엄마, 성적욕구가 생기는 내가 나쁜 건가요?”

이번엔 자폐성장애 1급 정준이(가명·15)군의 경우다. 정군의 어머니 A씨는 지난해 화들짝 놀라는 경험을 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들이 바닥에 성기를 문지르고 있던 것이다.

A씨는 “나도 모르게 누워있는 아들을 발로 차며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냈다. ‘얘는 다른 기능들도 안 되고 인지능력도 비장애인에 못 미치는데 어째서 성적 욕구만 나이에 맞게 성장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당시 느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무것도 모를 텐데 뭐’, ‘무슨 성욕이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아들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기르던 A씨는 성에 눈 뜬 아들을 바라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한다. 성적 욕구로 인해 통제력이 없는 아들이 사회에서 비난받는 행동을 하게 되진 않을지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억압하고, 모르게 한다고 해서 ‘성적 욕구’가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지적·자폐성장애인들은 표현하는 방법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성기 노출, 가슴 만지기, 공공장소에서 옷 벗기, 무분별한 신체 접촉 등을 통해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표출하기도 한다.

즉 지적·자폐성장애인의 성 문제는 장애 자체의 문제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주위 사회의 환경적인 성 억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 다운증후군 당사자(극중이름 재명)가 직접 출연한 영화 ‘사랑해 말순씨’. 재명은 성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골목에서 바지를 내리거나, 지나가는 여자를 만지는 식으로 성적 욕구를 표출하곤 한다. 그러다 결국 성범죄자로 몰려 정신병원에까지 끌려가기에 이른다. / 사진출처=영화 ‘사랑해 말순씨’ 캡쳐
A씨는 아들의 성적 행동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묻기 위해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성적 충동을 느낀 한 비장애 학생이 화장실에 가서 본인 스스로 자위행위를 통해 처리하고 나온다면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군에게도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알려준다면 우려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A씨는 자신부터가 아들을 차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들의 ‘자위행동’을 ‘고추놀이’라고 이름 붙이고, 반드시 ‘혼자’, ‘은밀한 공간’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는 “처음에는 아이가 쉽사리 받아드리지 못했지만, 인지적인 방법이 아니라 생활적인 방법으로 가르치다보니 어느 순간 습관이 됐다”며 “이후 아이의 지나친 성적 행동을 자제시키기 더욱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에 대해 김경미 소장은 “비장애인들에게는 한두 번만 알려주면 되지만, 지적·자폐성장애학생들에게는 지속·반복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알려줘야 충분한 교육이 가능하다”며 “성교육 강사가 하는 건 한두 번에 그치기 때문에 생활 속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반복적 교육’을 거듭 강조하며 “가정에서 부모가 꾸준히 성교육을 시켜야 하듯이 복지관에서는 사회복지사들이, 장애인생활시설에서는 생활교사들이 그 몫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뿐만 아니라 늘 장애인 곁에 머물고 있는 사회복지사와 생활교사들의 성교육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성 향유권’ 선언적인 법조항에 불과

▲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 성에서의 차별금지
대한민국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고, 그 법에는 장애인의 성 향유권 보장도 규정돼 있다.

2007년 4월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성에서의 차별금지’에 대한 조항이 마련돼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9조 1항 ‘모든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돼야 하며, 장애인은 이를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2항과 3항에는 ‘장애를 이유로 성생활을 향유할 공간 및 기타 도구의 사용을 제한하지 말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성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편견·관습 등 모든 차별적 관행을 없애기 위한 홍보·교육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조항은 여전히 선언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권리로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장애인의 성. 지적·자폐성장애인 외에 다른 장애유형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까? <2부에 계속> /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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