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선거 민주주의 퇴보… ‘가짜 당원’ 의혹까지

진단=패거리·철새정치의 그늘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촌스럽고 낮뜨거운 패거리·철새정치 놀음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선거때 ‘이번이 마지막 봉사’라고 호소했던 무소속 우근민 제주지사가 1만7000여명이라는 지지자들을 ‘동원’해 새누리당 입당을 신청하면서 노욕을 드러냈다.이 과정에서 당사자도 모르는 가짜 입당 신청과 당비 대납 약속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국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새누리당내 도지사 후보 경쟁자들은 물론이고 민주당 등 야당과 우 지사의 정적(政敵)인 신구범 전 지사,시민사회단체들도 한목소리로 세몰이 정치의 구태라고 비난하며 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제주가 민선시대 개막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제주판 3김’ 정치의 그늘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내년 지방선거 역시 고질적인 편가름으로 분열·갈등이 확대·재생산되고 도민사회에 큰 생채기를 남기지 않을지 걱정되는 이유다.

 

▲ 우근민 지사 새누리당 입당 신청 기자회견.

1. ‘촌스러운’ 세몰이 구태

우 지사의 새누리당 입당 ‘작전’에선 당의 기본이념이나 정책 등과는 상관없이 선거에서 당선만을 위해 둥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전형적인 정치철새에 지역은 무시하고 ‘중앙’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행각,지역사회 갈등과 분열의 근원인 줄서기·줄세우기 등 구태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8월말 기준 책임당원 2만3000여명을 포함해 4만명 수준이었던 새누리당 도당 당원은 11월 현재 6만5000여명으로 2만5000여명이 늘어났다.

지난달 하순 우 지사 추종자로 추정되는 1만7000여명이 집단입당을 신청한데다,내년 지방선거 도지사 출마를 꿈꾸는 김방훈 전 제주시장과 김경택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양원찬 재외제주도민총연합회장 등의 지지자들이 몰려든 탓이다. 이들 가운데 70% 이상은 책임당원을 신청했다.

새누리당 도지사 후보 경선이 책임당원 20%와 일반당원 30%,국민 30%가 참여하는 투표와 여론조사 20%의 비율로 이뤄진다.책임당원은 일반당원에도 포함돼 무작위 추첨으로 선거인단으로 뽑힐 가능성이 적지 않아 책임당원을 많이 확보할수록 유리하다.

때문에 우 지사측의 새누리당 무더기 입당은 ‘세’를 과시하면서 내년 도지사 선거 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형적인 패거리 정치이자 정당·선거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그릇된 행태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1만7000여명의 새누리당 입당 신청 과정에서 당비를 대납해주기로 했다거나,제주도 산하기관과 금융기관까지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새누리당 도당이 자체 조사를 벌이는 한편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새누리당 도당은 우 지사 지지자들이 입당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대필을 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연락처 등이 맞지 않거나 중복 신청된 경우,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름이 올라간 경우 등 30% 가량이 ‘허수’로 나타났고,당비 대납 등 심각한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 새누리당 인사들의 우근민 지사 입당 반대 기자회견.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무더기 입당 ‘동원’은 공정한 후보 경선 등 민주적 시스템에 의한 정당의 기능 작동을 막고 제주 정치의 수준을 퇴보시키는 구시대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임이 분명하다.도지사의 제왕적 권력에 기대어 주류로 행세하고 집단·개인의 사익을 취하려는 패거리·주군정치의 모습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주도당을 무시하고 청와대와 중앙당을 통해 ‘간’을 보면서 새누리당 입당과 지사 후보 공천을 저울질하는 우 지사의 행태도 구시대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새누리당 도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던 우 지사의 입당 심사가 13일로 보류된 것은 우 지사측 무더기 입당에 따른 파장과 당내 인사들의 반발도 있지만 도당과의 ‘불통’에 대한 불만이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로지 내년 선거에서 다시 당선돼 제왕적 도지사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데만 혈안이 된 우 지사의 세몰이 정치 놀음에 대한 심판자는 제주 유권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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