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불출마 우 위로차원”…우 “선의 경쟁이 갈등으로 오해”

말 놓으면서 웃으면서 회동…20년 정적 관계 청산 신호탄?

▲ 신구범 전 제주지사(왼쪽)와 우근민 제주지사가 손을 잡고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와 신구범 전 제주지사가 전격 만남을 가졌다. 오랜 정치적 라이벌 간의 만남이다.

최근 6·4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우근민 지사와 지사 선거에 나서고 있는 신구범 전 지사는 16일 오후 3시35분쯤 제주도지사 집무실에서 만남을 가졌다.

우 지사는 신 전 지사를 만나기 위해 집무실 밖으로 나와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의 대화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들은 일단 서로 말을 놓으면서 언제 싸웠느냐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만났다.

이날 회동은 우 지사가 신 전 지사에게 만나자고 연락하면서 이뤄졌다.

신구범 전 지사는 이날 비공개 대화에 앞서 도청 출입기자들과 간담회에서 “오늘 회동은 사적인 차원에서의 순수한 만남이고, 정치적인 해석은 말아달라”면서 “어제 오후 3시30분쯤 우 지사가 ‘오늘 도지사 집무실에서 가볍게 차나 한잔하자’고 연락이 왔었다”며 회동을 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또 “우 지사가 (불출마라는) 당연히 힘든 결정을 했는데, 당연히 와서 위로를 해야 했다”며 “제주사회에서 두 사람(신구범, 우근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이 자리는 사적으로 만난 자리고, 앞으로 우 지사와 함께 도민들의 오해를 풀어드리는 자리를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늘의 사적인 만남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정말로 없었으면 한다. (도지사 예비후보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왔고, 우 지사에게 부담과 오해를 드리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 집무실에서 악수를 하는 두 전.현직 제주지사
이에 우근민 지사는 “어제 신 전 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되면 일정 등을 조율해서 오늘 만나자고 했다”며 “그동안 신 전 지사와 나는 생각은 틀려도 목표는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1%밖에 안 되는 제주도를 잘 만드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목표는 같았지만 방법과 절차 등은 차이가 있어서 선의의 경쟁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갈등으로 생각하고 있다. 친구끼리 만나서 이와 같은 도민들의 오해를 풀어야 하는 책무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우 지사와 신 전 지사의 회동은 우연이 아니다.

신 전 지사는 지난 9일 정책발표 기자회견에서 우 지사에게 회동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제주도민들이 갈등을 얘기하고 갈등 해결해야할 책임은 두 사람한테 있는 것이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제가 먼저 우 지사에게 손을 내밀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며 “갈등은 우리가 책임질 것이고 도민 앞에 화합할 것이다. 다만 제가 약속한대로 우 지사 측에 제안을 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동을 제안한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만남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입장에서 채근할 필요도 없고, 충분한 시간을 우 지사에게 드리는 것이 도리겠다고 생각한다”며 우근민 지사 쪽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우근민 지사는 이에 앞서 이달 초순에 새정치민주연합 김우남 국회의원과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또 지난 4일에는 새누리당 원희룡 예비후보를 면담한 바 있다.

한편 동갑내기인 우 지사와 신 전 지사의 정치적 라이벌 관계는 2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우 지사는 1991년 관선 지사로 제주도에 부임, 1993년 말까지 두 번 관선 지사로 일했다. 이후 우 지사의 후임으로 신구범 전 지사가 부임했다.

그러나 지방자치시대가 열리고 민선 도지사를 선출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경쟁 관계로 돌변하게 된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우 지사는 민자당 후보로 나왔지만 무소속 신구범 후보에게 패했다. 민선 1기 제주도정은 신 전 지사가 맡았다.

하지만 이어진 1998년 치러진 제2회 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로 간판을 바꿔단 우 지사는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신구범 지사와의 승부에서 이긴다. 민선 2기 제주도정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특히 이들은 이 선거 당시 출마 과정에서부터 대결이 치열했다. 새정치국민회의의 말을 타기 위해 당내 경선에서 맞붙었지만 결국 신 전지사가 패했다. 신 전 지사는 경선 결과에 불복,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들의 대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 지사는 2002년 세 번째 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왔고, 신 전 지사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세 번째 맞대결이다. 이번에도 신 전 지사는 우 지사의 산을 넘지 못하고 쓴잔을 마셨다.

하지만 이들의 대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거당시 허위사실 유포, 성희롱 파문, 감귤매립 등의 공방으로 인해 법정싸움으로까지 번졌다. 물론 양측이 법정에서 다툰 것은 아니지만 고소 고발로 인해 제주사회의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이로 인해 우 지사는 선거법(허위사실유포) 위반 혐의가 인정돼 2004년 지사직을 중도 하차했다.

▲ 우근민 제주지사와 신구범 전 제주지사가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한동안 잠잠했지만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사람은 또 다시 대립각을 세웠다.

신 전 지사는 우 지사의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사퇴를 촉구했다. 급기야 기자회견을 통해 우 지사가 선거과정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신 전 지사의 주장을 검찰이 조사했지만 그해 10월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다.

당시 신 전 지사는 우 지사와 경쟁을 벌이던 현명관 후보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날 만남이 그 동안 그들의 대립과 갈등을 씻어줄 화해의 신호가 될지 제주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제주도민일보 김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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