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위를 달리는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씨

▲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씨가 제주를 찾아 자신의 꿈과 열정, 농촌현실에 대해 전했다.  안서연 기자

트랙터를 타고 국내·외를 누비며 농촌의 현실을 알리고 있는 강기태씨(29)를 만났다.

2일 오후 2시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에서 열리는 제주대문화광장 강연을 앞두고 말쑥하게 차려 입은 기태씨에게 옥상정원에서 인터뷰하길 청하자 그는 흔쾌히 수락하며 먼저 털썩 주저앉았다.

“제주도는 언제 와도 좋더라구요”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그의 얼굴 위로 시종일관 웃음이 번졌다. 뭐가 그리 즐겁길래 미소가 떠나질 않는 걸까.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농촌 현실' 알리는 여행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기태씨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한국교원대에 진학했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맞을까’라는 의문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선생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꼭 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꿈을 이루려고 사는 건 무의미해 보였다.

그러던 중 ‘체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접하면서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바로 ‘여행’이다. 그때부터 대학 4년간 방학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동해로 제주도로 떠났으며 동남아와 중남아메리카로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가’라는 꿈이 영글어갔다.

하지만 기태씨는 ‘체게바라’와 똑같은 여행가가 되긴 싫었다. ‘혁명 정신’, ‘덥수룩한 수염’, ‘여행을 통한 성장’ 등 닮고 싶은 부분은 많았지만 단순히 그의 아류로 남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강기태’만의 특별한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 우리나라 최초의 트랙터 국토 순례를 꿈꾸고 이뤄낸 강기태씨는 자신의 여행기를 '180일간의 트랙터 다이어리'라는 책에 담아냈다.
“오토바이는 이미 체게바라가 탔고, 자전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탔고, 자동차는 너무 빠르고, 도보는 너무 느리더라구요. 그러다 문득 내가 ‘농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늘 우리 가족 곁에 있어줬던 ‘트랙터’를 타고 가면 되겠다 생각했죠”

어느 누구도 해 본 적 없는 여행임은 분명했다. 게다가 트랙터를 타고 돌아다니는 자신을 통해 사람들이 한 번쯤 농촌의 현실에 대해 돌이켜 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그는 2005년부터 ‘트랙터 타고 떠나는 전국 일주’를 슬금슬금 준비했다.

트랙터를 지원받고자 했지만 새파란 청년의 객기 쯤으로 여겨 믿고 빌려주는 회사도 없었다. 굴하지 않고 ‘열정’ 하나로 여기저기 문을 두드린 결과 결국 3년 6개월만인 2008년 9월 18일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장장 6개월간 국내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면서 그는 고향 하동의 특산물인 녹차와 매실 시식회를 열었다. 물론 이 또한 열정을 담보로 하동군에 요청해 받아낸 것들이었다. 하동에서 시작해 땅끝마을까지 트랙터를 몰고 안 다녀본 곳이 없다. 그 과정에서 숱한 농부들의 목소리도 들었다.

▲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의미있게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안서연 기자

젊은이들이 살고 싶은 농촌이 되려면? ‘정부 지원’, ‘문화환경 조성’ 마련돼야

농부들이 호소했던 가장 큰 문제는 ‘일손 부족’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다보니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6~70대 노인이다. 때문에 ‘농기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 장비값이 만만치 않다. 대여를 하려고 해도 댓수가 부족해 순번을 기다리다보면 적절한 시기를 놓치고 만다. 결국 노인들은 농기계를 사기 위해 ‘대출’을 받게 되고 그해 수익은 고스란히 빚 갚는 데 쓰인다.

“젊은 사람들을 붙잡아 앉히고 싶어도 농사는 매해 많은 수익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예요. 설사 청년들이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들 ‘결혼’도 문제죠. 시골로 시집 오려는 여자는 별로 없잖아요. 그렇다보니 국제결혼을 하는데 ‘다문화가정’에 대한 적절한 교육 등 지원이 없어서 이 또한 문제가 많죠”

그렇다면 농촌에 젊은이들이 살기 위해선 어떡해야 할까. 여행을 하며 그가 듣고 생각한 한국 농촌의 대안과 해법을 슬며시 물었다.

“정부나 기업인들을 보면 국민들을 위한답시고 많은 돈을 투자해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건물들을 지어주곤 하는데 사실 그만한 가치의 돈으로 의미있게 쓸 수 있는 일들이 많거든요. 무너져가는 농촌에 호흡을 불어넣기 위해선 ‘보조금’이 필요해요. 그래야 젊은층들이 농촌에 머무르며 농사 지을 힘이 생기죠”

또 사람들이 ‘살고 싶은 농촌’이 되려면 다양한 문화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서관 하나를 짓더라도 마을 주민이 모두 드나들 수 있는 개방된 공간으로 조성하고, 정기적으로 영화 상영도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하동열정학교’ 설립이라는 꿈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조만간 하동에 학교를 설립, 주중에는 공교육을 하고 주말에는 NIE·독서지도·스피치 등 문화수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승마·번지점프 등 체험학습을 하고 군민들을 대상으로 인사초청강연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촌의 발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몸소 실행하는 기태씨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후퇴’가 아닌 오히려 ‘전진’”이라면서 “더 좋은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을 위해 1차 산업이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강기태씨가 자신의 여행 벗인 트랙터 옆에서 웃어보이고 있다. 

“머리로 입으로 ‘생각’만 하지 말고 즉시 움직여라”

기태씨의 ‘생각’은 곧 ‘실제’가 됐다. 그는 ‘해보면 어떨까?’ 고민하지만 말고 잠깐이라도 생각이 들면 실행으로 옮겨보라고 당부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지 말고 '나는 할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라는 것.

“소소한 것을 고민하지 말아요. 나는 스무살 때 내가 지금 트랙터 여행가가 돼서 누군가의 앞에서 강연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그저 그 당시 하고 싶었던 일에 열정을 갖고 뛰어든 것밖에 없어요.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면 꿈을 이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거예요”

다만 그는 천편일률적인 꿈이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꿈을 꾸라고 당부했다. 제주에서 귤을 재배한다고 해서 다 똑같은 귤이 아니라 ‘강기태 귤’을 만들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거 하다가 죽어도 괜찮겠구나’ 싶은 일을 꼭 찾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그러면 사회적 잣대를 떠나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다음 여행지는 남미 최대 농업국가인 브라질이다. 그곳으로 떠나기 앞서 그는 200여명의 제주대 학생들에게 그의 열정을 들려주려 한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제주 해안가를 달리다 멈춰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볼 것이라고 한다.

여행이 삶인 그에게는 강단 위에서의 시간도, 오늘밤 묵을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시간도, 드넓은 감귤 밭을 지나면 보이는 바다도 모두 ‘꿈의 실현’이다.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 이날 오후 2시 기태씨는 '트랙터로 세상에 던지는 열정과 도전'이라는 주제로 제주대 학생들에게 강연을 펼쳤다.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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